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정권의 경제건설을 어떻게 봐야 할까(A+레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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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박정희 정권의 경제건설을 어떻게 봐야 할까(A+레포트)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서론

2. 박정희정권의 대외 지향적 성장방식
(1)외자도입의 실상
(2)공업발전의 오점

3. 수출이 신장된 한편 농촌경제 취약점

4. 결론(박정희정권의 경제 개발을 어떻게 봐야 할까)

본문내용

장하기 위해서는, 어느 특정 부분만의 발전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면의 고른 발전이 이루어져야 한다. 정치적으로 민주주의 극도도 후퇴한 독재체제가 지속되었고, 사회적으로는 독재체제에 야합한 계층과 그에 반대하는 계층 사이의 갈등이 격심해졌으며, 문화적으로는 군사문화의 독소가 구석구석 퍼졌는데도, 다만 경제적으로 일정하게 성장했다 해서, 온갖 어두운 점이 감춰지는 것은 아니며, 그 민족사회 전체가 역사적으로 전진했거나 한 차원 높은 단계로 발전한 것은 더더욱 아니라고 본다.
해방과 민족상잔을 겪으면서 1960년대는 4.19운동을 폭발시켜 독재체제를 무너뜨릴 만큼 급성장했다. 그러나 그렇게 분출한 민족적 저력이 군사 쿠테타로 집권한, 구일본군의 일본군의 일부인 괴뢰만군 출신 중심으로 구성된 박정희 정권이 강압에 의해 오도되었다. 군국주의 일본의 군벌과 재벌이 야합하여 만주를 침략하던 역사를 현장에서 보고 배운 그들이, 그 전철을 밟으면서 군부와 연계된 재벌 중심 경제체제를 성립시키는 방향으로 민족적 저력을 잘못 이끌어갔던 것이다.
이 때문에 박정희정권 이후의 한국경제는 경제적 민주주의가 사멸되다시피 하고, ‘문어발식’이니 하는 일종의 천민자본주의가 일반화했으며, 그 틈에 급성장한 몇몇 재벌 중심으로 정경유착의 악습이 누적되었다. 1990년대로 오면서 그 폐단과 허점이 한꺼번에 드러나 IMF관리체제를 부르게 되었고 구조조정이니 하는 조치들이 등장한 것이라 하겠다.
1960년대 와서 발휘되기 시작한, 오랜 역사를 통해 양성된 우리의 민족적 저력이, 군벌과 재벌의 유착에 익숙해진 구일본군 출신이아니 다른 지도력에 의해 더 민주주의적인 방향으로 모아지는 것이 바람직했음은 물론이다. 비록 그 속도를 다소 늦추는 한이 있더라도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민주주의를 병행하는 방식으로 경제건설을 이룩하는 것이 더 바람직했다고 하겠다.
박정희정권이 우리 경제를 비민주적 방향으로 오도한 결과 1990년대의 ‘IMF관리체제’를 가져오게 되었다고 앞에서 말했다. 앞으로 우리는 군사독재세력이 아니 민주적 지도력을 바탕으로 재벌중심경제체제를 극복하면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 민주주의가 고루 발전하는 21세기 들어 민족통일을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흡수통일이 아닌‘타협통일’ ‘대등통일’을 성립시켜야 한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경제체제를 지금과 같은 재벌중심체제가 아닌 훨씬 더 민주화된 체제로 바꾸어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 토론 중에 나타난 의문점 (2개이상)
1.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은 분명 허점이 존재하였는데 외견상 성공한 이유와 과정이 궁금하 다.
2. IMF가 박정희 시대부터의 국채가 원인이라고 하는데 과연 그 시기의 국채의 영향은 어느 정도 되는가?
*참고문헌
한국역사연구회현대사연구반, 《한국현대사3》, 풀빛, 1991
이명규, 《한국경제의 이해》, 법문사, 1997
김인걸, 《한국현대사 강의》, 돌베개, 1998
전재호, 《반동적 근대주의자 박정희》, 책세상, 2000.
김영호, 《한국 경제의 분석》, 서문당,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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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12.15
  • 저작시기2006.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82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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