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무장투쟁의 성격
2.독립군의 형성
3.독립전쟁의 전개
4.독립군의 다양한 발전
결론
*주요 독립운동가 (무장투쟁을 이끌었던 지도자들)
2.독립군의 형성
3.독립전쟁의 전개
4.독립군의 다양한 발전
결론
*주요 독립운동가 (무장투쟁을 이끌었던 지도자들)
본문내용
신한독립당·한국독립당·대한독립당·조선혁명당·의열단 등 5개 단체를 규합하여 한국민족혁명단을 조직하였다. 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우한[武漢]으로 가서 대일선전전(對日宣傳戰)에 주력하였다. 38년 중국국민당의 동의를 얻어 조선의용대를 편성하고 대장에 취임하였다. 44년 임시정부의 군무부장에 취임하고 광복군 제 1 지대장 및 부사령관 등을 역임하였으며, 45년 12월 임시정부 귀국시에는 군무부장 자격으로 귀국하였다. 46년 6월 조선(한국)민족혁명당을 인민공화당으로 개칭하고 지속적으로 연합전선구축에 노력하였으나, 남한 단독정부수립이 본격화하자 월북하여 48년 남북제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에 참가하였다. 그 뒤 북한에서 세칭 연안파(延安派)로서 국가검열상·내각노동상·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등을 역임하였으나 김일성(金日成)비판을 제기한 연안파·소련연합파 제거작업 때 숙청되었다.
김좌진[金佐鎭 1889∼1930]
독립운동가. 호는 백야(白冶). 본관은 안동(安東). 충청남도 홍성(洪城) 출생. 명문가에서 태어나 1904년 15세 때 가노(家奴)를 해방하고 토지를 소작인에게 분배하여 근대화에 앞장장섰으며, 이듬해 호명학교(湖明學校)를 설립하였다. 을사늑약 체결 후 기호흥학회(畿湖興學會)·청년학우회(靑年學友會) 등의 간부를 지내고, 13년 대한광복단(大韓光復團)에 가담하여 독립운동자금 모금을 위해 활동하다가 15년 체포되어 3년간 복역하였다. 17년 만주로 망명, 19년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를 조직하여 총사령관에 취임하고, 사관연성소(士官鍊成所)를 설치하였다. 이듬해 북로군정서의 군대를 동원하여 청산리(靑山里) 전투를 총지휘하며 일본군 제19·21사단을 상대로 격전을 벌여, 무장독립운동사상 최대의 전과를 올렸다. 그 뒤 부대를 이끌고 헤이룽강[黑龍江] 부근으로 이동, 대한독립군단(大韓獨立軍團)을 결성하여 부총재로 취임하고, 일본군의 보복작전을 피해 21년 노령자유시(露領自由市)로 이동하였다가, 이듬해 흑하사변(黑河事變)으로 타격을 받고 다시 만주로 들어왔다. 25년 닝안[寧安]에서 신민부(新民府)를 조직, 군사집행위원장이 되고, 성동사관학교(城東士官學校)를 세워 정예군을 양성하였다. 항일투쟁과 동포의 단결에 힘쓰다가 과거의 부하였던 고려공산청년회(高麗共産靑年會)의김일성(金一星)·박상실(朴相實) 등에게 영안현(永安縣) 중동선(中東線) 산시역(山市驛) 자택 앞에서 암살당하였다. 1962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수여되었다.
김규식[金奎植 ?∼1929]
독립운동가. 호는 호은(芦隱), 별명은 호장군(虎將軍). 경기도 출생. 대한제국 시위대부교(侍衛隊副校)·육군연성학교(陸軍硏成學校) 조교로 있다가, 1907년 군대가 해산되자 강원도 철원(鐵原)으로 가서 의병운동을 일으켰다. 4차례 일본군과의 접전을 모두 승리로 이끌고, 노령(露領)으로부터 무기를 구입하려다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루었다. 그 뒤 한반도가 식민지화되자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하였다. 1907년 8월 군정부 중심인물로활약하다가, 그 해 12월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가 조직되자 사단장으로 활동하였다. 20년 청산리전투에서 보병대대장으로 활약하여 대승을 거두는 데 기여하였다. 같은 해 밀산(密山)에서 대한독립군단이 편성되자 총사령관이 되어 자유시참변(自由市慘變) 이후 망명군을 재편성하는 한편, 독립사상 함양에 진력하였다. 23년 옌지현[延吉縣]에서 이범석(李範奭) 등과 고려혁명군을 조직, 총사령관으로서 영농과 군사훈련을 강화하여 임전태세를 갖추었다. 29년 공산당원에게 피살되었다. 광복 후, 63년 건국훈장국민장이 추서되었다.
