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주의 시대의 그림과 웃음 문화 - 마네의 <올랭피아>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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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인상주의 시대의 그림과 웃음 문화 - 마네의 <올랭피아>를 중심으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序

2. 인상주의 ; 인상주의 미술

3. 인상주의와 낭만주의, 사실주의

4. Edouard Manet

5. 19세기 파리의 시대상황

6. 올랭피아
1) 올랭피아 분석
2) 다른 누드화와 비교
3) 마네의 타 작품과의 연관성
4) 올랭피아에 나타난 보들레르의 영향

7. 올랭피아의 웃음의 의미

8. 結

본문내용

매춘부의 본질적인 모습을 표현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1) 벌거벗음이 강조된 실제의 여인
올랭피아는 신화의 주인공처럼 이상화된 누드로 그려져 있기 보다는 벌거벗었음이 강조된 실제의 여인으로 그려져 있다. 보들레르의 시 <보석>을 상기시키는 장신구들, 즉 팔찌, 목에 두른 검은 리본 그리고 한쪽 발끝에만 걸친 슬리퍼 등으로 인해 나체임이 강조된 그녀는 누드의 여인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그러한 음란함을 지니게 된다.
2) 마른 몸매의 올랭피아
마른 몸매의 올랭피아는 “마른 여인은 신비한 즐거움을 준다”고 말한 보들레르의 개인적인 취향을 반영한 듯이 보인다. 마네는 파는 자로써 주체적인 면모를 지녔으며 “인간 영혼의 원초적인 고귀함의 표시라는 선천적인 욕구”를 가지고 자신들을 평범한 상류사회의 여인들의 고상한 아름다움을 모방하고 때로는 정욕의 억제로 순수함을 지녔다고 생각되어진 고급매춘부들의 모습을 어린아이와 같은 마르고 미숙한 몸과 당당한 자세와 차가운 시선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였다. 또한 <올랭피아>의 창백하고 마른 몸은 ‘음탕함’과 ‘순진함’이라는 이중성의 유희의 또 하나의 장소였다. <올랭피아>의 선정적인 나체에 칠해진 시체와 같이 창백한 색채는 그녀에게 순결성을 가져다주는 차가움을 연상시키지만, 내키지 않는 성행위로 인한 굴욕과 희롱을 감수한다는 점에서 이 창백함은 음란함과 결합되어진다.
3) 올랭피아의 시선
보들레르의 시 <보석>의 “길들인 호랑이처럼 나를 지긋이 바라보는”이라는 시구를 연상시키는 올랭피아의 시선은 보들레르가 묘사한 숨어서 기다리는 야만인이자 먹이를 기다리는 야수처럼 야성적이며 게으르고 때로는 집중력을 보여주는 눈빛에 다름 아니다. 이 시선을 시인 발레리는 우아한 고급매춘부에게 “제례적인 동물성”을 더하여 주는 한 요소로 보았다. 올랭피아의 시선은 보들레르의 시, <춤추는 뱀>에서 묘사된 무감동하고 금속과 섞인 보석의 차가움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 차가운 시선과 얼굴 표정은 선정적이거나 남성을 유혹하고 있다고 보여지지 않으며 오히려 무감동하고 초연해 보인다. 이 시선을 통해 고급매춘부의 당당하고 순수한 모습을, 더 나아가 평범하고 고상한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때로는 지적이었던 그들의 정신성까지 표현한다.
4) 흑인 하녀와 검은 고양이
흑인 하녀와 검은 고양이는 “원초적인 미개함”과 섹슈얼리티를 강조해 주기 위해 사용한 보들레르적인 주제였다고 할 수 있다. 올랭피아의 발아래 웅크린 검은 고양이는 가장 보들레르적인 상징이자 고급매춘부인 올랭피아를 음란하며 악으로부터 나오는 저속한 아름다움을 지닌 여인으로 생각되게 하는 가장 직접적인 요인이다. 당시 고양이는 엄청난 성욕과 난잡하고 위험한 섹슈얼리티를 지닌 동물로 알려져 있었다. 또 검은 고양이는 주로 밤에 활동하고, 텔레파시를 갖고 있고, 차가운 시선으로 사람들의 힘을 빼앗는 동무로, 그리고 무엇보다도 부도덕하고 규칙을 무시하며 사악한 동물로 알려져 있었다. 따라서 이 검은 고양이는 <올랭피아>의 섹슈얼리티 뿐 아니라 그녀의 근본적인 악함과 무질서, 그리고 문란한 도덕성을 강조해준다.
