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에너지 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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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이후 일제 36년의 암흑시대가 끝나고 이 땅에 광복의 물결이 밀려왔을 때 한반도에는 발전회사인 조선전업과 배전회사인 경전, 남전, 서전, 북전 등 5개 회사가 있었다.
그 당시 전국의 발전설비는 172만 kW, 이 가운데 약 90%인 152만 4,000kW가 북한에 있었고, 남한에 있는 발전소는 영월 및 당인리화력(지금의 서울화력)과 청평수력 등 몇 개 뿐이었다. 이들 발전소의 용량이래야 19만 9,000kW에 불과했다. 이러한 사정 때문에 38선이 긍진 후에도 북한에서 정치적 이유로 1948년 5월 14일일 정오를 기해 일방적으로 단전을 감행하였다. 당시 우리가 겪었던 어려움은 매우 크고 충격적이었다.
이러한 터에 6.25동란으로 발전설비와 송배전설비의 태반이 부서져 가히 암흑시대가 계속되는 듯했다.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마치 옛날로 돌아간 듯, 전기불 켜는 것은 생각 조차 할 수 없었고 호롱불과 촛불로 밤을 밝힐 수밖에 없었다. 가정에서 전기를 쓸 수 없는 것은 그대로 참을만 했지만, 생산공장의 기계를 돌리는데도 모자라니 나라경제가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당시 '보리고개'를 넘기기 위해 나라의 온 힘을 식량증산에 쏟아 넣었지만 '전기고객'를 해결하는 일 또한 이에 못지 않은 중요한 국가목표였다.
"전기 닳는다 일찍 자거라"하고 부모가 자식을 타이르던 말도 바로 이때 나온 말이다. 6.25동란으로 인한 국토분단과 함께 전력회사 가운데 북전이 떨어져 나가고, 서전은 개성, 문산, 옹진 등의 지역을 관할하다가 그후 경전에 흡수되어 전력사업은 조선전업을 비롯 경성전기, 남선전기 등 3개사가 남한에 남아있었다. 그러나 줄곧 심각한 전력난과 만성적인 적자 운영으로 경영에 어려움이 가중되었다. 그러던 중 이들 3개사를 통합하여 한국전력주식회사로 발족함으로써 전력사업은 새 전환기를 맞았다.
5.16 군사정부는 그동안 논란만 거듭해오던 전기 3사의 통합론을 매듭짓고, 1961년 6월 23일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전원개발의 촉진과 전기사업의 합리적 운영'을 목적으로 한국전력주식회사법을 의결, 공포함으로써 마침내 같은 해 7월 1일 한국전력주식회사를 창립하게 된 것이다.
국민의 여망을 안고 새로이 탄생한 한전은 지난 50년대에 심각한 전력부족으로 국민생활에 커다란 불편을 겪었던 과거를 거울 삼아 전력설비 건설에 박차를 가했다. 1962년부터 시작된 정부의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발맞춰 한전에서도 제1차 전원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전력난 타개에 투자의 최우선 순위를 두었다.
긴급전력대책으로 추진된 발전함 도입 등 4만 9,000kW의 설비를 조기 준공하는 한편 8개 계획사업의 신증설로 35만 3,100kW의 설비용량을 갖추게 되었다. 특히 이 기간중 부산화력 1,2호기가 준공됨으로써 해방후 19년동안 되풀이해 오던 전력난을 해소하고, 1964년 4월 1일을 기해 비로소 무제한 송전을 실시하였다. 그러나 전력제한의 해제와 더불어 산업의 급속한 발전과 가전기기의 보급등으로 전력수요는 해마다 늘어 한때 30%의 높은 증가율을 기록, 1967년 하반기부터 이듬해 하반기에 걸쳐 제한송전을 다시 실시하기도 하였다. 69년 10월 서울화력 5호기의 준공으로 100만kW의 전원을 확보한 이래 제3차 전원개발계획이 끝나가던 76년말에 이르러서는 설비규모가 480만 9,730kW에 달했다. 발전설비 또한 빈약한 수력자원에서 탈피, 화주수종형(火主水從型)으로 바뀌었는데, 73년에는 국제원유가의 폭등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다. 77년부터 81년까지의 제4차 전원개발계획 기간은 우리 나라가 경제적으로 고도성장을 지속하는 가운데 1980년대를 개막하는 기반을 공고히 한 시기로서, 전력사업도 체제의 정비와 설비확충에 주력하여 국제규모의 기업으로 발전할 토대를 구축해 나갔다. 경제개발의 촉진으로 전력수요가 급격히 증가하고 발전설비의 단위용량이 대용량화하는 한편 78년 4월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원자력발전시설인 고리원자력 1호기가 준공됨으로써 본격적인 원자력발전시대를 열었다. 이에 따라 송변전설비 또한 대용량화하였으며, 배전선도 승압 등으로 수요증가에 따른 공급계통의 확충을 이루었다. 한편, 정부에서는 도시와 농촌의 균형있는 발전을 위해 65년 12월 '농어촌전화촉진법'을 제정, 공포하였다. 이법의 시행에 따라 78년까지 14년동안 275만 4,600호를 전화(電化)함으로써 98%의 전기보급율을 달성했다. 그후 도서지구 전화사업에 착수하여 80년대에는 전기보급율 100%를 나타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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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04.21
  • 저작시기2006.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45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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