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전춘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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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전춘별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원문 및 해석
2. 논쟁에 따른 특징
3. 고려시대의 만전춘 별사와 조선시대의 만전춘사
4. 고려속요

Ⅲ. 결론

본문내용

① 속요의 바탕이 된 정서는 : 현실, 곧 삶의 고통과 비애이다.
고려 고종 때 몽고의 침입으로부터 원의 피지배 시절까지 100여 년 의 기간 동안, 사회적인 혼란과 백성들의 고통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러므로 현실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으며 향락을 즐기는 사람이나, 조정에서 멀어진 사람이나, 일반 백성이나 다같이 현실적인 불안감 속에 놓여 있었음은 분명하다.
② 작가의 내면적 정서 : 영원한 것에의 그리움이다.
이러한 현재의 부정적 시각은 지나간 과거에 대한 향수와 평화로운 미래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 이어졌다. 곧 선왕성대와 과거의 태평성대를 그리워하고 이별 없고 고통 없는 영원한 미래를 염원(만전춘: 아소 님아 원대평생에 여힐싶 모링잎세)하는 작가의 내면정서로 이어졌다.
③ 작품의 지향점, 곧 작가가 이르고자 하는 세계는 신.인간.자연의 영원한 조화이다.
현실의 고통과 영원한 것에의 그리움은 작품의 지향점으로 님과 신, 자연을 동일시한 조화를 통해 영원한 화합에 이르고자 한다. <만전춘>에서는 자연과 하나 되는 이상향을 노래 하 고 있다.
신라시대는 샤머니즘이나 불교가 자연과 인간보다 우위에 있었고, 고려시대에는 인간존재에 대한 자각으로 신과 자연, 인간이 동등한 위치에서 염원의 대상이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성리학의 영향으로 신의 영역이 떨어져 나가고 인간과 자연만이 문학의 장에 남게 된다.
(3) 작자와 향유층 및 시대
<악학궤범><시용향악보><악장가사> 등의 문헌은 모두 궁중에서 연주된 악보나 가사를 근거로 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볼 때 궁중 연희음악의 가사로 사용된 속요는 적어도 고려 때 음악기관인 팔방상, 전악서, 대악서 등과 같은 전문집단의 예술인, 또는 왕실의 측근에 있는 권문세족이나 식자들에 의해 민요나 개인 창작곡을 수정하여 음악에 얹어 사용하였으리라 생각된다. 작품의 내용으로 창작자의 계층을 추정해 보면 지식인층의 부인, 궁녀 : <만전춘><이상곡><서경별곡>일 수 있다. 물론 작품의 내용상 추정되는 작가와 실제 작가가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1차적으로는 작품의 내용과 작가가 일치하는 것으로 보고, 2차적으로는 그러한 대상을 소재로 하여 우수한 시인에 의해 창작되었다고 보는 수밖에 없다.
속요는 궁중의 전유물이었으며 음악이나 예술 전문집단 또는 뛰어난 개인에 의한 창작이라고 보아야 한다. 속요의 작가를 모른다고 하여 민요처럼 다수에 의하여 저절로 지어졌다고 볼 수 없다. 다만 민요적인 일면이 엿보이는 것은 어느 장르나 마찬가지로 속요도 민요적인 소재나 형식의 영향을 받은 것일 뿐이다. 향유층은 고려후기 원나라 지배시절의 부패한 왕실과 권문세족으로 보고 있다. 속요가 궁중 연희악 이었기 때문에 향유층이 궁중을 중심으로 생활할 수 있었던 왕실이나 귀족들이었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실로 고종 이후 몽고와의 전쟁으로 왕실이나 상층사회가 아니면 그러한 낭만적인 여유를 가질 수 없었음은 물론이다.
속요는 조선 초에 정착된 것이므로 고려시대의 시가라는 것에 의문을 가질 수도 있으나 속요가 조선시대에 와서 개작되었다는 확증은 찾을 수 없다. 속요를 문제로 삼은 것은 모두 조선시대의 도덕적인 문학관에서 비롯된 것으로 작품의 내용이 주로 논란의 대상이었다.
성종때 <서경별곡>이 남녀상열지사로 , <후정화>와 <만전춘> 비이지사 로 문제가 되었다
(4) 작품감상시
속요의 작품을 통일된 하나의 노래로 해석하려는 견해와 가사가 각 장을 엮은 것으로 보아 한 작품 안에서의 통일된 해석이 어렵다는 상반된 견해가 있다. 그러나 작품의 일부분이 서로 중복된 경우가 있으나 이들도 작품에 맞게 변형되어 있음을 보면 부분적으로 편장된 것은 사실이나 개별 작품의 완성도를 고려하여 한두 행이나 장을 합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다음은 <정과정><만전춘><서경별곡>에 공통된 가사들이다.
<정과정>
넉시라도 님을 한딪 녀져라
아으 벼기더시니 뉘러시니잇가
<만전춘 3장>
넉시라도 님을 한딪 녀닛景 너기다니
넉시라도 님을 한딪 녀닛景 너기다니
벼기더시니 뉘러시니잇가 뉘러시니잇가
<서경별곡 2연>
구스리 바회예 디신딪
긴힝힝 그츠리잇가 나다
즈믄 힝를 이ㅗ오곰 녀신딪
信잇딪 그츠리잇가 다
(5) 삶의 외로움(님의 부재:부정적 인식)
님이 없는 외로움과 님에 대한 그리움은 아주 가까운 정서이다. 님의 부재를 부정적으로 수용하면 외로움이 되고, 긍정적으로 수용하면 그리움이 된다. 외로움은 고독하고 쓸쓸하여 우리를 움츠려들게 하지만 그리움은 따뜻하고 감미롭게 우리를 감싸준다. <만전춘>은 복사꽃 만발한 봄날 외로운 궁녀들의 수심을 노래하고 있다.
Ⅲ. 결 론
우리 조에서 <만전춘 별사>의 작품을 읽고 의견을 모은 결과, 남녀 간의 영원한 사랑을 기원하되, 그러한 것을 표현 하는데 있어서 사랑과 애정 행위 자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며, 사랑의 감정과 사랑을 바라는 마음을 숨김없이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조선시대에 '남녀상열지사'로써 비판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조가 공부한 교재에서는 '남녀상열지사'로써 바라보는 시각보다는 이별을 겪고있는 서정자아의 갈등과 좌절을 자연과의 화합을 통하여 영원한 것을 기원하고 있다.
솔직히 교재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 해석 또한 이해가 갔지만, '남녀상열지사' 로써의 표현을 절제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성적인 표현'이 상징적으로 묘사되어 있다는 것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고려 때 만들어진 <만전춘 별사>의 작품을 읽어 보면서, 고려 오백년간의 삶이 다 비극적이었는지, 모든 백성이 그러한 삶을 살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 노래의 서정자아는 님과의 이별이라는 상황에서 노래한 것만은 틀림없다.
서정자아의 현실에서의 갈등과 좌절, 이상적인 상태에의 소망, 삶에 대한 비극적인 인식을, 자연의 유신(有信)과 화합(和合)을 통하여 영원한 것을 기원하고 있다. 그러나 이상적인 삶을 꿈꾸나 철저히 좌절당하는 모습을 보인다.
참고문헌
윤영옥 『한국의 고시가』 문창사 2001
『고려가요 연구의 현황과 전망』 성균관대학교 인문과학 연구소 집문당 1996
김광순 외 『국문학 개론』 새문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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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06.29
  • 저작시기20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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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357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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