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도덕경의 현대사회 교훈과 한계점에 관한 고찰
본 자료는 4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해당 자료는 4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4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차

1. 노자철학의 기본 성격

2. 들어가기: 인문학의 위기와 IT산업
(1) 노자해석의 관점 무한자와 변증법
(2) 스피노자의 윤리학과 노자도덕경
(3) 무한자와 유한자의 관계
(4) 노자 1장 해석
(5) 만물을 낳아 키우는 어머니 :노자의 도

3. 노자의 실천철학 :무위의 위

본문내용

지식은 잘못된 사회적 통념이다. 이는 또한 현대적 문맥에서 국가적, 사회적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것이기도 하다. 노자의 이 교설을 필자는 북한에 적용해 보고 싶다. 주체사상이라는 이데올로기로써 북한의 통치자들은 그곳의 어린이들이 굶어 죽게 되는데도 민중들이 기존체제에 반항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노자가 미워하는 지식은 바로 이런 정치적, 인위적 가치 또는 세계관을 말한다. 헐벗고 굶주리면서도 암기하고 복창해야 하는 무수한 이념들, 교시(敎示), 학습, 맹세 등등. 그런 쓸모없는 지식 대신 차라리 쌀 한 봉지 더 주는 것이 인민들에게 축복이다.
그런 공허한 지식으로부터 백성들을 해방시켜라! 노자의 無知無欲 사상의 현대성을 필자는 바로 그런 온갖 부자연스럽고 불합리한 사회적, 정치적 정보와 지식의 무지로 보고 싶다.
虛其心, 實其復 (허기심 실기복): 그 마음을 비워 그 배를 채우게 하고
弱其志 强其骨 (약기지 강기골): 그 뜻을 부드럽게 하여 그 뼈를 강하게 한다.
이 문장 역시 이와 같은 방식으로 해석 가능하다. 백성들의 배를 채우고 건강하게 하는 일이 실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온 백성이 배부르고 건강한(뼈가 강한) 나라, 이것이 말이 쉬워 그렇지 실은 지상천국이다. 김용옥은 자본주의 체제를 욕심의 체제로 보지만 그는 문제의 절반 밖에 보지 못한다: 미국 같은 고도의 기술적, 경제적 대국에서도 얼마나 많은 거지들이 있는가! 필자의 소견으로는 역사적으로 어떤 나라도 온 백성을 배불리 먹게 하고 건강하게 하지는 못했다. 이것을 이룰 수 있는 정치가가 있다면 그는 진정 성인이리라! 공산주의가 망한 이유도 바로 그것이 인민들의 배를 부르게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언론의 자유와 민주주의의 결핍도 문제였지만 최종적으로는 경제문제의 한계에 부딪힌 때문이다.
常使民無知無欲 (상사민무지무욕) : 항상 백성으로 하여금 앎이 없게 하고 욕심이 없게 한다.
여기서 뜻하는 지식(知)이란 실은 참다운 지식, 곧 道의 깨달음이 아닌 통속적 오성적 지식과 제반 동시대의 풍조, 관습 등을 말한다; 또한 체제 수호적 온갖 이데올로기들이다. 앞에서 해명한 것처럼 일상적, 형식논리학적 지성은 사물의 전체를 인식할 수 없다. 거기다가 또 무익하고 해롭기까지 한 사회적 통념들도 있음을 생각하면 노자가 왜 그렇게 (사회 통념적) 지식을 비판하는 지를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따라서 필자는 노자의 사상을 반주지주의라고 볼 수 없다: 단지 그는 잘못된 지식을 비판한 것 뿐이다. 그리고 백성을 노자가 우습게 보는 아니 그렇게 보이는 이유중의 하나는 道의 인식의 어려움 때문이다. 그가 본 道 또는
