인천상륙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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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인천상륙작전이란?

2. 작전계획의 수립과정 및 작전실시
(1) 작전배경
(2) 상륙 일시 및 장소선정 과정
(2)-1. 작전지역의 특징
(2)-2. 크로마이트(Cromite)계획의 내용
(3) 작전 실시
(3)-1. 작전경과

3. 한국전쟁에 미친 영향
(1) 전쟁목적 변경과 그 경위
(2) 인천상륙작전 결과와 한국전쟁

본문내용

C-81/1)속에는 몇 가지 불명확한 단서가 붙어 있었다. 즉 '국제연합에서 이 계획이 승인되고 소련이나 중국이 군사적인 개입을 할 징후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미국은 한반도를 통일시킬 수 있을 것이다'란 조건부 표현이 그것이다. 이를 음미해 볼 때, 38도선의 돌파에는 위험이 상존하며 예측을 불허할 뿐만 아니라, 공산 측의 개입이 유엔군의 38도선 진격 이전에 행하여질 지 혹은 불특정 시에 개입할 지 불확실성이 큰 바, 공산군의 개입과 미군의 38도선 돌파는 전면전쟁에 대한 도박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전쟁목적의 변경사항이 비록 대통령에 의해 승인되었다 해도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명의가 아닌 합참을 통한 국방장관의 지시로 맥아더에게 하달되었을 뿐만 아니라, 맥아더가 유엔의 승인을 득하기도 전에 작전행동이 선행되었다는 사실도 아이러니컬한 것이다.
10월 1일을 전후하여 미 제8군이 일단 38도선에서 정지하여 10월 3일 명령을 받기까지 며칠간 우물쭈물한 것은 바로 이러한 몇 가지 불명확한 요소가 갈등을 빚었기 때문이다.
이상 여러 가지를 종합해 볼 때 전쟁목적 변경의 구현에 인천상륙작전이 가져온 예상외의 성공이 다소 영향을 미친 것이 사실이다. 당시 미국의 민주당 정권은 공산주의에 대한 봉쇄정책이 소극적이라 비판을 받아 왔으며 1950년 11월에는 중간 선거를 치르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에 인천상륙작전의 승리의 여세를 몰아 한반도의 통일을 이룩함으로써 국내외적으로 정치적 승리를 얻고자 전쟁목적을 변경하려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때 영국과 프랑스는 한국전쟁의 늪에 미국이 깊이 빠지게 되면, 서구에서의 대응력을 잃을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전쟁의 확전을 반대하였다. 그런데 10월 1일 주은래가 국련군이 38도선을 넘으면 중국은 북한을 돕기 위해 군대를 파견한다는 공식태도를 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정부는 이를 단순한 공갈로 받아들이고, 부산교두보 공방전이나 인천상륙작전시가 중국개입의 절호의 기회였는데 이미 시기를 놓쳤으므로 개입은 없을 것으로 판단했던 것이다.
4. 결론
한국전쟁은 피아 동원병력 2백여만에 3년 1개월간에 걸친 공방전 끝에 엄청난 피해만 입고 현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무승부의 종전을 맞게 되었다. 이는 한마디로 중국의 개입 가능성을 오판하여 전쟁목적을 너무 경솔하게 확대 변경한 미국의 책임이기도 하다.
한국전쟁에 대한 미국의 일관된 지도방침은 전쟁의 전 기간을 통하여 전쟁을 전면전쟁화하지 않는 방향으로 끌고 가되 타 지역에서 같은 사태가 발생하게 되는 경우 그 대응력을 잃지 않도록 하고 동시에 유엔가맹 우호국들과의 협력을 유지하는데 두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전구, 병력, 수단을 한정시켜 놓은 채로 전쟁목적만을 확대했던 것이다.
이러한 처사는 트루만 정부의 한정전쟁 지도상 중대한 시행착오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놀랍게도 인천상륙작전이 예상을 넘는 성공을 거두게 되자 정부가 주도면밀한 배려를 잃고 일시에 완전승리에 대한 강한 유혹을 받게 된 결과라고 하겠다.
다음의 글은 맥아더가 그의 회고록에서 밝힌 내용인데, 자기 정당화 노력과 더불어 정부가 인천상륙작전에 관련한 전쟁목적 변경정책을 결정하기 이전인 7월 14일에 벌써 38도선을 넘어 북한군은 격멸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 것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그 당시의 급박한 전술상황에서 이러한 고차원의 전략적 구상이 가능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전쟁을 치르고, 전투행동을 취하는 유일한 목적은 전장에서 승리함으로서 신속하게 정치적으로 유리한 평화를 이룩하기 위한 정세를 창출하는데 있다.
전쟁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군사적 승리뿐만 아니라 그 승리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당장은 북한군을 격멸한 인천에서의 승리를 바로 정치적 평화로 대처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하면 군사적으로 승리한 것을 계기로 여기에서 전쟁을 종결지어 버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
이는 패배한 북한군에게 우리의 의지를 무조건 강요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미국은 특별한 야심을 갖고 있지 않으며 한국으로부터 적군을 일소하여 독립군으로서의 존재를 지킬 수 있는 상태로 만들려는 것 이외는 아무 다른 사명도 띠고 있지 않다는 것을 중국과 소련에게 납득시킬 만한 외교능력이 필요하다.'
※ 참고 사이트 ※
1. http://myhome.naver.com/haona/history3.htm
2. http://www.defence.co.kr/history/incheon.htm
3. http://www.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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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9페이지
  • 등록일2005.09.26
  • 저작시기2011.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13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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