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의 시민사회운동 - 1986년 2월 혁명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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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역사적 개관
2. 시민사회의 형성과정
가. 반제국주의 저항운동과 시민의 참여
나. 반독재 저항운동과 시민참여
다. 필리핀 시민혁명과 시민참여
3. 아키노 정권 이후의 상황변화와 시민사회
가. 라모스 정권
나. 에스트라다 정권
다. 아로요 정권
4. 필리핀의 정치구조 특성
가. 후원․수혜체제와 엘리트민주주의
나. 각종 사회세력의 존재

Ⅲ. 결론

본문내용

%이상이 신앙으로 삼고 있는 카톨릭 교회가 마르코스 독재정권 기간부터 시민사회의 리더로써 역할을 수행해왔던 것을 알 수 있다. 1970년대 들어 남미의 ‘해방신학’을 수용한 기독교기초공동체(BCC: Basic Christian Communities)는 마르코스 계엄통치에 저항하였다. 1980년경부터 정부의 종교억압의 정도가 심해지자 카톨릭 교회는 재야의 온건 개혁노선 또는 신인민군에 가담하여 반독재운동을 펼쳤고, 온건노선의 대표적 인물인 신 추기경은 마르코스에게 계엄령 해제를 공개적으로 촉구하였으며 이후 1984년의 대통령 선거에서 야권의 후보단일화 과정 및 이후의 ‘민중의 힘’을 주도하였다. 또한 많은 주교들이 사목교서를 통하여 권위주의 체제를 비판하였다.
한편 계엄과 독재로 인한 제도정치권의 해제는 체제 불만세력들의 긴장을 흡수할 수 있는 완충지대로서의 ‘정치적 장’을 결여하고 있었기 때문에 국가의 억압정책에 맞서 무력혁명을 추구하는 급진 좌파세력인 신인민군(NPA)로 향하게 하였다. 초기 약 1,000~2,000여명으로 시작한 신인민군은 이후 농촌지역을 중심으로 그 규모를 급속하게 확장시켜 나갔고, 1970년대 중반부터 대규모 상업농작물 재배지역에서 농민, 소작농, 농업노동자들은 국가 후원의 농민조합 대신 각종 농민시위를 전개하면서 신인민군을 지원하기도 하였다.
또한 다민족 사회에서 출발한 필리핀 역사의 특성상 필리핀 영토 내의 여러 섬 및 군도에 아직도 자치를 요구하는 소수민족이 존재하고 있고, 일반적으로 모로(Moro)로 지칭되는 필리핀 남부의 민다나오와 줄루지역을 중심으로 한 무슬림(이슬람 신도) 분리주의자들의 활동은 마르코스 독재 이전부터 꾸준히 있어왔으며 아직도 신인민군과 함께 필리핀의 정치안정을 위협하는 가장 중대한 변수 중 하나이다.
Ⅲ. 결론
필리핀 시민사회의 미래
스페인 식민지시대부터 시작한 필리핀의 시민사회 운동은 역사적인 1986년 2월의 ‘민중의 힘’ 시민혁명을 거치면서 정점에 이르게 되고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정치와 정책결정과정에 때로는 직접적주도적이고 때로는 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등 활발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1986년 2월의 마르코스 독재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거국적인 민중혁명은 같은 해 6월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으로 촉발되어 전두환-노태우 군부정권의 퇴진을 요구했던 우리나라의 전국적인 민주화 항쟁에 많은 영향을 미쳤고, 이는 다시 1987년 7월 대만의 계엄령 해제와 민주화일정 가속화, 1988년의 태국 민주화의 기폭제로 작동하였다. 즉 비록 그 이면에 거대 가문을 중심으로 한 후원-수혜 체제 등의 독특한 사회문화적 기제가 작동하고 있고, 혁명 이후 그 불꽃이 줄어들었다 할지라도 필리핀 시민사회가 가지고 있었던 민주주의를 향한 역동적인 의지와 행동은 필리핀을 넘어 전 아시아 지역의 시민사회 운동을 촉진했음은 높이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또한 독재정권에 항거하여 1985년의 대통령 선거와 시민혁명과정에서 보여진 카톨릭 교회의 사회적 의무의 실현의지도 눈여겨볼만 하다. 본질적으로 신과 인간의 수직적인 구조를 가진 대부분의 종교의 특성상 보수적 성향을 지니는 경우가 많고 이것은 마르코스 정권 초창기까지의 카톨릭 교회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국민에 대한 정권의 억압의 정도가 심해져 일반대중에 권위적인 명령하달과 기만이 만연하자 전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었던 카톨릭 교회는 분개하여 일어서게 되었고 이는 각종 언론채널을 통한 진실규명과 아키노-라우렐 단일티켓으로 야권의 통합을 이루어내는 등 시민사회가 효과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구심점 역할을 수행하였던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명동성당으로 대표되는 카톨릭 교회와 진보적 기독교(개신교) 및 불교의 지도자들이 민주화과정에서 일익을 담당했던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필리핀의 시민사회는 역사적으로 제국주의, 독재정권 등 국내외적으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들이 창궐할 때마다 능동적적극적으로 항거해왔고 이 과정에서 표출된 일반 대중의 자유와 평등 등 민주주의 가치에 대한 수호의지는 결국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내었다. 물론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필리핀 내부에는 급진좌파와 무슬림 등 사회에 통합되지 않은 세력들이 존재하고 있고, 외형상으로 NGO의 정치과정 참여가 보장되고 그 영향력도 증가하였지만 여전히 참여의 정도는 제한되고 있으며, 고질적으로 경제성장이 정체되고 있는 등 선진 민주주의로 도약하기 위한 여러 가지 선결과제가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필리핀의 시민사회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더 높은 단계로 도약할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을 가지고 있음을 시민혁명 등을 통해서 이미 입증하였고 아직도 진행 중에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과거의 ‘동양의 민주주의의 모범’이라는 호칭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 참 고 문 헌 >
서경교(1996), 「태국과 필리핀의 민주화 비교연구」, 국제정치논총 36권 3호
이신행외(1999), 『시민사회운동:이론적 배경과 국제적 사례』, 서울:법문사
박사명(1999), 「필리핀 사회운동의 충격과 전환」, 국제정치논총 39권 3호
서경교(2000), 「민주화 이행의 이론과 실제 : 필리핀의 사례 」, 서울:한국외국어대학교
윤상철(2000), 「‘제3의 물결’ 민주화와 한국의 민주화」, 전남대학교 5.18연구소 2000년
7월 25일 ‘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법과 5.18에 관한 토론회’ 토론자료
이동윤(2002), 박사학위논문「동남아시아의 정당정치와 민주주의」, 서울:연세대학교 대학원
정영국(2003), 『필리핀의 정치변동과 정치과정』, 서울:백산서당
홍장우(2003), 석사학위논문「토착카톨릭과 필리핀의 민주화」, 서울:연세대학교 대학원
목 차
Ⅰ 서론
Ⅱ. 본론
1. 역사적 개관
2. 시민사회의 형성과정
가. 반제국주의 저항운동과 시민의 참여
나. 반독재 저항운동과 시민참여
다. 필리핀 시민혁명과 시민참여
3. 아키노 정권 이후의 상황변화와 시민사회
가. 라모스 정권
나. 에스트라다 정권
다. 아로요 정권
4. 필리핀의 정치구조 특성
가. 후원수혜체제와 엘리트민주주의
나. 각종 사회세력의 존재
Ⅲ.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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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03.14
  • 저작시기20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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