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30년대 프로문학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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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 차

1.프롤로그

2. 프로문학의 문학사적 흐름
(1)1920년대 초의 조선의 배경
(2)카프의 결성
(3)신경향파 문학(초기 카프문학)
(4)제 1차 방향전환 (1927년)
(5)제 2차 방향전환(1930)
(6)카프의 해산 (1935)

3. 다시 쓰는 문학사, 프로문학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자.
(1) 프로문학이 진정한 시대현실을 반영하고 있는가?
(2)예술성을 배재한 문학을 문학이라고 할 수 있는가?
(3) 인텔리의 눈으로 진정한 노동자의 현실을 반영할 수 있는가?

4. 에필로그

본문내용

사상적 측면에만 치우친 측면은 무척이나 아쉬운 부분이었다. 하지만 선동으로서의 문학을 추구했던 작품들도 미학적 측면을 완전히 배재할 수가 없었다. 프로문학의 문학적 측면에 대한 연구가 좀 더 진행되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3) 인텔리의 눈으로 진정한 노동자의 현실을 반영할 수 있는가?
당시에 문학을 향유하던 계층은 무지했던 농민이나 노동자층이 아니라 소수의 지식계층이었다. 프로문학을 주도했던 작가와 비평가들도 일본유학을 통해 사회주의에 심취하게 된 부유한 계층이 대부분이었다. 실제 강의에서도 알 수 있었듯이 실제 자본가에게 핍박받은 경험을 가진 노동자 출신의 작가는 이북명, 최서해 등의 소수에 불과했다. 사회주의 혁명을 주창하고 노동자의 투쟁을 선동했던 그들은 실제로 문학을 향유하고, 당시에 부유층만이 가능했던 유학을 통해 사상을 전환한 소위 부유층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들의 현실인식이 당시 실제로 고통 받던 노동자들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었을까 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사회주의에 대해 전혀 알지도 못했던 노동자와 농민들의 고통을 인텔리의 시각으로 재구성한 것은 아닐까?
이러한 의문에 그렇다면 문학을 하는 모든 작가들이 실재로 작품 속의 사건들을 경험해야만 하는 것인가라는 반론이 있었다. 소설의 정의를 살펴보자면, 작가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자신의 시각으로 재구성한 이야기이다. 또한 작품 속의 일을 실제 경험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당시의 노동자 계층은 80년대의 노동자들에 비해 훨씬 무지했기 때문에 문학을 창작하기에 앞서 읽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작품을 살펴봤을 때, 분명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김남천의 「공우회」나 「공장신문」, 윤기정의 「양회굴뚝」등의 작품을 살펴봤을 때, 「공우회」의 선녀, 태순이나 「공장신문」의 관수, 「양회굴뚝」의 경순과 혜경은 대중을 선동하는 전위를 그리고 있으나 그들의 행동은 무척이나 이념적이다. 그들이 가지는 고통이나 감정적 번민은 완전히 무시된 채, 민중을 선동하고자 하는 전위만 불태운다. 투쟁을 통한 이념의 실현이라는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왜 그들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 작품을 다 읽은 후에도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에 반해 이북명의 「질소비료공장」에 표현된 문구를 보면,
아침 일곱시부터 오후 다섯시까지 쉴새없이 급속도로 돌아가는 분리기에서 흘러내리는 하얀 사탕가루 같은 유안(硫安)을 도록고에 받아서 엔드리스에 운반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층에서 가끔 낙숫물같이 떨어지는 유산은 문호(문호뿐 아니다)의 작업복을 벌집같이 구멍을 내어 주었다. 그리고 유안 결정(結晶)이 마치 얼음이 얼어붙은 듯이 들어붙어서 걸을 때마다 와사삭 와사삭 쓰리었다. 짜개신발(지카다비)은 며칠 안 신어서 꺾이는 부분마다 칼로 엔 듯이 싹싹 끊어졌다. 그러나 유산과 유안이 묻은 데는 씻을 수가 없었다. 씻으면 몬작몬작 다 녹아빠지는 까닭이다.
그러나 손이나 얼굴에 묻은 유산은 몇 번이고 수도에 달려가서 씻지 않으면 안 된다. 유일한 재산인 육신을 빵꾸낼 수는 없으니까.
실재로 근무한 흥남 질소비료공장의 체험을 바탕으로 쓰여진 이북명의 소설은 공장에 대한 묘사와 의식의 흐름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적 묘사는 노동자들의 의식적 성장을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으며, 이전의 작품같은 도식적 흐름과는 분명한 차별성을 가지고 있었다. 즉, 카프문학이 소위 지식인들에 의해 창작되었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현실과 그들의 심리적인 측면을 완전히 반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동적 효과는 있을지 모르나, 읽는 이로 하여금 그들의 행동에 이질감을 느끼게 하고 작품 속의 인물들은 생동감을 잃어간다.
프로문학은 분명 목적성을 가진 문학이고, 사회주의 국가의 건설이라는 분명한 목적의 수단으로서의 문학을 추구했지만, 그러한 목적성과 이념에 치우쳐 자신들이 선동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감흥과 동조의식을 가지게 하는데 실패한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노동자를 위한 문학이었다 할지라도 그들은 노동자들의 외부에서 바라보는 입장이었다는 한계를 가졌던 것이다.
4. 에필로그
1925년부터 1935년까지 10년간 남한 문학사의 한 획을 그었던 프로문학운동. 그러나 남한과 반대되는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가졌고, 많은 카프작가들이 월북했다는 이유로 남한문학계에서는 카프문학을 진흙 속에 묻어놓았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다가올 통일문학사를 위하여 진흙을 파헤치고 진주를 꺼내야 할 때이다. 프로문학은 너무 이데올로기에 치우쳐 극단적이고 문학성에 소홀하며 목적성이 짙었다는 아쉬운 점도 있지만 배울 점 또한 많다. 이제까지 남한 문학사를 돌이켜 보면 당시 사회 현실을 비판적으로 그려낸 작품들은 많지만, 현실을 비판하는 데서 그치고 더 나아가지 못했다. 반면에 프로문학운동은 현실비판의 차원을 넘어서, 그 현실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이를 실천에 옮기기 위해 대중들을 선동하려고 하였다. 그러다 보니 문학성보다는 정치참여적인 목적성에 더 치우치게 되었지만, 문학의 사회적 실천은 오늘의 현실에서조차 여전히 주목되고 있는 과제의 하나이며, 이념적인 개방성을 전제할 경우, 프로문학운동이 지니고 있는 현단계적인 의의는 결코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역사적인 615 남북공동선언도 어느덧 다섯 돌을 맞이하였다. 다가올 통일문학사를 위해서, 북한문학의 뿌리를 이룬 프로문학운동에 대한 새로운 시각에서의 연구와 관심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진흙 속의 진주는 오늘도 반짝이고 있다.
<참고문헌>
권영민, 「한국 계급문학 운동사」1998, 문예출판사
김성수,「통일의 문학, 비평의 논리」2001, 책세상,
문학사연구모임,「카프문학운동연구」,1989, 역사비평사
안승현,「한국노동소설전집 1권」1995, 보고사
안승현,「한국노동소설전집 2권」1995, 보고사
안승현,「한국노동소설전집 3권」1995, 보고사
김기진, 박영희, 엄흥섭, 박노갑「붉은쥐,사냥개,숭어,사십년,도정 외」1996,두산동아
조동일, 「한국문학통사 5권」, 2005, 지식산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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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12.12
  • 저작시기20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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