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중국․일본 경찰제도 발전과정의 비교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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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중국․일본 경찰제도 발전과정의 비교 고찰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머리말
1. 경찰의 국가간 비교연구의 이점
2. 비교경찰연구의 문제점

Ⅱ. 한․중․일 경찰제도
1.일본경찰의 발전과정
2.중국경찰의 발전과정
3.한국경찰의 발전과정
4.한국, 중국, 일본 경찰의 발전과정 비교

Ⅲ. 맺음말

본문내용

로 격상하게 되었다.
10월유신이후 1970년대는 안보치안을 위주로 하는 조직개편이 많이 이루어지는데, 치안본부로의 출범은 기구개편방향의 초점이 기존조직을 세분화하고 제도를 보완하는 형식적인 개편에 머물러서, 오래 전부터 논의되어온 경찰 중립화 및 수사권 독립 차원의 개편이 되지 못한 한계가 있다.
4. 한국중국일본 경찰의 발전과정 비교
한국, 중국, 일본 모두 현대적 의미의 경찰이 탄생하기 전에 현대 경찰이 수행하는 업무를 일부나마 담당하는 기관들은 존재하였다. 한국에서는 조선시대 포도청이라는 거의 전문 경찰기구라 불러도 무방한 기관이 설립되었다. 물론 훨씬 전인 고려시대나 삼국시대에도 치안을 담당하는 기관이 존재하였으나 기원이 아닌 그 경찰기능의 수행에서 조선시대 포도청을 많이 얘기한다. 원래 전국적으로 극성을 부리던 도적의 횡포를 막고자 생겨난 것이었고 상설조직이 아니었으나 세간에 도적의 무리가 기승을 부리면서 결국은 상설관청이 되었고 포도(捕盜)뿐만 아니라 야간순찰까지 담당하는 경찰기관으로서의 기능을 완전하게 수행하였다. 중국에서는 1920년대 국민당 정부의 ‘특무기관’에 중국경찰의 기원을 두고 있는데 이 기관은 치안유지를 위한 경찰의 성격보다는 정보활동과 정치공작의 업무를 담당하였다. 일본의 경우 1603년 덕천가강이 에도막부를 성립시킨 이후, 에도의 정(町)에 설치된 남북 2개소의 정봉행소(町奉行所)는 경찰 및 재판업무와 함께 감옥후생토목업무도 담당하였다. 현대적 경찰이 탄생하기 이전에는 삼국 모두 현대의 경찰업무를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기관은 없었으나 그와 유사한 기능을 담당하거나 분류된 일부 기능을 담당하는 여러 기관들이 존재하였고 이것이 후에 전문적 경찰이 태동하게 되는 근간이 된다.
중국을 제외하고 한국과 일본의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현대적 의미의 경찰개념이 생겨나게 되었는데 일본은 미국의 영향을 크게 받았고 한국은 일제 식민지 상황 하에서 강제적으로 주입된 경찰제도를 그대로 답습하게 되고 광복 후에서 미국의 신탁통치라는 수모를 겪으면서 미국에게 또한 영향을 받게 된다. 일본은 1945년 무조건항복 후 연합군 정확히는 미국이 일본을 점령하고 통치하게 되는데 이때 사령관 맥아더 원수의 일본점령정책은 일본군부와 내무성을 해체하여 민주사회를 건설하는 것이었고 특히 군국일본의 근간은 일원적으로 통일된 명령체계를 가진 경찰체계로 보고 내무성을 해체하는 동시에 경찰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하고자 하게 된다. 비밀경찰의 해체와 법률, 조직 등의 개혁방침, 정치적공민적 자유 및 종교적 자유에 관한 각서, 치안유지법의 폐기 및 적용정지, 비밀경찰기관 및 검열감독, 보호관찰관계 부국의 폐지, 내무대신을 비롯한 중앙과 지방 경찰 최고간부 및 특고경찰직원의 파면 등 경찰조직의 개편이 전적으로 미국에 의해 이루어 지게 된다. 한국은 1876년 강화도조약을 계기로 개국의 길로 들어서나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 야욕은 개국과정은 물론, 임오군란, 갑신정변 등을 통하여 표출되다가 청일전쟁부터 노골화된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힘의 우위를 조선에 확인시켜 나갔고 일본의 내정간섭에 조선은 힘없이 굴복하였다. 