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 전쟁문학의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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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항일 전쟁기의 국내상황과 문예계의 동향

2. 국통구 문학
항전초기 문예활동
국통구 문학의 특징
국통구 문예정책
논쟁
三風整頓運動 (삼풍정돈운동)과 延安整風運動 (연안정풍운동)

3. 해방구 문예활동

4. 고도, 윤함구 문예활동

본문내용

특색을 보여준다. 또한 공통구의 작가는 국통구에 비해 훨씬 적었으며 노동자, 농민, 군인들을 주체로 새로운 문학을 개척했지만 예술성 결핍과 인간 탐구의 소홀 현상을 보이기도 했다. 이것은 각종 문학조류를 시도하며 인텔리의 반성과 비판이 주조를 이뤘던 국통구의 소설과는 상당히 대조적이였다. 대표적인 작가로 趙樹理(조수리) 의 <소이흑의 결혼(小二黑結婚)>(판소리 형식에 의해 봉건 인습을 비판), 이유재의 <판화> 등은 항전 시기 중국농촌의 급격한 변화를 폭넓게 반영하면서 일련의 새로운 인물형상들을 부각하였다. 周立波(주립파)의 <폭풍취우>, 丁玲(정령)의 <태양은 상건하를 비춘다 >등은 이 시기 농촌의 토지개혁투쟁을 폭넓게 반영한 우수한 작품들이다. 산문 가운데서는 보고문학이 많이 씌여졌고 劉白羽(유백우)는 해방전쟁시기 보고문학을 많이 쓴 작가이다. 보고문학집<조국을 위하여 싸우자>에는 중요한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해방구에서는 신가극, 연극이 성행하였으며 전통극의 개혁도 발랄하게 진행되었다. 모내기할 때 부르는 노래, 곧 秧歌(앙가)는 중국 서북지역 농촌에 전해 내려오던 민간문학형식이다. 즉 農謠(농요)에 연극, 시 , 전통극 등의 성격을 갖춘 통속적 종합예술이었다. 때마침 연안에서 문예강화가 발표되어 공통구의 문학예술을 민족화, 대중화하자는 방침을 확고히 했다. 따라서 문예일꾼들은 전래의 앙가를 신형의 가극으로 개혁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곧 앙가중 전래의 서정성과 대중성에다 새로운 농민 형상과 혁명의 투지를 가미하여 대표적인 작품 <오누이가 황무지를 개간하다> 내놓았으며 이것은 신앙가로서 연안에 물결을 일으켰다. 그러나 형식이 너무나 간단하고 작았기에 1945년에 대형가극 <백모녀>를 내놓는다. 이 작품은 현실적으로 농촌과 농민의 고난을 절실히 표현하며 중국의 민가, 고전, 희곡 등의 민족 음악을 재생하고 서사적, 생동적 대사를 통해 가극의 대중화 민족화를 도모하였다.
연안문예좌담회 이후 연극창작에 있어서도 새로운 기상이 나타났으며 즉 그 제재로부터 인물 표현형식에 이르기까지 참신한 극작품들이 대량으로 나왔다. <좀 멀리 내다봐라>,<이침왕>, <홍기가요> 등이 그 예이다.
이 시기에 또한 전통극의 개혁사업에 있어서도 수확을 거두었다. 해방구의 전통극 사업일꾼들은 낡은 극을 개혁하여 많이 공연하였다. <핍박에 의해 양산에 오르다>, <축가장을 세 번 치다> 등이 전통극 개혁 중에서 가장 대표성을 가지는 작품들이다.
마지막으로 연안문예좌담회가 있은 후에 대중적인 문예창작운동도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부대에서는 ‘병사들을 위하여 복무하자’는 구호를 내걸고 군대들 자체로 자신의 생활을
쓰며 농민들은 ‘우리들은 자기로 노래하며 줄기자’는 구호하에 주로 민요와 秧歌(앙가)극 형식으로써 문예창작을 진행하였다. 해방전쟁의 승리와 더불어 해방된 대도시와 중등도시들에서는 노동자의 문예창작이 활기를 띠었다.
고도, 윤함구 문예활동
