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운의 3.1독립정신의 애국 계몽사상의 의의와 역사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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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머리말

2. 3.1운동은 무엇인가?
1) 배경과 동기
2) 경과
3) 독립 선언문의 내용

3. 3.1 운동과 일본의 억압

4. 유심 잡지에 나타난 시대정신

5. 한용운과 공약삼장이 차지하는 비중

6.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의 개요〉에 나타난 독립정신

7. 공판 기록에 나타난 3.1정신

8. 맺는말

<<참고 문헌>>

본문내용

보자..1919년 3월 11일 경무총감부에서
문: 피고는 금후에도 조선의 독립운동을 할 것인가.
답: 그렇다. 계속하여 어디까지든지 할 것이다. 반드시 독립은 성취될 것이며, 일본에는 승(僧)에 월조(月照)가 있고 조선에는 중에 한용운이 있을 것이다.
라 하고 1919년 5월 8일 경성지방법원 예심에서.
문: 이 선언에는 '最後의 一人까지 最後의 一刻까지'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폭동을 선동한 것이 아닌가.
답: 그런 것이 아니다. 그것은 조선 사람은 한 사람이 남더라도 독립운동을 하라는 것이다.
문: 피고는 금번 계획으로 처벌될 줄 알았는가.
답: 나는 내 나라를 세우는 데 힘을 다한 것이니 벌을 받을 리 없을 줄 안다.
문: 피고는 금후로 조선 독립운동을 할 것인가.
답: 그렇다. 언제든지 그 마음을 고치지 않을 것이다. 만일 몸이 없어지면 정신만이라도 영세토록 가지고 있을 것이다.
라 하고 《동아일보》 1920년 9월 25일자 신문에 전하는 한용운의 공소 공판기에는
문: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은 어떠한가.
답: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국가의 흥망은 일조일석에 되는 것이 아니다. 어떠한 나라든지 제가 스스로 망하는 것이지 남의 나라가 남의 나라를 망하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수백년 동안 부패한 정치와 조선 민중이 현대 문명이 뒤떨어진 것이 합하여 망국의 원인이 된 것이다. 원래 이 세상의 개인과 국가를 막론하고 개인은 개인의 자존심이 있고 국가는 국가로서의 자존심이 있으니 자존심이 있는 민족은 남의 나라의 간섭을 절대로 받지 아니하니, 금번의 독립운동이 총독 정치의 압박으로 생긴 것인 줄 알지 말라. 자존심이 있는 민족은 남의 압박만 받지 아니할 뿐 아니라 행복의 증진도 받지 않고자 하느니 이는 역사가 증명하는 바이라. 4천년이나 장구한 역사를 가진 민족이 언제까지든지 남의 노예가 될 것은 아니다. 그 말을 다하자면 심히 장황하므로 이 곳에서 다 말할 수 없으나 그것을 자세히 알려면 내가 지방법원 검사장의 부탁으로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이라는 글을 감옥에서 지은 것이 있으니 그것을 갖다가 보면 다 알 듯하오.
문: 그 서류를 보고 독립에 찬성을 하였나.
답: 그것을 보고 찬성한 것이 아니라 다소 나의 의견과 다른 점이 있어 개정한 일까지 있소.
라 하였다. '독립은 민족의 자존성'이라고 강조하는 한용운의 맹렬한 독립론이 민중의 가슴을 움직여 나갔다. 만해 한용운의 공소 공판기는 당시 《동아일보》사회면에 '한용운의 맹렬한 독립론'이라는 톱기사가 되어 보도될 정도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사자후(獅子吼)였다. 만해 한용운은 옥중 답변을 통하여 더욱 자신의 의지를 분명히 했다. 더 나아가 출옥하는 날 기자들의 질문에 "지옥에서 극락을 구했다" 는 만해의 표현은 걸림없고 무애자재한 보현행의 이상을 실천하는 보현보살의 화현이 아닌가 싶다. 그것은 민족의 자존성을 강조하는 길이요, 민족이 살아가는 영원한 길임을 확인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8. 맺는말
만해 한용운의 3 1 독립정신에 대하여 지금까지 논의를 살펴왔다. 우리는 여기서 그의 철저한 신념에 의한 행동 철학을 살필 수 있었다. 옳은 일을 위하여는 생명까지도 무시하는 특립독행의 정신을 통하여 3 1운동의 숭고한 정신사를 발견하게 된다.
그 첫번째 작업이 《유심》지를 통하여 3 1운동의 전위지 성격의 파악이었다. 지금까지는 거의 관심 밖에 머물던 만해 한용운이 창간한 《유심》지가 3 1운동사에 있어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고, 이미 이 잡지에 민족 대표들이 참가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언론 활동을 통하여 세계사의 흐름과 시대정신을 꿰뚫어 보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동안에 논란이 있어왔던 공약삼장 부분에 대한 만해 추가설을 뒷받침할 수 있는 논리를 당시 선언서 작성 작업에 관여되었던 육당이나 최린의 진술서를 토대로 새롭게 살펴보았다. 여기서 육당은 자기가 작성한 문면과 다른 문면이 있다는 진술과 만해의 내 의사와 다른 부분이 있어 내가 개정한 일까지 있다는 진술들을 토대로 만해 작성설을 확인하였다. 더 나아가 공약삼장이 가지는 내용의 특성을 살필 때, 그것은 불교 철학의 화엄사상의 보현행원품의 무진 연기사상이 용해되어진 부분임을 살폈다.
다음으로,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의 개요〉에 나타난 독립정신은 자유 평등 평화의 정신을 근간으로 하여 만해 한용운의 정신이 가장 함축적으로 나타난 명문임을 살폈다.
옥중에서 아무런 참고 자료 하나 없이 53장의 대논문을 완성한 사실에서 볼 때, 만해가 얼마나 조국의 독립을 열망하였으며 또 그것을 위하여 노심초사하였으면 이러한 논설을 쓸 수 있었을까를 우리는 깊이있게 살펴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 자유의 정신을 통하여 불보살의 이상을, 평등정신을 통하여 진리의 큰 수레를, 평화의 정신을 구현하여 화합의 한마당을 펼치는 한용운의 독립정신의 깊이를 확인하였다. 이것은 참으로 인간정신이 다다를 수 있는 극치점이요, 우리들의 영원한 이상인 것이다.
끝으로, 공판 기록에 나타난 3 1정신의 철학이 무엇인가를 살필 수 있었다. 추호의 허점도 용납하지 않았던 만해의 법정 진술은 우리들의 묵은 체증을 말끔히 씻어주고도 남는다. 그래서 탄허 스님은 만해를 일러 '저울추' 라고 하지 않았던가. '만근을 달아 올리는 저울추', 과연 탄허다운 표현이다. 훗날 일본의 두산만이 만해의 서거를 애도한 이유도 그의 법정 진술이 하도 당당하여 내심 두렵기도 하고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는 술회는 우리에게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말이다.
이제 만해 한용운의 3 1 독립정신에 나타난 만해 철학에 우리가 관심을 갖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귀결점이요, 민족의 자존을 확인하는 길이었다.
<<참고 문헌>>
文定昌, {軍國日本 朝鮮强占 36年史}(전3권), 1965∼1967 백문당
車基璧 엮음, {일제의 한국식민통치}, 1985 정음사
愼鏞廈, {韓國民族獨立運動史硏究}, 1985 을유문화사
趙東杰, {韓國民族主義의 成立과 獨立運動史硏究}, 1989 지식산업사
金雲泰, [조선총독부의 수탈조직과 기능], {한국독립운동사연구}6, 1992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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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1.18
  • 저작시기20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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