이청천[李靑天]
독립운동가·정치가. 본명은 대형(大亨), 일명 이청천(李靑天). 서울 출생. 조선 말기 무관학학교에 입교하였고, 1913년 일본사관학교 제26기생으로 졸업하였다. 19년 만주로 망명하여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에서 독립군 간부를 양성하였다. 20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산하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의 간부가 되었고, 21년 자유시참변(自由市慘變) 후에 고려혁명군을 조직한 데 이어 대한통군부(大韓統軍部)를 조직하여 이끌었다. 30년 한국독립군 총사령관, 32년 동아혈성동맹 간부, 33년 한·중연합군 총참모장과 뤄양군관학교[洛陽軍官學校] 한국인특별반 책임자, 40년 광복군총사령부 사령관으로 항일투쟁에 앞장섰다. 8·15 광복 후 귀국하여 대동청년단 단장·제헌국회의원·무임소장관·민주국민당 최고위원 등을 지냈다. 62년 건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홍범도[洪範圖 1868∼1943]
독립운동가. 평안남도 양덕(陽德) 출생. 일명 범도(範道)라고도 한다. 1907년 9월 일제가 <총포급화약류단속법>을 공포, 조선인 포수 소유의 총기를 회수하자 이에 맞서 11월 의병을 조직하였다. 차도선(車道善)·태양욱(太陽郁)·송상봉(宋相鳳) 등과 산포대(山砲隊)를 만들어 북청(北靑) 후치령(厚峙嶺)을 근거지로 삼수(三水)·갑산(甲山)·혜산(惠山)·풍산(豊山) 등지에서 수십 차례의 유격전으로 일본군을 격퇴하였다. 10년 국권피탈로 일본의 북청수비대가 증강되자 간도(間島)로 건너가 차도선·조맹선(趙孟善) 등과 포수단(砲手團)을 조직하여 교포에게 광복사상을 고취시켰고, 애국지사 소집과 독립군 양성에 주력하였다. 19년 3·1운동 후 간도대한국민회(間島大韓國民會)가 결성되자 그 예하의 대한독립군(大韓獨立軍) 총사령관이 되었다. 그해 8월 대한독립군을 이끌고 갑산·혜산 등을 공격하였고, 다시 강계(江界)와 만포진(滿浦鎭)을 습격하여 일본군 70여 명을 사살하였다. 이후 최진동(崔振東)의 도독부(都督府)와 통합, 같은 해 6월 종성(鍾城) 삼둔자(三屯子)에서 일본군 120여 명을 사살하고, 이어 일본군 부대를 전멸시킨 이른바 <봉오동전투(鳳梧洞戰鬪)>를 지휘하였다. 20년 10월 김좌진(金佐鎭) 휘하의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 제1연대장으로 청산리(靑山里) 전투에 참가하여 승리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그 뒤 만주(滿洲)의 독립군을 총통합한 대한독립군단(大韓獨立軍團)이 조직되자 부총재에 올랐다. 21년 자유시참변(自由市慘變) 이후 북만주로 탈출하여 후진 양성에 주력하였다. 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김좌진[金佐鎭 1889∼1930]
독립운동가. 호는 백야(白冶). 본관은 안동(安東). 충청남도 홍성(洪城) 출생. 명문가에서 태어나 1904년 15세 때 가노(家奴)를 해방하고 토지를 소작인에게 분배하여 근대화에 앞장장섰으며, 이듬해 호명학교(湖明學校)를 설립하였다. 을사늑약 체결 후 기호흥학회(畿湖興學會)·청년학우회(靑年學友會) 등의 간부를 지내고, 13년 대한광복단(大韓光復團)에 가담하여 독립운동자금 모금을 위해 활동하다가 15년 체포되어 3년간 복역하였다. 17년 만주로 망명, 19년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를 조직하여 총사령관에 취임하고, 사관연성소(士官鍊成所)를 설치하였다. 이듬해 북로군정서의 군대를 동원하여 청산리(靑山里) 전투를 총지휘하며 일본군 제19·21사단을 상대로 격전을 벌여, 무장독립운동사상 최대의 전과를 올렸다. 그 뒤 부대를 이끌고 헤이룽강[黑龍江] 부근으로 이동, 대한독립군단(大韓獨立軍團)을 결성하여 부총재로 취임하고, 일본군의 보복작전을 피해 21년 노령자유시(露領自由市)로 이동하였다가, 이듬해 흑하사변(黑河事變)으로 타격을 받고 다시 만주로 들어왔다. 25년 닝안[寧安]에서 신민부(新民府)를 조직, 군사집행위원장이 되고, 성동사관학교(城東士官學校)를 세워 정예군을 양성하였다. 항일투쟁과 동포의 단결에 힘쓰다가 과거의 부하였던 고려공산청년회(高麗共産靑年會)의김일성(金一星)·박상실(朴相實) 등에게 영안현(永安縣) 중동선(中東線) 산시역(山市驛) 자택 앞에서 암살당하였다. 1962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수여되었다.
