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불교 전통에 대한 이념적 근거와 반성적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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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목 차 ]
1. 호국불교는 불교인가 아닌가
1) 인도불교-국가의 불교외호
2) 중국불교-불교의 국가진호
3) 신라불교-호불국토
4) 회당 대종조의 진호국가-자주국가

2. 호국불교의 이념적 근거

3. 호국불교의 역사적 전개

4. 호국불교의 반성적 성찰

5. 호국불교의 나아갈 방향

본문내용

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것이다.
5. 호국불교의 나아갈 방향
우리나라 불교의 호국사상은 불교가 국가(국왕)를 보호하는 측면도 없지는 않았지만, 이는 우리나라가 중국문화권의 영행 속에 중국에서 불교를 전해 받아왔기 때문이다. 신라불교에서는 호국을 護佛法?護佛國土사상으로 발전시켜 왔으며, 이를 바탕으로 현대에 와서 회당 대종조는 자주자력불교로 자주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진호국가가 된다는 것으로 발전시킨 것
이다. 지금까지 호국불교의 이념과 원리를 순불교적 입장에서 살피면서 역사적으로 전개된 호국불교의 사실(史實)을 반성적으로 고찰해보았다.
그 결과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정법에 기초하지 않은 불교는 생명력의 소진을 불러오는 것은 물론 여러 가지 폐해를 초래한다는 사실이다. 전 역사의 흐름 속에서도 드러났지만 특히 고려불교의 경우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빈번했던 정교 유착적인 각종 법회로 말미암은 불교의 타락과 이에 따른 생명의 단축, 국고의 탕진으로 인한 백성의 경제적인 핍박 등은 좋은 교훈으로 남고 있다. 앞으로의 호국불교의 나아갈 방향도 이러한 뼈아픈 교훈을 거울삼아 정법에 입각한 측면에서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경전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정법은 국법을 포섭하고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각종 난마를 풀어헤칠 수 있는 진리의 근간이기 때문이다. 먼저 호국불교가 제대로 정립되기 위해선 불교적 입장에서의 호국이 무엇인가 하는 그 정확한 의미를 정립해야 한다. 호국불교에 대한 올바른 개념이 확립될 때 비로소 호국불교에 대한 이념과 철학이 바로 설 수 있다. 몇 년 전 교계에서는 ‘깨달음의 사회화’운동을 전개했었다.
그러나 구호만 그럴 듯 했을 뿐 ‘세속화’와 명확하게 구분될 수 있는 ‘사회화’의 이념과 철학이 뒷받침되지 않아 혼란스러움마저 안겨준 예가 있다. 마찬가지로 ‘불교’ 앞에 붙는 ‘호국’의 관형어가 어떤 정신과 실천방안을 가져야 될는지 확실하게 하기 위해선 먼저 그 의미를 분명히 해야 한다. 부처님은 《인왕반야경》에서 파사익왕에게 호국의 방법으로 ‘반야바라밀’을 수지해 실천하도록 당부하였다. ‘반야바라밀’이란 생사를 벗어나 열반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 지혜를 일컫는다.
즉 중생들로 하여금 저마다 참다운 삶과 최고의 행복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고 공업(共業)중생으로서 다함께 불국토를 만들어나가는 데 기여토록 하는 실천방안이 바로 호국의 원리다. 불교적 호국의 실천방안은 여러 가지 형태가 가능하다. ‘사회 및 경제정의의 실현’ ‘복지시설의 확충’ ‘인류평화의 구축’등 불교가 현대사회에서도 앞장서 해결해야 할 과제는 산적해 있다. 이러한 과제를 세부적 실천운동으로 이끌어내고 국민생활의 전반까지 파고들어 성과를 축적해낸다면 호국불교는 분명 새롭게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 둘째는 확대 재생산적 구조를 갖추는 일이다. 고려와 조선불교가 진실로 민중의 편에 서서 그들의 아픔을 대신할 수 없었던 이유는 왕실에만 의존했던 그 당시의 생리도 작용했겠지만 무엇보다도 불보살의 가피에만 의존케 하는 형식적인 중생 교화에 있었다. 당연히 모든 법회 및 의례는 기복적 형태로 흐를 수밖에 없었고 불자들이 행해야 할 계율의 실천 등은 암묵적으로 무시되었다. 이런 구조로는 전법도생의 부처님 유촉이 성과를 거둘 수 없다.
