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상에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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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론

본론

1.<광주철조석가여래좌상(廣州鐵造釋迦如來坐像) 고려10세기>
2.<부석사(浮石寺) 소조아미타여래좌상(塑造阿彌陀如來坐像)고려10세기>
3.<철제불두(鐵製佛頭)>국립중앙박물관
4. 충주철불여래좌상(忠州鐵佛如來坐像) 국립중앙박물관
5.<관촉사석조미륵보살입상(灌燭寺石造彌勒菩薩立像) 고려10세기>
6.<대조사석불미륵보살입상(大鳥寺石佛彌勒菩薩立像) 고려12세기로 추정>
7.<충주미륵리석불(忠州彌勒里石佛)=괴산미륵리석불입상(塊山彌勒里石佛立像 고려11세기>
8.<안국사지 석불입상(安國寺址 石佛立像) 고려후기>
9.<익산고도리미륵석불입상(益山古都里彌勒石佛立像) 고려시대 말기>
10<월정사석조보살좌상(月精寺石造菩薩坐像) 고려11세기>
11.<한송사석조보살좌상(寒松寺石造菩薩坐像) 고려10세기> 국립 중앙 박물관
12.<신복사지보살상(神福寺址菩薩像) 고려10세기 후반>
13<파주 용미리 마애불입상(坡州 龍尾里 磨崖佛立像) 고려11세기>
14.<안동이천동마애불상(安東泥川洞磨崖佛像) 고려11세기로 추정>
15.<덕주사 마애불상(德周寺 磨崖佛像) 고려10세기>
16.<북한산 구기리 마애석가여래좌상(北漢山 舊基里 磨崖釋迦如來坐像) 고려10세기 추정>
17.<함양 마천면 마애여래입상(咸陽 馬川面 磨崖如來立像)고려 11세기>
18.<대흥사 북미륵암마애여래좌상(大興寺 北彌勒唵磨崖如來坐像) 고려 11세기>
19.<법주사 마애여래의상(法住寺 磨崖如來倚像) 고려 11세기로 추정>
20.<가엽사지 마애삼존불상(伽葉寺址 磨崖三尊佛像) 고려 10세기로 추정>
21.<선원사철조여래좌상(禪院寺鐵造如來坐像) 고려 10세기 말>
22.<금동관음보살좌상(金銅觀音菩薩坐像)>
23.<금동대세지보살좌상(金銅大勢至菩薩坐像) 고려14세기>
24.<금동대불감(金銅佛龕) 고려13~14세기 추정>