自然이란 스피노자적, 헤겔적 개념의 도구들을 통해서나 겨우 문자적으로 표현 가능한, 시대를 엄청나게 앞서는 생각이었기 때문에 남들에게 자신의 사상을 알린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게 보였고 또한 그 당시 거의 모든 백성이 쓸 줄도 읽을 줄도 모르는 문맹이었음을 감안한다면 노자의 민중 교육적인 약점을 납득할 수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노자 자신마저 자신이 본 진실의 특이함에 놀라고 있었다는 것이다.
爲無爲, 則無不治 (위무위 즉무불치) : 함이 없음을 실천하면 다스려지지 않음이 없을 것이니.
無爲라는 것은 문자 그대로 인위적이고 임시방편적인 법규나 제도를 시행하지 않음을 말한다: 사실 우리 나라의 정치에서도 얼마나 많은 부자연스런, 불합리한 제도나 정책이 많았는지 모른다. 이런 것이 발생하는 이유는 위정자들의 욕심이나 사심 때문이다. 따라서 無爲의 사상은 모순된 현실정치 비판을 함축한다. 인위적인, 즉 입법자나 정치가의 사심에서 기인하는 통치는 항상 엄청난 백성의 고통을 초래한다. 이렇게 無人爲를 실현하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요구 사항이다; 왜냐하면 통치자도 감정이 있고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道의 정치, 자연의 정치를 구현하기 위해서 그 정치가에게는 완전한 자기 통제가 요구되어 진다. 이는 정치가가 감정이나 욕심을 전혀 갖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공과 사를 분별하라는 것이다. 따라서 無爲의 정치란 公益을 私益과 분리시키고 公益과 私益이 충돌할 때 과감히 私益을 포기하는 정신이다.
爲無爲의 정치는 다시 말하면 자기부정의 정신이고 자기의 의견을 道 즉 大와 일치 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小我를 부정하고 大我를 실현하는 것은 무한성의 구현이고 또 노자의 표현을 따르면 이것이다:
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
(생이불유 위이불시 장이부재)
낳으면서도 낳은 것을 소유하지도 않고, 지으면서도 지은 것을 내 뜻대로 만들지도 않고, 자라게 하면서도 자라는 것을 지배하지 않네.
노자도덕경 10장 김용옥 번역
이와 같은 道 의 움직임과 일치하는 정치가는 진정 성인이다. 이것이 또한 노자가 말하는 我自然의 경지이다. [노자 17장]
그러나 실제로 인간적 왕이나 독재자 등은 백성들 위에 군림하고 백성의 재산을 빼앗고 백성을 자신의 소유물이나 하수인으로 취급해 왔다.
정치가가 사심이나 욕심에 근거한 人爲의 정치를 하지 않고, 자연에 따르는 이성의 정치를 시행할 때 無不治 즉 못할 것이 없다. 우리나라 정치가들의 비극이 모두 자기 힘으로 무엇인가를 하겠다는, 또는 나 아니면 안 된다는 그런 소아병과 자만심에서 나옴을 알 때 노자의 無爲의 사상이 얼마나 귀중한지 모르겠다.
그런데 여기서 필자가 덧붙이는 한가지는 자연의 이치에 따르는 정치는 이성의 정치라는 것이다; 인간에 있어서 자연과 이성이 일치한다: 인간의 자연(nature) 즉 본성은 이성이다. 자연적인 것은 이성적인 것이고 좋은 것이다. 물론 노자가 이성이니 합리성이니 하는 말을 입밖에 낸 적이 없지만 그가 말하는 道는 자연의 이법(logos)이고 이것이 곧 이성이다. 이는 인간의 주관적 이성이 아니라 우주의 움직임을 가리키는 천지의 시초이고 만물의 근본인 무한자이다. 이런 근거에서 필자는 지금까지의 통설과는 달리 노자를 자연주의적, 자연법적 합리론자로 본다. 노자의 사상이 더 발전 했더라면 중국에서도 인간의 자연권, 자연법에 근거한 민주적 시민사회의 이론이 나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노자의 가치상대주의 내지 주관주의는 역시 스피노자의 그것과 비교될 수 있다.
  • 가격2,700
  • 페이지수13페이지
  • 등록일2007.03.05
  • 저작시기2007.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97806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