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제 인간의 하나님의 형상에 관한 개혁전통에서의 신학적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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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복제인간의 하나님의 형상 문제
1. 왜 이 문제를 논해야 하는가?
2. 개혁 전통의 하나님의 형상 이해의 변천
(1) 20세기 이전 - ‘잃어버리고 왜곡된 하나님의 형상
(2) 신정통 주의 - ‘관계 중심적 존재 양식으로서의 하나님의 형상
(3) 최근의 변화 - ‘공동체적, 미래지향적 그리스도의 형상’
3. 복제 인간의 생리학적 개체성
4. 복제인간이 직면할 관계적 측면들
5. 복제인간의 신학적 존엄성
(1) 고전적 질문: 그들도 하나님의 형상을 가질 것인가?
(2) 신정통주의적 질문: 그들도 한 남자와 여자로서 대면적 관계성
속에서 자유로울 것인가?
(3) 최근 입장에서의 질문: 그들도 우리와 함께 그리스도의 형상에
동참할 수 있을 것인가?

Ⅲ. 결론

Ⅳ. 앞으로의 과제

본문내용

윤리적 규범으로 사용한다면 그것은 과거에 그 형상을 인간에게 부여하셨던 하나님의 의도를 공경하기 때문일 것이다. 창세기 9:6과 야고보서 3:9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가 사람을 죽이거나 저주해서 안 되는 이유는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었기 때문이지 지금 그 형상을 지니고 있기 때문은 아니다” 비유로 설명하자면 한국인들이 조선시대 마지막 세자였던 영친왕을 정중히 대하는 것은 그가 지금 왕권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를 세자로 지정하고 높였던 자신들의 과거의 역사를 귀중히 여기려는 정서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쨌든지 어떤 형상을 없애거나 파괴하거나 저주하는 것은 그 형상의 원본에 대하여 대적하고 조롱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주제가 살인과 저주를 금하는 규범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이 인간 복제와 같이 형상의 숫자를 더하여 존재하게 만드는 행위에까지도 무조건 적용되는 윤리적 규범이 될 수는 없다. 형상을 파괴하는 것과 더 만들어 내는 것은 윤리적으로 결코 같은 규범적 잣대를 가지고 판단할 수 없는 서로 다른 차원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강조할 점은, 복제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이러한 긍정적인 결론이 결코 인간 복제라는 행위 자체를 정당화 시켜주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후일 하나님께서 이스마엘을 축복하셨다는 사실이 아브라함과 하갈의 동침을 정당화시켜주는 것이 아닌 것처럼 복제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은총의 자유로운 접근가능성 자체가 인간 복제를 비롯한 모든 생명조작 행위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복제인간도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사실이 인간의 복제 행위를 결코 정당화시키지 못한다는 면에서 볼 때, 그리고 반대로 하나님의 형상을 더하는 것 자체가 무조건 하나님을 대적하거나 하나님 노릇을 하는 것으로는 단정할 수 없다는 면에서 볼 때, 이 신학적 주제를 복제 행위의 윤리적 정당성 여부를 판정하는 표준적 규범으로서는 거론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태어난 인간의 인격성에 대한 판단과 그를 태어나도록 의도한자의 의도성에 대한 판단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이 인간 복제 행위 자체를 판단하는 직접적인 규범은 아니지만 복제인간도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사실은 복제행위자들을 행동의 신중성에 영향을 미치는 간접적 규범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자신이 의도하는 복제행위의 결과로 함부로 지배하거나 사용할 수 있는 도구적 인간이 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동일한 신학적 존엄성을 지닌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이 태어난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그는 분명히 좀 더 신중하고 분별 있는 선택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Ⅳ. 앞으로의 과제
그러므로 우리는 복제인간의 하나님의 형상과 같은 존재론적 주제나 기형인간 출생이나 가족제도의 파괴 등과 같은 공리주의적 차원의 이유 이외에 인간 복제의 도덕성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좀 더 확실한 윤리 신학적 기준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해야할 것이다. 필자는 앞으로 그 해답의 가능성이 다음 두 가지 신학적 토론의 틀 속에서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복제 행위 자체의 방법론적 성격이 원래 그 형상을 창조하였던 하나님께서 설정했던 형상 창출의 방법 속에서 의도했던 바를 존중하고 있는가 아니면 무시하고 있는가에 관한 검토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을 이 지상에서 복수적(復數的)으로 실현하시려는 방법으로 처음부터 유성 생식이라는 방법을 설정하셨을 때에, 그 방법을 통해 이루려고 의도하셨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는가? 이는 유성 생식 과정 속에서 유전자 즉 생명언어의 자유로운 교환과 배합이 수 없이 일어나게 만들고, 그 결과 부모나 형제의 형질과 다른 형질의 인간이 태어나도록 설정하신 방법 속에서 의도하는 바는 과연 무엇인가 하는 물음과 같다. 그것은 바로 공간 속에서의 다양성(diversity)과 시간 속에서의 역사의 갱신(renewal)이 아니겠는가? 한 배에서도 야곱과 에서같은 대조적 인물이 태어나게 함으로써 이루어지는 다양성, 그리고 히스기야에게서 므낫세같은 인간이 태어나기도 하고, 반대로 아몬에게서 요시야 같은 인간이 태어나기도 함으로써, 삼위일체의 다양하심 속의 조화 그리고 시간 속에서의 그의 섭리적 자유를 실현할 수 있는 생물학적 차원의 제도적 장치가 아니겠는가? 이런 제도적 장치를 통한 다양함과 갱신이 없이 어찌 만물이 그 조화와 새로움을 향해서, 그리고 완성을 향하여 진행될 수 있을 것인가? 동일 형질의 인간만을 계속해서 반복 생산해낼 때 예상되는 단조로운 획일성의 어두움과 역사의 무의미한 반복이 초래하는 무력함에 주목하면서 앞으로 이 문제에 관한 집중적인 신학적 문제 제기와 개발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한다. 둘째는 윤리적 결의론을 초월하는 예외적 상황들이 인정될 수 있을까 하는 점에 관한 논의들이다. 만일 있다면 어떤 상황이 규범을 정하시지만 규범에 갇히시지 않고 행동하시는 하나님(God-in-action)의 자유로운 명령하심에 근거해서, 위에서 언급한 창조 질서의 합목적성을 넘어서는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장(場)이 될 수 있는가? 동일 유전자를 가진 골수 공여자를 애타게 찾는 백혈병에 걸린 아이의 고통과 부모의 절망일까? 무정자성 불임증에 걸린 남편의 번민과 자신의 아이를 간절히 원하는 아내의 좌절일까?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차원에서 이런 각각의 상황들이 갖는 신학적 의미와 중대성을 면밀히 검토하기 위한 이론 설정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 참고 서적 및 자료 -
김균진, 기독교 조직신학, 2권, , 연세대학교 출판부, 1996
임성빈, 생명복제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 기독교 사상, 463호, 1997. 7.
차준평, 인간복제에 대한 구약성서적 평가, 기독교 사상, 463호, 1997. 7.
장경철, 생명복제와 창조주의 주권문제, 기독교 사상, 463호, 1997. 7.
황우석, 생명복제술의 현황 및 전망, 기독교 사상, 463호, 1997. 7.
황상익, 생명체 복제와 생명윤리, 기독교 사상, 463호, 1997. 7.
성경적 관점에서 본 생명의료윤리, CMF 학원사역부 엮음, 한국누가회 문서출판부.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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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11.03
  • 저작시기20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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