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반의 시, 해체적 징후 - 80년대 시인 황지우, 이성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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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I. 머리말

II. 황지우의 시 세계
II-1. 황지우. 시인 소개.
II-2. 황지우의 시세계.
II-3. 황지우의 초기 시세계를 분석함에 앞서.
II-4. 황지우 초기 시세계의 숨은 힘.
II-5. ‘피에 젖은 새벽별을 노래하다’ 황지우의 시 ‘윤상원’ 분석

III. 이성복의 시세계
III-1. 이성복. 시인소개.
III-2. 이성복 시인의 시세계
III-3. 이성복 시인 ‘어떤 싸움의 기록’
III-4. 모성,자연으로 회귀하다 - '남해금산'

IV. 맺음말

본문내용

나오는 한 여자의 이미지 또한 어머니의 변주라고 생각해봤다. 만약 그러한 추측이 맞다면 이 시에 대한 상징적 해석을 가능케 하는 실마리가 마련되는 셈이다.
<한 여자가 돌 속에 묻혀 있다>는 것은 돌과 여자가 동일하다는 것, 곧 아들에게 있어서 어머니의 자궁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그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라는 것은 아들은 어머니와 일체가 됨으로써 현세의 고통과 번뇌를 잊고 싶다는 마음에서 모태로의 회귀를 꿈꾸고, 이것이 화자의 <돌 속에 들어>가는 행위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해와 달’이 상징하는 불가항력적 제약 때문에 이는 곧어머니의 추방을 불러오고, 어머니의 추방은 아들의 자궁에서의 축출과 등가의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영원한 모태로의 회귀에 실패한 아들은 고독함의 정서를 느끼게 되고, 어머니의 품을 떠나 다른 길을 모색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잠기었네’와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있네’라는 표현에서 ‘돌’의 대체공간으로 ‘남해 금산’이라는 공간을 설정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시적화자가 머물게 되는 공간이 왜‘남해 금산’이라는 특정한 공간인지 생각해 볼 수 있다. ‘남해 금산’이라는 단어는 <남해>와 <금산>이라는 두 단어의 절묘한 충돌이 만들어 내는 마력적인 매력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시인 이성복이 만들어 낸 조어다.
즉 <남해>가 지니는 이중적 의미, <남쪽의 바다>와 행정구역상의 <남해시>에다 <금산>이라는 실존하는 산을 결합시킴으로써 <남해 금산>이라는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신비한 공간을 만들어 낸 것이다. 실제로 남해 금산 은 육지와 바다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해 있는 산으로 시인 이성복은 그것을 ‘물과 흙의 혼례’라는 아름다운 말로 표현하기도 했다. <혼례>라는 인간적인 냄새가 단어를 사용해 가면서까지 굳이 자연을 표현한 데에는 일체의 인간적인 행위가 가지는 순간성에 비해 자연이 원초적으로 지니고 있는 영원성과 화합성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로 보여진다.
따라서 시 「남해 금산 」은 인간이 갖지 못한, 자연만이 가지고 있는 원초적인 화합성과 일체감에 대한 동경, 인간의 자연 지향성을 갈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시인 이성복은 산문 「물과 흙의 혼례, 남해 금산」 이라는 산문에서 ‘아, 이제야 생각난다. 처음 그 산을 알게 된 것은 서정인의 참으로 아름다운 소설집 『강』에서 「산」 이라는 단편을 읽고서였다.’ 라고 밝힌 바 있다.
‘그것은 바라볼 어떤 것이 아니라 들어가서 안길 어떤 것이었다.’와 ‘그리고 조금씩 산속으로 묻혀들어갔다.’ 의 표현은 <한 여자 돌속에 묻혀 있었네>라는 이미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해 준다.
