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 스트라우스의 정치철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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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레오 스트라우스의 정치철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평론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고대 정치철학의 복원

개념간의 기본적 관계

근대 정치철학에 대한 비판적 검토
*실증주의에 대한 검토
*근대 정치철학에 대한 검토
*역사주의에 대한 검토

주권의 존재

본문내용

경향이 있다. …<지식의 한 체계> 또는 <연구결과>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유산으로 받은 지식과 독자적으로 획득한 지식에 대하여 묵시적으로 동일한 인식론적 위상을 부여한다. 이러한 경향을 상쇄하기 위해서는 유산으로 받은 지식의 본래 형태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음으로서 순수한 지식으로 변형시키는 노력이 요구되며, 유산으로 받은 지식을 구성한다고 하는 요소들 가운데서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이와 같은 진정한 철학적 기능이 철학사 또는 과학사에 의해서 성취된다(WPP 104~105).” 이것은 역사주의로 오인될 수 없다. 이는 오직 우리와 영원히 동일한 영원성의 측면에서 존재하는 지식을 확보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요청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상에서는 스트라우스의 방법에 따라 스트라우스를 재현하는 과정까지 이뤄졌다. 스트라우스를 읽는 최선의 방법은 스트라우스 자신의 방식대로 읽는 것이므로 우리에게는 아직 한 단계가 남아있다. 즉 스트라우스가 여기서 정말 지식으로 나아갔는지, 그리고 그 지식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 검토해야만 한다.
주권의 형태
스트라우스가 말하는 지식은 구체적인 정치적 삶 속에 있는 유한한 의견으로부터 영원성의 관점으로 상승하여 보편성을 실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앞서 검토했던 것처럼 역사주의적 태도를 거부한다. 명백하게 이것은 자유주의가 가정하고 있는 결정 불가능성 또는 영원한 회의에 대한 거부다. 스트라우스는 독재적 결정을 옹호하며, 이러한 옹호는 자유주의에 대한 공격이 최초로 그리고 반드시 도달하는 지점이다. 이러한 결정이 어떻게 이뤄지는지가 매우 중요한 것으로 보인다. 그 결정은 원숙한 학자에 의해 정확하게 검토되어 영원성의 측면에서 우리와 함께하는 철학적 지식에 의한 것이다. 따라서 나는 이러한 도식화가 철학적 지식의 추구자인 스트라우스의 모습을 매우 정확하게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윤리학이 정치철학의 핵심에 존재한다. 그리고 존재는 여전히 변증법적으로 추적되어야만 할 것이다. “하나의 정치철학은 역사적 상황, 특히 그것이 관련된 정치적 상황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진부하게 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각각의 정치적 상황은 모든 정치적 상황에 필수적인 요소들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이와 같이 다른 모든 정치적 상황들을 <정치적 상황>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WPP 88)” 이것은 명백히 정치적 상황이라는 형상의 존재를 시사하는 표현이다. 그 형상에서 정치적인 것의 모든 가계와 혈통이 출발한다. 올바른 지식은 이러한 형상에 근거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러한 지식에 따라 독재적 결정이 실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올바른 주권의 형태는 이런 방식으로 독재하는 주권이다. 결국 이러한 일원론 하에서 모든 정치적인 것의 문제는 건전한 상태인가 부패인가로 환원될 것이다. 그렇다면 폴레미오스πολμιο는 존재론적 차이를 지닌 자가 아니라 윤리적으로 부패한 자에 불과하다. 따라서 그들에 대한 전쟁은 윤리적 전쟁, 곧 bellum justum이다. 로마의 이 관념이 네오콘에 의해 재생산되는 것은 명백히 스트라우시언의 공로로 보인다.
나는 앞서 칼 슈미트에게서 잘 정리된 자유주의 비판 한가지를 보았다. 그 핵심은 정치적인 것의 근원에 존재론적인 차이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에 있었다. 우리는 스트라우스에게서 이것과 매우 상반되는 일종의 권력의지 스트라우스는 이 개념이 매우 역사주의적인 것이라고 간주(WPP 75)하지만 여기서 나는 이 개념의 작동이 스트라우스의 정치철학에서 명백하게 존재한다고 자신한다. 이것은 스트라우스에 따르면 숲이 없는 곳에 숲을 만드는 것인데, 적어도 스트라우스의 상황에서 숲은 거의 모두 벌채된 상태다.
를 보게 된다. 즉 고대 정치철학이 지시하는 지식이 가지는 동시성을 복원한다는 것, 곧 “유산으로 받은 지식”을 “순수한 지식으로 변형시키는(이상 WPP 104)”것에는 일종의 의지가 작용할 수밖에는 없다. 이러한 결정이 정치적인 것의 형상에 의거하는 것이라면 철학자를 일종의 발사체로서 간주한다고 하더라도 형상을 실현시키려는 신적 의지의 존재 자체는 결코 부정되지 않는 것이다. 어쨌든 이러한 권력의지는 세계에 영원성의 관점에서 옳은 것을 부여한다. 그러나 존재론을 그 기초에 두는 정치철학은 예외와 차이를 정치적인 것의 핵심으로 불러온다. 상이한 의지들의 전투가 이른바 ‘존재론적 정치철학’의 기초이며, 여기서 정당성은 다른 종류의 함수로 규정된다. 그런데 현재의 상태를 언제나 정당한 신적 의지가 부패하고 무능한 악마들을 토벌하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을까? 즉 ‘존재론적 정치철학’은 틀린 지식을 제공하는 것일까? 다시 말해 이것은 부패하고 무원칙적인 것인가? 그렇기 위해서는 인간과 세계 속에는 대립되는 것이 없어야 하며 이들은 단일하고 조화로운 것으로 존재해야만 한다. 그럴 경우에만 일원론은 옳다. 일원론에서 가능한 차이는 오직 건전한 상태와 타락한 상태일 뿐이다. 일단 그러한 구도를 그리길 원하는 것은 오직 윤리학적 정치철학뿐이라는 점에서 양자 간의 차이 자체는 명백하다. 그리고 현재의 나의 능력으로는 윤리학적 정치철학이 옳다는 어떠한 판단도 내릴 수 없다. 이것은 판단 중지를 통한 판단의 유보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그러나 명백한 것은 이러한 지속적인 미끄러짐이야말로 존재론적 정치철학이 가능하게끔 세계를 불확정적으로 만드는 힘으로 간주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미끄러짐이 존재하는 한 존재론적 정치철학은 그 존재론적 근거를 잃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론적 정치철학’이라고 말하는 것이 지시하는 구도가 오늘날의 정치적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즉 윤리학이 그 핵심에 있는 정치철학과 존재론이 그 핵심에 있는 정치철학은 정치나 결정을 지워버리려는 자유주의자들에게 “옆으로 가라는 신호를 한” 다음, “긴장하여 자기의 적을 쳐다보 「『정치적인 것의 개념』에 대한 논평」에서. 한국어판은 『정치적인 것의 개념』(김효전 옮김, 법문사, 1995년)에 수록되어 있다. 해당 문구는 181쪽에 있다.
“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구도를 재인식하게 해 준 것은 명백히 스트라우스의 공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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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06.06.16
  • 저작시기2006.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55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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