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정궁 경복궁과 왕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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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들어가며
1. 경복궁
1) 창건배경
2) 변천사
3) 건물별 둘러보기

2. 왕의 하루

마치며

본문내용

로정 터에 고종 때에 이르러 향원정을 다시 지은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또 향원(香遠)이란 이름의 뜻은 <태극도설>을 지은 중국 송나라 주돈이의 <애련설(愛蓮說)> 중 '香遠益淸(향기는 멀수록 맑다)'에서 따와 지은 것으로 여겨진다. 향원정은 2층으로 되어 있는데 1층은 온돌을 깔았고, 2층은 마루로 되어 있다. 향원정 1층에는 불을 때던 작은 아궁이가 서쪽에는 있으며, 2층에는 천장에 주작 등을 그려 넣어 그 화려함을 더했다. 한편 향원정의 물은 향원정 북서쪽 열상진원(洌上眞源)에서 흘러 들어와 남쪽으로 빠져나도록 되어있다. 즉 열상진원에서 솟아난 물이 홈을 만나 한바퀴 돌아 다시 꺾여 향원지로 들어가도록 되어 있다. 이는 샘에서 솟아난 차가운 물이 격하지 않고, 차갑지 않게 향원지로 입수하게끔 마련된 장치인 것이다.
2. 왕의 하루
“조선시대 왕의 하루는 너무 짧았다”
우리 역사에 있어 왕은 국가질서의 중심이었다. 조선시대의 왕은 사대부 관료들의 권한 강화로 이전 시대에 비해 왕권이 다소 약화됐지만 ‘왕’이 갖는 상징적 의미는 그대로 유지하였다. 조선시대에는 태조부터 순종까지 총 27명의 왕이 있었다. 이 가운데 연산군과 광해군은 반정으로 왕위에서 쫓겨나 군(君)으로 강등되었으므로 진정한 의미의 왕으로 일생을 마친 사람은 25명이다. 이들 왕들의 업적·사건 등 표면적인 모습은 교과 과정이나 사극 등을 통해 널리 인식되고 있지만 실제 그들의 일상적인 삶이 어떠하였는가는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조선시대 왕들의 일생을 ‘하루의 생활’을 통해 살펴봤다.
< 만 가지의 일 >
왕의 하루 일과는 아침·낮·저녁·밤의 네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왕이 처리하는 집무는 만 가지나 될 정도로 많다고 하여 ‘만기(萬機)’라 불렀다. 왕의 하루는 아침에는 신료들로부터 정치를 듣고, 낮에는 왕을 찾아오는 방문객들을 만나며, 저녁에는 조정의 법령을 검토하며 보낸다. 밤이라고 해서 한가한 것이 아니다. 밀린 업무나, 개인 공부를 하거나 자신을 바라보는 여인(왕비를 포함한 후궁 등)들을 달래주는 일까지 해야 했다.
1. 일출 전 집무 시작
왕은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 웃어른에 대한 문안인사로 하루일과를 시작한다. 먼저 대비와 대왕대비에게 인사를 올리고 직접 인사를 올릴 수 없을 때는 대신 내시를 보낸다. 해가 뜰 무렵 왕은 신료들과 학문토론 겸 정치토론인 경연(經筵)에 참석한다. 경연이 끝나면 아침식사를 하고 조회를 시작하는데 왕의 공식집무는 여기서부터다. 조회에는 문무백관이 모두 참여하는 정식조회(朝參)와 매일매일 시행하는 약식조회(常參)가 있다. 아침조회인 상참이 끝나면 승지를 비롯하여 공무가 있는 신료들로부터 업무를 보고받는다. 이때에는 반드시 사관(史官)이 동석한다. 왕에게 보고하는 업무를 사관이 직접 듣고 기록하기 위해서다. 업무보고를 받고 나면 이어서 아침조회에 참석하지 못한 각 행정부의 관료들을 만난다. 이때 관료는 하루 5명 이하로 제한했고 문신은 6품 이상, 무신은 4품 이상이어야 했다.
2. 야간의 암호 정하기
정오가 되면 왕은 점심을 간단히 하고 주강(晝講)에 참여해 학문을 익힌다. 주강 이후에는 지방관으로 발령받고 떠나는 신료나 지방에서 중앙으로 승진해오는 관료들을 만난다. 특히 팔도의 관찰사나 중요지역의 수령들은 왕이 친히 만나 업무를 당부하고, 그 지역의 민원들을 들어준다. 오후 3시에서 5시 사이에는 야간에 대궐의 호위를 맡을 군사들 및 장교들과 숙직관료들의 명단을 확인하고, 야간의 암호를 정해주는 일을 한다.