1937년 11월 12일 上海(상해)의 영국, 프랑스 등 제국주의의 조계지는 완전히 일본침략군의 포위속에 빠지게 되면서 진보문예일꾼들은 지하에서 항일애국문예활동을 전개하였으며 이 시기 상해의 문예운동을 孤島(고도) 시기 문학운동이라고 불린다. 문예일꾼들은 <노신선집>, 方志民(방지민), 구추백의 저작과 역문집을 출판하였고 연안혁명근거지의 새로운 모습을 소개한 <西行慢記(서행만기)> 등 진보적 문예작품을 출판하였고 화극, 역사극, 번역극 등을 공연하여 광범한 관중의 열렬한 반향을 일으켰다. 그리고 잡문창작도 성행하였는데 당시 <魯迅風(노신풍)> 등 잡지와 신문들의 부간 <世紀風(세기풍)> 등에 많은 잡문이 발표되었다.
적점령구의 문학도 일정한 성과가 있었다. 일본침략자는 9.18 사변이래 화북, 화중, 화남에까지 침략의 마수를 뻗쳤다. 동북지구의 문학은 항일투쟁가운데서 발전성장하였다. 일제는 괴뢰정부 위만주국을 조작하였다. 당시 중공동북지하당조직의 영도핵심이 남만으로부터 북만으로 옮겨감에 따라 할빈이 항일활동의 중심으로 되었다. 당조직에서는 라봉, 검소가 공동으로 북만항일문예활동을 책임지게 하였고 좌익문화인들을 단결하여 반만항일을 선전하도록 하였다. 1933년 夜硝(야초) 주관지를 꾸리고 별극단을 조직하며 1934년 1월에 문예주간을 꾸리면서 남만의 한간문예를 타격하고 북만문단의 원앙호접파를 비판하였다. 이해 4월에 북만의 각 당조직은 일제와 괴뢰들에 의해 옥에 갇히고 진보작가들은 상해 등으로 가서 혁명문예활동에 참가하였다. 이처럼 일제는 항일문예활동을 진압한 동시에 또한 한간작가들로 하여금 중국을 침략하는 일제의 파쑈폭행을 미화하는 매국투항주의문학을 창조하게 하려고 하였으며 실제로 괴뢰정부에 붙은 작가와 작품들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동북이 일제에게 점령당하고 침략의 손길은 화북에까지 미치게 된다. 북평, 천진이 강점당하였고 1937년 12월 24일 북평에서 괴뢰 중화민국임시정부가 성립되면서 북평문예계는 한시기 죽은 듯이 적막한 기분에 휩싸여 있었다. 1939년 9월, 주작인의 지지하에 북평에서 대형적인 문예잡지<중국문예>가 창간되고 1942년 9월 13일에는 일본제국주의의 획책하에 괴뢰화북작가협회가 북평에서 성립되고 周作人(주작인)이 평의위원회주석을 맡았다. 그들의 목표는 바로 일본의 침략을 위하여 복무하는 충직한 한간으로 되려는 것이였다. 화북적점령구역의 괴뢰문예계의 문예활동에는 거의 일본문화특무들이 참가하여 일본의 침략행위를 노래하고 미화하며 자연풍경이나 신변의 사소한 사건을 묘사한 소품 위주였다.
1941년 태평양전쟁의 폭발된 후 상해는 완전히 남방적점령구의 중심으로 변하였다. 대한간 왕정위는 상해와 향항 두곳에서 평화운동을 발동하였고 이에 맞춰 향항의 남화일보와 상해의 중화일보는 평화운동에 배합하는 평화문학을 실었다. 여기서 평화문학이란 실제 왕정위의 평화투항주의 정책의 기세를 돋구려는 에누리없는 투항을 호소하는 문학이였다. 한간작가 목시영, 부언장, 장자평 등은 적극적인 활동분자였다.
♠ 참고문헌 ♠
김시준/ 중국현대문학사/ 지식사
권철/ 중국현대문학사/ 청년사
황우기/ 중국현대문학발전사/ 범어당
박용산/ 중국현대문학사/ 학고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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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03.02
  • 저작시기2006.0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38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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