7. 올랭피아의 웃음의 의미
결국 올랭피아의 웃음은 비웃음, 즉 조소이다. 마네는 벌거벗은 올랭피아를 화폭 속에 담아냄으로써 19세기의 파리의 상황을 여가 없이 그려 내었던 것이다. 올랭피아의 관객을 향한 담담한 시선 및 무표정인 듯한 미소(?)는 겉으로는 높은 지위나 신분을 자랑하며 고상한 짓을 일삼지만 그 뒤에서는 온갖 추하고 더러운 짓을 일삼는 귀족들을 향해 신랄한 비판과 날카로운 풍자를 날려주는 것이다.
당시의 부르주아 계층에선 <우르비노의 비너스>와 같은 그림을 그려 놓고 단지 신화화된 비너스의 모습만을 추구하며, 도덕과 예술을 논하며, 겉으로만 고상한 척을 다했던 것이다.
따라서 올랭피아의 웃음은 이렇게 말한다.
"이 그림을 보고서 나를 향해 비난을 돌리는 너희는, 착각 속에 빠져 있지, 마치 너희가 대단한 사람들인 마냥.... 나를 봐! 난 창녀야! 너희들이 바라보는 나는 바로 현실이라고!! 똑똑히 알아들어!!"
8. 結 인상파 화가들의 주 재료였던 빛, 이 빛은 어둠을 밝히는 속성이 있다. 즉 빛과 어두움이 만날 때면 빛은 언제나 어둠에 이기고 어둠은 물러나게 된다. 빛 앞에 어두움은 설 자리가 없게 되는 것이다. 결코 두 존재는 함께할 수 없다.
마네가 그린 올랭피아, 특히 올랭피아의 관객을 향해 정면으로 쳐다보는 시선과 약간 머금은 그 미소는 그 당시의 사람들의 어두움을 밝게 비추는 빛이라고 생각한다. 너무나도 강하고 밝은 빛이 사람들에게 비춰지자, 어두움을 즐기고 있던 사람들, 특히 부르주아 계층들은 이 빛을 견딜 수가 없었고 빛을 물리치기 위해 갖은 방법을 다 썼던 것이다. 자신의 어두운 면을 밝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은 누구나 모순적인 존재라고 생각한다. 매우 도덕적이지만 그 뒤엔 추악한 모습이 숨어있고, 선하지만 그 속엔 사악함이, 이타적이지만 이기적인, 양립하기 어려운 요소들을 우리 인간은 모두 껴안고 살아간다. 19세기의 프랑스 사회의 시민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 사람들을 향해 올랭피아는 어쩌면 인간의 모습 그대로를 비춰주는 역할을 맡았던 것이다. 빛 앞에 자신의 모습 그대로가 드러나자, 그것은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이상적인 모습과는 판이하게 달랐던 것이다. 괴물 같은 자신의 본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진정 고문에 가까운 고통이었을 것이다.
올랭피아는 단지 그 시대에만 국한되어 그러한 의미를 가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자신들에게도 올랭피아는 어떤 말을 꺼내려고 할 것이다. 우리들을 똑바로, 전혀 수줍지 않게 쳐다보면서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올랭피아가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1865년에 태어나 14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하얀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올랭피아는 아직도 우리를 보면서 웃고 있다.
* 참고문헌
위험한 그림의 미술사 : 바로크에서 현대까지 미술사를 바꾼 명화의 스캔들, 조이한
세계명화비밀, 모니카 봄 두첸
마네의 올랭피아 연구 - 보들레르의 영향을 중심으로, 홍익대학교 이주연 석사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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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12.28
  • 저작시기20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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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385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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