김규식[金奎植 ?∼1929]
독립운동가. 호는 호은(芦隱), 별명은 호장군(虎將軍). 경기도 출생. 대한제국 시위대부교(侍衛隊副校)·육군연성학교(陸軍硏成學校) 조교로 있다가, 1907년 군대가 해산되자 강원도 철원(鐵原)으로 가서 의병운동을 일으켰다. 4차례 일본군과의 접전을 모두 승리로 이끌고, 노령(露領)으로부터 무기를 구입하려다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루었다. 그 뒤 한반도가 식민지화되자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하였다. 1907년 8월 군정부 중심인물로활약하다가, 그 해 12월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가 조직되자 사단장으로 활동하였다. 20년 청산리전투에서 보병대대장으로 활약하여 대승을 거두는 데 기여하였다. 같은 해 밀산(密山)에서 대한독립군단이 편성되자 총사령관이 되어 자유시참변(自由市慘變) 이후 망명군을 재편성하는 한편, 독립사상 함양에 진력하였다. 23년 옌지현[延吉縣]에서 이범석(李範奭) 등과 고려혁명군을 조직, 총사령관으로서 영농과 군사훈련을 강화하여 임전태세를 갖추었다. 29년 공산당원에게 피살되었다. 광복 후, 63년 건국훈장국민장이 추서되었다.
이청천[李靑天]
독립운동가·정치가. 본명은 대형(大亨), 일명 이청천(李靑天). 서울 출생. 조선 말기 무관학학교에 입교하였고, 1913년 일본사관학교 제26기생으로 졸업하였다. 19년 만주로 망명하여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에서 독립군 간부를 양성하였다. 20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산하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의 간부가 되었고, 21년 자유시참변(自由市慘變) 후에 고려혁명군을 조직한 데 이어 대한통군부(大韓統軍部)를 조직하여 이끌었다. 30년 한국독립군 총사령관, 32년 동아혈성동맹 간부, 33년 한·중연합군 총참모장과 뤄양군관학교[洛陽軍官學校] 한국인특별반 책임자, 40년 광복군총사령부 사령관으로 항일투쟁에 앞장섰다. 8·15 광복 후 귀국하여 대동청년단 단장·제헌국회의원·무임소장관·민주국민당 최고위원 등을 지냈다. 62년 건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홍범도[洪範圖 1868∼1943]
독립운동가. 평안남도 양덕(陽德) 출생. 일명 범도(範道)라고도 한다. 1907년 9월 일제가 <총포급화약류단속법>을 공포, 조선인 포수 소유의 총기를 회수하자 이에 맞서 11월 의병을 조직하였다. 차도선(車道善)·태양욱(太陽郁)·송상봉(宋相鳳) 등과 산포대(山砲隊)를 만들어 북청(北靑) 후치령(厚峙嶺)을 근거지로 삼수(三水)·갑산(甲山)·혜산(惠山)·풍산(豊山) 등지에서 수십 차례의 유격전으로 일본군을 격퇴하였다. 10년 국권피탈로 일본의 북청수비대가 증강되자 간도(間島)로 건너가 차도선·조맹선(趙孟善) 등과 포수단(砲手團)을 조직하여 교포에게 광복사상을 고취시켰고, 애국지사 소집과 독립군 양성에 주력하였다. 19년 3·1운동 후 간도대한국민회(間島大韓國民會)가 결성되자 그 예하의 대한독립군(大韓獨立軍) 총사령관이 되었다. 그해 8월 대한독립군을 이끌고 갑산·혜산 등을 공격하였고, 다시 강계(江界)와 만포진(滿浦鎭)을 습격하여 일본군 70여 명을 사살하였다. 이후 최진동(崔振東)의 도독부(都督府)와 통합, 같은 해 6월 종성(鍾城) 삼둔자(三屯子)에서 일본군 120여 명을 사살하고, 이어 일본군 부대를 전멸시킨 이른바 <봉오동전투(鳳梧洞戰鬪)>를 지휘하였다. 20년 10월 김좌진(金佐鎭) 휘하의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 제1연대장으로 청산리(靑山里) 전투에 참가하여 승리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그 뒤 만주(滿洲)의 독립군을 총통합한 대한독립군단(大韓獨立軍團)이 조직되자 부총재에 올랐다. 21년 자유시참변(自由市慘變) 이후 북만주로 탈출하여 후진 양성에 주력하였다. 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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