중생에게 필요한 불교, 구석구석 중생을 찾아가는 불교이면서도 제발로 중생들이 찾아오게 만드는 불교가 돼야만 한다. 물론 중생을 유익케 하는 요소, 만중생에 대한 평화와 자비와 구제의 구체적 프로그램을 갖추게 된다면 불교의 세계화는 그리 먼 시간의 일은 아니다. 이렇게 될 때 중생 구제의 호국원리는 보다 탄력적인 힘을 받게 될 것이다. 셋째는 호국의 대상은 분명 중생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호국의 ‘국’은 왕이나 권력자가 아니라 중생과 중생이 살고 있는 터전이다.
중생과 중생의 터전을 ‘호국’의 ‘국’으로 파악했을 때 호국불교가 해야 할 일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먼저 중생이 살고 있는 터전이 전쟁과 환경 문제 등으로 살상과 고통의 위기에 빠지게 되면 이를 해결해야 할 의무를 지게 된다. 또한 압제자로부터 핍박을 받게 되면 그 핍박의 굴레로부터 벗어나게 해줘야 한다. 또 중생이 탐진치 삼독과 무명으로 숱한 반목과 갈등 대립을 야기하면 진리의 등불을 밝혀 해탈의 세계로 인도해야 할 것이다. 이렇듯 중생을 위하면서 참된 행복과 영원한 자유를 누리도록 하는 것이 호국불교가 해야 할 일이다. 넷째는 대승불교의 보살정신에도 나와 있듯이 파사현정의 정신을 실현해야 한다.
절대부동의 엄청난 힘을 가진 권력자라 할지라도 사악함이 있으면 사천왕의 기개로 조복받아야 중생들을 위해 마땅할 것이며, 중생이 살고 있는 사회가 구조적 모순과 부조리로 만연하다면 정의로서 바로 세워야 할 것이다. 이제 더 이상은 불교가 왕조시대나 일제시대에 행했던 왕실의 ‘천수’나 ‘무운장구’를 축원하는 따위의 비겁한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중생을 위한 천수천안의 불교가 돼야 한다.
중생이 무엇 때문에 아파하고 무엇으로 인해 신음하는지 언제 어디서나 최첨단 고정밀의 안테나처럼 눈과 귀를 열고 있어야 한다. 삶의 현장에서는 중생들이 당장 사느냐 죽느냐의 기로에 서있는데 법당에서 요령을 흔들며 ‘세계평화’를 아무리 축원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전쟁과 기아와 질병으로 중생이 죽어 나가면 극락왕생을 비는 천도의식이나 해주는 불교가 되지 말고 사전에 그와 같은 죽음의 원인을 차단하는 노력을 기울여 중생의 고통을 덜어주는 불교가 되어야 한다.
전자문명시대를 살고 있는 중생 세계는 현재 말 그대로 전광석화와 같은 변화를 실감하며 새로운 세기에 적응하고 있다. 정치 경제 문화가 새롭게 재편되며 인류의 삶도 크고 빠른 폭으로 변화돼 가고 있다. 그러나 어떠한 질 높은 문화와 전자문명도 인간을 구제하지는 못한다. 불교의 역할이 쉼없이 계속돼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러한 때 그 역할을 부단히 찾아내서 중생과 함께 호흡하며 구원의 환경설정을 보다 쾌적하게 가꿔줘야 할 의무가 불교에 있다. 그 실천적 방향은 그간 호국불교에서 보여준 잘못된 관행과 불명예를 털어내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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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3.08
  • 저작시기20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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