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맥아더에 대한 비판적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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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전쟁] 맥아더에 대한 비판적 고찰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머리말

1장 맥아더의 행적
1-1 간단한 인물소개
1-2 서울점령
1-3 한국 승전국 지위 박탈
1-4 일본 전범들의 면죄부
1-5 문화재 반환반대
2장 한국전쟁 개요 및 전략
2-1 한국 전쟁을 바라보는 상이한 관점
2-2 한국 전쟁 전개 과정
3장 한국전쟁에서 맥아더가 취한 전략과 평가
3-1 한국 전쟁 전후의 미국의 전략
3-2 미국과 맥아더에 대한 평가
4장맺음말

참고 문헌 및 웹사이트

본문내용

미국과 소련이 38도선을 중심으로 분할 점령한다는 것이 골자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 명령을 통해서 한국의 독립 운동가들이 일본의 항복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박탈당했다는 것이다. 이를 계기로 한국은 승전국이 될 수 없었고 이 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었다. 일본 패망 후 일본점령군 최고사령관이 된 맥아더는 일본 전범들의 처벌하는데 있어서도 남달랐다. 철저한 반공주의자였던 맥아더는 전쟁 범죄보다는 반공의식이 더 중요한 가치판단의 기준이었다. 그런 맥아더의 결정으로 일본 전범들은 면죄부를 받고 오늘날까지도 정치 일면에서 활동 중이다. 오늘날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두 가지가 있다면 뛰어난 경제력으로 다시 제국주의를 꿈꾸는 일본과 그리고 우리 남북한의 갈등이다. 이 두 가지 모두에 관여하게 된 장본인이 맥아더이다. 조사된 내용 중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아직도 우리나라에 반환되지 않고 일본의 어디엔가 소장되고 있을 우리의 문화재 반환에 대한 문제이다. 1948년 맥아더 장군의 라디오 연설 녹취록에 따르면 “나는 군사행동과 점령의 결과로 상실되거나 파괴된 문화재의 원상복귀에 대해서는 소수의견일지라도 아주 강력히 반대한다. 이유는 한국에 대한 일본인들의 감정을 악화시키고 일본이 이데올로기적 압력에 취약하도록 만들며 전복적인 행동에 적합한 토양을 제공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라고 말함으로써 사실상 문화재 반환의 문제는 당시 덮어졌다. 이상이 맥아더에 대해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그의 모습이다. 2장에서는 한국전쟁에서 미국의 전략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대강의 개요는 이렇다. 1949년 6월 한반도에서 미군이 철수하고 중국 본토에서는 공산당이 승리하고 거기에 미국의 애치슨 라인이 발표되어 한반도는 미국의 군사방위선 밖에 위치하게 된다. 이게 북한은 소련을 등에 업고 자신 있게 1950년 남침을 감행한다. 7월1일 미국의 스미스 부대가 부산에 도착하였으나 전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계속해서 낙동강 방어선까지 밀려난 연합군은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개기로 북진을 거듭 압록강까지 진격하게 되었으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오늘날의 모습으로 휴전하게 된다. 한국전쟁에서 미국의 활약상은 대단했다. 오늘날까지 친미라고 명명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미국은 우리 목숨을 지켜준 고마운 나라, 무조건 좋은 나라.”라는 사대주의적 발상이 뿌리 깊게 박힌 것은 어쩌면 당연할 일이다. 실제로 철저히 자국의 이익만을 강조하는 국제 사회에서 미국은 막대한 자금과 군사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정말 좋은 나라여서 그랬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였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1년 전에 소련의 핵폭탄 개발 성공과 중국의 공산화가 일어났다. 만일 한반도까지 공산화가 된다면 일본까지도 위협받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미국과 소련의 대립구도에서 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지배력은 상실될 것이다. 이를 경계한 미국은 즉각적으로 개입한 것이다. 이것이 한국전쟁의 전모이고 미국의 전략은 아시아로 향하는 미국의 지배력 보존에 있었다. 3장에서 우리는 구체적인 전략에 대한 평가를 통해 다시금 맥아더라는 인물을 탐구해 보았다. 한국전쟁에서 미국과 맥아더가 저지른 실수 중 첫 번째는 북한의 전쟁도발 가능성을 무시했다는 점이다. 실제로 정보당국에서는 전쟁 발발 1개월 전에 “북한이 남침중이다.”라는 보고를 하였으나 미국은 이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전쟁은 터졌고 맥아더는 UN군 총사령관이 되어 전쟁을 지휘하게 된다. 맥아더가 취한 작전은 끊임없는 북진이었다. 서울이 수복되고 38도선 이북으로 진격하는 문제에서 맥아더는 북진을 명령했고 중국은 곧 ‘더 이상의 미군의 북진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서명을 발표하였다.’ 중공군의 개입을 우려하는 당국과는 달리 맥아더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이것이 맥아더가 저지른 두 번째 실수 이다. 결국 중공군은 개입하였고 연합군은 다시 크게 밀려 서울을 다시 빼앗기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한다. 맥아더는 곧 대만의 국부군을 중국에 투입 시켜 전력을 양분화하면서 핵을 사용하여 중공군의 개입을 정치적으로 막자는 보고서를 제출하지만 전장을 확대시키고 싶지 않은 트루먼은 이를 묵살한다. 38도선이 회복되고 전쟁을 종식시키고자 하는 트루먼은 휴전을 고려하게 되고 정전회담을 호소하는 대통령성명을 준비한다. 그 다음날 전선 시찰에 나선 맥아더는 토쿄 비행장에서 평화 계획 선언서를 발표한다. 그 내용은 중국의 내륙기지로 확대해 전쟁을 한반도 지역에서부터 벗어나려는 UN의 결단이 있으면 공산 중국은 미국에 의해 끝장날 것이라는 내용을 골자로 한 발표였다. 이에 트루먼은 격분하게 되고 4월 11일 맥아더는 해임된다. 400만의 희생자와 남북분단이라는 결과를 남긴 한국전쟁 미국의 개입이 없었다면 1950년 그 날에 어쩌면 한반도는 공산화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또한 생각한다. 과연 맥아더는 그리고 미국정부는 진정 한반도의 평화를 생각한 것이었을까? 그는 과연 우리의 영웅인 것일까? 아니면 우리의 역사 속에 뛰어들어 자신의 욕망을 채우다 사라진 정복자였을까?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라는 그의 말처럼 사라진 역사속의 맥아더는 이 질문에 대답이 없다. 다만 남겨진 자료들만이 오히려 우리에게 되묻고 있다. 그가 영웅인지 아니면 정복자였는가를. 각자의 판단에 맡길 일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학습되어 온 맥아더란 인물은 객관적으로 그려진 모습은 아니라는 것이다. 전쟁이후 남한에 자리 잡혀진 반공의식에서 창조된 맥아더란 한 인물의 영웅적인 단면만을 바라본다면 우리의 역사는 1953년 6월 17일 남북한에 휴전선이 설치된 그날에 머무를 뿐이다. 냉엄한 국제사회의 흐름 속에서 한가지로 편협한 사고로 살아갈 수는 없다. 비단 맥아더란 인물에 대해서 뿐 아니라 모든 사고의 영역에서 좋은 것과 나쁜 것 그 둘을 동시에 바라보면서 새로운 길을 찾아야할 일이다. 오늘 우리는 맥아더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 맥아더가 어떤 인물이었는가? 맥아더가 우리 민족에게 어떠한 이해를 주었는가의 문제는 각자가 결정할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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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11.03
  • 저작시기2005.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18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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