일본의 내정개혁 요구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경찰 창설 또한 자주적인 입장을 견지하지 못하였고 창설에서 제도정비에 이르기까지 일본에서 완전히 주도권을 넘겨주었으며, 우리나라에 일본 경찰제도가 뿌리내린 것이 바로 이 시기이다. 경찰권 이양(警察權移讓)은 일본의 한국 침략의 마지막 단계로 대한제국이 일본에 경찰권을 이양한 일이다. 말이 좋아 수탈당한 것이다. 1909년 10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암살되자, 일본은 조선침략의 추진을 서두르며 침략 전후에 예상되는 항일운동 진압책의 일환으로 한국의 경찰권을 통감부(統監府)가 완전히 장악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계획에 의하여 통감부 참여관(參與官) 이시쓰카(石塚)와 총리대신서리 박제순(朴齋純)의 협의를 거쳐 경찰권은 일본에 이양되었다.
<한국의 경찰제도가 완비되었다고 인정될 때까지 한국정부는 경찰사무를 일본정부에 위탁한다. 한국황실의 경찰사무에 대해서는 필요에 응하여 궁내부대신이 당해 주무관과 임시 협의하여 처리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한국 경찰권위탁 각서가 조인된 것이다. 이로 인하여 전국 경찰권을 경무총감(警務總監)이 지휘하게 되었고, 각도의 경찰은 10년 6월 일본 현병사령관 겸 한국경무총감의 관할에 들어갔으며 헌병경찰제도가 시행되있다. 이는 1907년 10월의 사법경찰권 이양만으로는 항일운동을 제압할 수 없었던 일본이 일반경찰권까지 통합했던 것이다.
Ⅲ. 맺음말
일본과 한국은 타의에 의해 경찰개념이 자리 잡았다. 하지만 현재 일본의 경찰제도는 개혁과 끊임없는 보완으로 전 세계에서 일본경찰의 방식을 채택하는 국가들이 증가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제도적 측면에서 일본에 까지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자치경찰제 도입 논란에서부터 경찰의 수사권 독립을 놓고 생긴 검찰과의 마찰 등은 아직 우리 경찰제도가 잘 자리 잡았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들이다. 하지만 이것이 꼭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이런 논란과 마찰이 일어나는 것은 우리 경찰제도가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발전하려고 하는 시도에서 오는 문제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타산지석(他山之石)이라고 했다. 다른 산에서 나는 모난 돌도 내 옥을 가는 데는 소용이 된다. 하물며 다른 산에 돌이 내 옥 보다 더 좋다면 두말할 나위가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 보다 경찰제도적 측면에서 보다 낫다고 생각되는 곳, 경찰의 일부 분야에서라고 우리가 배울 것이 있다고 생각되는 나라에 대해서는 철저히 연구하고 분석하여 배워서 우리만의 것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것이 우리나라 경찰제도가 발전하고 나가야 할 방향이라 나는 생각한다.
참고자료
『비교경찰제도론』이윤근, 법문사 出, 2001
『경찰 국사』행정고시학원, 박문각 出, 2000
『비교경찰제도1』 이황우, 법문사 出 , 2005
『너희가 포도청을 어찌 아느냐 : 조선시대의 경찰과 범죄』허남오, 가람기획 出, 2001
『한국경찰제도사』 허남오, 동도원 出, 1998
『경찰학개론』손봉선, 형설출판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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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3페이지
  • 등록일2006.06.07
  • 저작시기2005.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53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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