결론

본문내용

屬板)으로 두르고 그 곳에 화불(化佛)을 새겼던 것으로 생각된다. 오른손에 연꽃가지를 쥐고 있고,고관에 화불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 상은 관음보살이었음이 틀림없다. 그런데 이 상을 일반적으로 미륵이라고 부른다. 일명 은진미륵(恩津彌勒)으로 현재도 널리 알려져 있다. 신승동국여지승람『新僧東國與地勝覽』卷之十八, 恩津縣 佛子 灌燭寺에 「般苦山에 있다. 石彌勒이 있는데 높이가54척이나 된다. 세상에 전해오는 말에 고려 光宗 때에 반야산 기슭에 큰 돌이 솟아 오른 것을 僧 慧明이 쪼아서 불상을 이루었다 한다. 」라는 기록이 있어서 미륵으로 전해오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新僧東國與地勝覽』는 조선 中宗 25년(1530)에 李荇 등이 간행한 ‘지리서’이다. 따라서 적어도 1530년대 부터는 관촉사 석불상은 미륵으로 명명괴어 현재에 이르는 것이다. 아니 1530년『新僧東國與地勝覽』이 간행되기 전에 이미 石彌勒으로 구전되어 온다고 하였기 때문에 1530년 이전부터 미륵으로 전칭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관촉사사적명(灌燭寺事蹟銘)」은 崇禎後
再癸亥 (1743)년에 세워졌으므로 『新僧東國與地勝覽』보다 213년이나 늦기 때문에 사료로서의 가치는 『新僧東國與地勝覽』이 더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고려인들이 당초부터 미륵상으로 세웠는지 관음상으로 세웠는지조차 확실히 규명하기 어려운 실정이나 어느 정도 도상적으로 이해하고 조성을 하였는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도상적으로 관음상으로 보아지는데, 존명은 미륵으로 전칭되고 있기 때문이다.이 보살상은 당초에는 관음보살상으로 조성하여 신봉하던 것을 후대에 이르러 미륵으로 통칭하였는지 아니면 도상의 이해부족으로 미륵보살로 조성하여 시봉하였는데 조성과 당시의 신앙관계가 확실치 않아 확정키 어려운 실정이다.
미륵은 末世佛 즉 救世主로서 널리 알려져 있다. 사회가 불안하고 나랄가 혼란할 때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지상낙원의 세계를 꿈꾸게 된다. 이러한 혁명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알맞은 복음적인 부처님이 바로 미륵불이다.
미륵은 이처럼 구세주로서 삼국시대 후기 삼국이 각축전을 벌이던 600년을 전후하여 마륵반가상을 조성하여 예배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다. 특히 삼국통일의 대업에서 최후의 승리를 거둔 신라에 있어서의 미륵신앙의 성행은 화랑제도와의 깊은 관계가 있는 것으로 그 당시의 國仙이 彌勒仙花이며 동시에 神仙으로 생각되었던 것이다.
고려시대에도 후삼국의 각축전으로 인한 국가 사회의 혼란과 불안은 국민생활을 도탄에 빠뜨렸던 것이다. 이와 같이 사회현상으로 인하여 당시의 사람들은 미륵부처님을 찾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이러한 바램은 조상활동으로 이어져 미륵불상을 조성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보살은 대승불교의 특징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존재로서 부처님처럼 깨달았지만 중생구제를 전심하기 위해서 부처되기를 거부하고 있다. 위로는 진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제도하는 (上求菩提 下化衆生) 보살의 이상은 모든 대승불교도들의 이상이기도 한 것이어서 어떤 면에서 보면 보살을 훨씬 더 믿고 따랐던 것이다.
보살들의 궁극적 역할은 「下求菩提 下化衆生」에 있는 것이지만 각자의 역할이 약간씩은 다르다. 즉 文殊菩薩은 지혜를 상징하고 普賢菩薩은 慈悲나 理를 상징한다. 또한 觀音菩薩은 慈悲를 가장 극명하게 나타내는 자비의 화신이다. 이렇게 보면 각자의 역할이 약간씩 차이는 있으나 궁극적으로 자비를 베풀어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다.
觀音이란 세상의 소리 또는 모든 중새의 괴로운 소리를 듣고서 곧 이에 으하여 중생의 번민과 고통을 덜어 주는 보살로서 한량 없는 자비의 상징인 존재이다. 이렇게 중생들의 고뇌를 해결해 주려면 거기에 따라서 몸의 기능도 다양하여야 되기 때문에 관음보살은 눈이 천개이고 손이 천개여서 수천수안 관음을 비롯하여 배의보살(白衣觀音), 양앙보살(楊普薩), 십이면관음(十一面觀音) 등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미륵보살은 현재 욕계의 육천의 하나인 도솔천에 있는데, 彌勒下生經에 의하면 먼 훗날 이 지상에 하생하여 용화수(龍華樹) 밑에서 세 번의 법회를 열고 석가여래가 중생을 다 제도하지 못한 나머지를 제도하여 세상을 樂土로 건설하다는 이상적이며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보살이다. 따라서 관음이나 미륵이든 자기들의 소망만 이룩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고려초 사회상으로 보아 이상국가를 건설한다는 미륵을 전보다 더 신봉하였는지 모른다. 金吉雄『高麗의 石佛像』法仁文化社 1994 p146~150
결론
고려불상은 전대인 통일신라의 불교조각에 비해서 조각의 기술은 떨어진다고 평가되지만, 크기로만 보면 웅장한 맛이 있다. 외국인들이 거대불상을 보면 강인한 생명력만 느껴진다고 하는데, 이것을 고려불상이 고대로의 퇴행한다고 인식하기보다는, 고려시대의 사회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회적 혼란의 수습적 차원과 민간 신앙의 염원이 합쳐져 나타나는 결과로 본다. 신라의 진골귀족적과 경주중심의, 귀족적이고 중앙적인 힘이 결합이 기술적인 결합으로 이어졌겠지만, 고려시대에는 지방 여기저기에서 많이 만들어져 기술적이 축척이 힘들었을 것으로 본다. 또한 왕실 중심만이 아니라 각지의 지방 호족들의 힘도 고려불상의 조성하는데 많은 힘이 필요한 것이 고려시대 사회에 현실이었다. 또한 신흥국가로서의 위엄과 권위를 크게 떨치기 위해 불상의 크기가 커진 것이라고 본다. 세계적으로 중세미술은 특징은 조각에서 그림으로 넘어가는 형식을 취하는데 유럽도 고대에서 찬란한 동상이나 조각품 등이 중세로 옮기면 붓으로 옮겨가는 현상을 볼 수 있다.
고려시대도 고대에서 중세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불상에 기술은 퇴보되나 탱화나 청자가 발달한 면도 기술적인 퇴행이 사회적 영향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본다. 고려불상은 조각적 예술의 의미보다는 사회적이고 그 시대에 요구에 반영한 작품이라고 본다. 작품이라기보다 시대가 요구가 반영된 상징물로 보는 것이 맞지 않나 본다.
고려시대의 마애불이나 거대석불은 강인한 고구려를 계승을 표현하기 위한 반영적 상징물이며, 미륵은 현재의 고려시대가 현실적인 모순으로 인해 미래를 기대할 수밖에 없는 사회염원이 뭉쳐서 거대한 거대한 미륵불이 탄생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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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02.09
  • 저작시기20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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