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군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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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십자군 전쟁의 배경
2. 십자군 전쟁의 전개
1) 전쟁의 시작
2) 십자군의 만행
3) 이슬람 세계의 반격
3. 십자군 전쟁의 의의

Ⅲ. 결론

본문내용

전과 부합되지 않는다. 11세기말에 '지하드'의 이상은 영향력을 잃었고 투르크족의 소아시아와 동쪽 국경지대에서는 이미 존재하지 않았다. 반면 라틴족의 서유럽세계는 시칠리아섬과 에스파냐에서 이슬람을 제거함으로써 확장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이론을 비교하자면 상황은 반대이다. 십자군의 경우성전은 단지 억압받는 기독교인들과 성지를 해방하고 방어하는 것으로 그칠 수 있다. 설령 그런 동기가 정복활동을 하는데 이용될 수 있다 해도 그렇다. 반면에 이슬람교도들은 지하드는 이교도들이 이슬람의 계율은 인정할 때까지 계속해서 억압하는 공격적인 전투이다.
그렇지만 중세의 회교도 사회는 서유럽 기독교 사회보다 덜 폐쇄적이었다. 회교도 사회는 그 사회 내부에 비 회교도 공동체가 존재함을 인정하고 '성서의 백성들'즉 유대교도들과 기독교인들에게 특별한 지위를 부여해 주는데 그들이 신분을 구별짓는 인두세인 '지즈야'를 내고 이슬람국가를 인정한다는 조건으로 그들을 인정하고 보호해 주었다.
'지하드'는 그러므로 1차 십자군 원정 때 회교도에게 개종 아니면 죽음의 선택을 강요하는 방향으로 흐른다거나 회교도에 대한 기독교국가들의 냉혹한 법 적용과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지는 않았던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교도를 학살했으며 오리엔트에 4개의 라틴국가를 건설한다. 기독교 측에서 본다면 신앙에 의한 영웅적인 전과라 하겠지만 회교도들에겐 야만적인 침략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 었다.
야만적인 전쟁 행위에 흔히 神聖을 부여하는 것은 동서고금이 마찬가지다. 원시 부족들이 사냥이나 전투에 앞서 주술 의식을 베푼 데서 그 뿌리를 짐작할 수 있다. 피 흘리며 죽이고 죽는 것을 무릅쓰도록 부추기고 인간의 선한 본성에서 나오는 죄의식을 씻어주는 집단 최면 효과를 얻는 셈이다.
그 수단이 반드시 무속이나 종교는 아니다. 근대이후 민족 국가들이 국기와 국가 등 애국심의 상징을 이용하는 것도 근본은 비슷하다.
■ 전쟁을 신성화한 대표적 사례는 십자군 전쟁이다. 11세기말부터 2백년 가까이 서유럽 기독교도를 집단 최면 시킨 십자군 원정은 이슬람에 빼앗긴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한다는 종교적 이념을 통해 성전이 됐다. 그러나 그 실체는 봉건 영주와 기사들의 영토 지배욕과 상인들의 경제적 야심, 농민의 압제 탈피 욕구가 어울린 중세적 식민 전쟁이었다. 특히 이런 정치적 동인의 이면에는 모험심과 약탈욕 등 잡다한 동기가 작용했다는 후세 사가들의 평가다
■ 이를 모를 리 없는 로마 교황청은 신성한 목적을 강조하기 위해 1045년 짐짓 인도적 전쟁 수행을 명한 나르봉 칙령을 선포했다. 성직자와 여성, 순례자, 상인, 농민, 교회, 묘지, 가축, 올리브 나무 등 비전투 요원과 민간시설은 공격하지 말라는 교시였다. 그러나 1099년 예루살렘에 입성한 십자군은 무슬림과 유대인까지 남김없이 살육하고 모든 것을 불태웠다. 십자군 기사들은 살육의 환희에 겨워 울부짖고, 인육을 요리해 먹었다는 기록까지 있다.
■이 광기 어린 잔혹성을 농업화에 따른 기사 계층의 욕구불만 해소로 본 인류학자도 있다. 과거 사냥 원정을 통해 신분과 힘을 과시하던 기사들이 십자군 전쟁에서 억눌린 욕구를 분출시켰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위선에 가린 잔혹성이 이슬람의관용 정신마저 허물었고, 오늘날 서구를 향한 성전을 외치는 근본이 됐다는 지적이다.
Ⅲ. 결론
십자군 전쟁은 우연인가? 역사적 흐름의 산물인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역사의 우연적 요소는 여러 가지다. 양귀비의 미모와 클레오파트라의 코, 같은 것들이 과연 역사의 흐름을 바꿀 정도의 큰 의미를 가진 것들인가? 물론 이러한 요소들이 역사에 흐름에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역사가들이 만드는 역사란 서로 긴밀한 연결고리를 가지는 사건들의 흐름이다. 그러므로 역사에서 나타나는 우연적 요소에 필요이상의 의미를 두는 것은 옳지 못한 역사보기 방법이다.
십자군의 발단에는 분명 교활 우르바누스의 개인적 정치적 야망과 제후들의 야심 등 성전의 원인이라고 볼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 이런 우연적인 요소가 맞물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전쟁이란 결과로 표출 된 것이다. 그러나 전쟁의 원인을 단지 이러한 요소들의 집합이라고만 생각할 수 는 없다.
9세기부터 시작된 서유럽의 변화와 기사계급의 등장 교황과 황제의 권력관계가역사의 방향을 십자군 원정으로 돌려놓은 것이다. 그러나 이런 필연적 역사의 흐름이 어쩔 수 없는 예정된 결과였다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그 시대의 사람들이 서로의 종교에 대해 좀더 이해하고 잦은 교류로 서로를 알았다면 무참한 살육과 그로 인한 끝없는 보복은 없었을 것이다.
역사는 시대의 흐름이 만들어내는 것이지만 그 흐름은 결국 사람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십자군 전쟁이 후로 시작된 이슬람과 서유럽의 갈등이 현대에 이르기까지 계속 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사람들은 거침없이 이번 전쟁이 선과 악의 대결이라고 말한다.
이슬람이 악이란 말인가? 테러는 분명 벌을 받아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미국이 서유럽이 그 동안 아람세계에 보여온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던 태도들은 왜 집고 넘어가지 않는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신생 독립국 이스라엘을 맹목적 지지함으로써 자연 거대한 이슬람국가들의 불만을 사게 되었다.
금융과 경제, 신문과 언론 그리고 문화와 예술로 미국을 실제로 지배하고 있는 유태인들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이스라엘 일변도의 강경 지지정책은 오히려 이슬람 국가들을 결속시키는 한편 자신들의 고통과 불만을 테러라는 야만행위로까지 표출하려는 성전주의자들을 양성시키게 한 것 또한 사실인 것이다.
그들이 서로를 이해하지 않는다면 두 종교간의 반목과 증오는 필연을 넘어선 각자의 신이 정해준 목표가 될 것이다. 서로가 싸우기 앞서 상대를 이해하려는 시도가 생긴다면 역사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본다.
*목 차
Ⅰ. 서론
Ⅱ. 본론
1. 십자군 전쟁의 배경
2. 십자군 전쟁의 전개
1) 전쟁의 시작
2) 십자군의 만행
3) 이슬람 세계의 반격
3. 십자군 전쟁의 의의
Ⅲ.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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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06.20
  • 저작시기2006.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56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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