3. 석강과 야간집무
왕은 저녁이 되면 석강(夕講)에 참석해야 한다. 석강이 끝나면 저녁을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한다. 저녁 후에도 낮 동안의 업무가 밀려 있으면 야간집무를 본다. 그리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다시 대비와 왕대비 등에게 문안인사를 드린다. 이로써 왕의 공식적인 하루 일과가 끝나게 된다. 여기에 왕은 정비를 비롯한 주위의 많은 여인들에게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조정의 업무 못지않게 대를 이을 왕손의 출산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4. 비공식적인 업무
왕은 공적인 집무 외에 무수한 비공식행사나 국가제례 등에도 참석해야 한다. 또 대소신료들과 전국의 양반, 일반 농민이나 노비들이 올리는 상소문과 탄원서도 챙겨야 한다.
수많은 업무에 시달리는 왕에게도 해방의 기회는 있다. 3정승을 비롯해 정1품 이상의 관료가 사망하면 3일간 조정의 업무를 정지했다. 정경(正卿) 이상의 관료가 죽었을 경우에는 2일간, 판윤을 지낸 사람이 사망하면 1일간 조정업무를 쉬었다. 이외에 세시풍속상의 명절에도 휴무였다.
오전5시 : 기상, 기상 직후 죽 한 사발 정도의 간단한 식사
오전6시 : 6품관 이상의 관리들과 정식 조회(조참 朝參 매월 5일, 11일, 21일. 25일), 조회가 없는 날은 상참 (常參 약식조회), 당상관으로부터 여러 보고를 듣고 아침 경연인 조강(朝講), 아 침 식사, 식사 전후로 왕실 어른들을 찾아 문안 인사를 한다.
정오 : 현안이 있을 경우 해당 관리를 불러 논의, 낮 경연시간
오후3시 : 상소 검토 등의 일상 집무를 한다. 한가한 날은 이 시간을 이용하여 사냥, 활쏘기, 격구 등의 체력 단련
오후7시 : 저녁 경연시간, 휴식 및 독서
오후11시 : 취침
마치며
궁궐과 도성은 새로운 왕조가 성립될 때마다 새로운 땅에 새롭게 건설되었다. 궁궐은 왕이 사는 곳만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움직이는 하나의 작은 도시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궁궐에는 당연히 그에 걸 맞는 많은 건물과 시설이 있었고 따라서 경복궁은 조선이라는 새로운 왕조에 걸 맞는 형태로 지어진 조선의 정궁이 된다. 궁궐을 보는 것은 남아있는 현재의 관점이 아니라 궁궐이 궁궐로서 제 기능을 발휘하던 시기의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 물론 조선왕조가 대한제국으로, 대한제국이 일제의 식민지로, 일제가 물러가고 해방이 된 후 혼란과 전쟁, 군사정권으로 이어지는 근현대사 속에서 그 본래의 모습을 가지고 있지는 못한 궁궐에서 옛 모습을 찾기란 쉽지 않지만 우리는 시간을 거슬러 남아있는 건물은 물론 빈터나 잔디밭에서도 옛 궁궐의 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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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06.23
  • 저작시기20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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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356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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