또한 ‘멀리서 보는 사람에게는 푸르름한 신비로 나타나는, 능선마다에 서려 있는 그 태고의 무시간성(無時間性)은 그속에 묻히는 사람의 가슴속에 평지의 토막난 시간 개념이 낸 상처를, 엄청난 그 대조(對照)로써 어루만져주었다.’ 는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와>와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이라는 푸른 시각적 이미지와 무한대로 확장되어 신비한 이미지를 생성하는 무시간성 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IV. 맺음말
80년대는 지나갔다. 시를 짓밟고 억누르던 시대상황에 돌을 던지고 저항하는 몸부림은 이제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80년대의 정치적 외상으로부터 문학은 이제 자유롭다. 예술이 예술을, 시가 시를 고민하고 반성하는 시대는 지나갔고, 이제 더 이상은 파괴하고 실험해야 할 형식도 남아있지 않다.
이성복은 ‘남해 금산’ 이후 연애시의 세계로 전환하고 존재의 구원에 대한 시를 창작했다.그의 시는 현실과 시인의 거리 면에서 풍자로 출발하여 종교적 신앙으로 발전하는 기이하고 일면 부적절한 형태로 발전했다. 그리고 시인 자신도 느낀 한계점, 그리고 독자들과 더 이상 호흡하기 곤란함도 이유가 되었다. 이런 현상은 이성복의 초기 시는 동시대의 보편적인 화두를 던지고 있었지만 후기로 갈수록 작가의 관념세계로 초점이 모아져 가는 것을 보고 확인할 수 있다.
사실 이성복의 시는 그 초기 시들이 매우 비평적 작용이 풍부한 시임에도 불구하고 참여시는 아니었다. 모든 문학이 참여시이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성복의 경우 이 점은 그의 문학의 한계를 지정하는 면에서 큰 역할을 한다고 본다. 대안 없는 비평은 단지 넋두리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 넋두리에서의 탈출구도 그에게 별 희망이 있는 대상은 아니었다. 적어도 현실과 부단한 대화를 지속해야 한다는 시인의 입장에서 보면 이상세계로의 도피는 현실에는 아무런 희망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황지우는 ‘나는 너다’ 이후 긴 침묵과 방황 끝에 선적 직관의 세계로 망명’ 하고 있는데,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한 시대의 종언일 것이다.
현재를 살고 있는 시인들은, 80년대의 젊은 시인들처럼 시대의 모순에 얽매여있지 않다. 80년대의 시가 모든 것을 파괴하고 부수는 데 주력했다면, 그 이후의 시는 그 붕괴의 현장에서 또 다른 ‘징후’를 찾아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간다. 어쩌면 이성복과 황지우가 새로운 시세계를 열어가고 있는 것은, 그들이 화석화 된 과거의 존재가 아니라, 현재를 살아내고 있다는 증거인지 모른다.
80년대를 모독하고, 부수었던 해체시의 정신은 새로운 양상으로 변모하고 있고, 그것은 이성복과 황지우에게서도 유효하다. 그 새로운 양상은 역시(그것이 어떤 형식을 가지고 있는가에 관계 없이) 그 시가 살아가고 있는 그 순간, 그 세계 속에서 날마다 새로운 ‘모순의 신호’와 ‘시대의 징후’를 민감하게 읽어낼 것임은 틀림없다.
*목 차
I. 머리말
II. 황지우의 시 세계
II-1. 황지우. 시인 소개.
II-2. 황지우의 시세계.
II-3. 황지우의 초기 시세계를 분석함에 앞서.
II-4. 황지우 초기 시세계의 숨은 힘.
II-5. ‘피에 젖은 새벽별을 노래하다’ 황지우의 시 ‘윤상원’ 분석
III. 이성복의 시세계
III-1. 이성복. 시인소개.
III-2. 이성복 시인의 시세계
III-3. 이성복 시인 ‘어떤 싸움의 기록’
III-4. 모성,자연으로 회귀하다 - '남해금산'
IV.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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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07.04
  • 저작시기200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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