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적 배경과 니코마스 윤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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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아리스토텔레스는 누구인가?

2.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적 배경은 무엇인가?

3. 니코마스 윤리학은 무엇인가?
1 ) 목적의 종류
2 ) 인간의 기능
3 ) 목적으로서의 행복
4 ) 중용(golden mean)으로서의 덕
5 ) 심사숙고와 선택
6 ) 덕론(德論)
7 ) 명상

4. 본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무엇인가?

5. 우리가 이제 생각해 볼 내용은 무엇인가? (결론, 내용정리)

본문내용

로 정치학이다.
1권 3장
정치학 연구의 대상에는 견해차가 존재한다. 그리고 선에 대한 판정 여부에 있어서도 견해차는 존재할 수 있다. 이렇게 정치학이나 선에 대한 견해차가 존재해 우리가 이 문제를 확실하게 논할 수 없다면 이 정도에서 위 내용의 언급은 그만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된다. 다음으로 정치학을 듣는 청강자들에 대해 생각해 보자. 젊은 사람들은 정치학의 청강자로서는 부정적이다. 그들은 혈기왕성하지만 경험이 부족해 어리석기 때문이다. 결굴 정치학의 청강자는 이성적 원칙에 따라서 추구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1권 4장
최고의 선을 추구하는 학문이 정치학이라면 도대체 최고의 선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행복이다. 그렇다면 행복이란 무엇인가? 어떤 사람들(플라톤 학파)는 자존적인 선이 존재한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그것은 거짓이다. 이것을 추구하는 학문인 정치학 논의의 출발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것, 즉 가까운 것에서부터 출발하게 된다. 이것만 보아도 자존적 선의 존재는 거짓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1권 5장
인간 생활은 3가지 생활 형태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향락적 생활이고 둘째는 정치적 생활이며 셋째는 관조적 생활이다. 각각의 생활형태는 부정적 부분이 존재하며 관조적 생활은 우리가 논의할 문제가 아니다.
1권 6장 - 플라톤 학파의 이데아론 반박
플라톤 학파의 이데아론을 살펴보면 선이란 실체, 성질, 관계에 대해서 사용되어 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실체는 이데아에 앞서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데아는 실체로부터 나온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선은 단일하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선 자체와 개개의 선은 모두 같은 선이다. 인간이 느끼는 행복은 그들이 처한 상황이나 현실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결국 선은 하나뿐이라는 플라톤 학파의 설명은 틀린 것이 된다. 선은 개개인이 모두 다른 종류를 소유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1권 7장
그렇다면 지금까지 우리가 정의하려 노력한 행복이란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덕에 일치하는 정신의 활동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다.
1권 8장
이렇게 정의 내려진 선에는 3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는 정신에 관계되는 선이고 둘째는 외부적인 선, 셋째는 신체에 관계되는 선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가장 행복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그것은 아마도 잘 살면서 또한 잘 행하는 사람이다. 즉 유덕한 행위를 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행복한 사람인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유덕한 행위는 그 자체로 즐거움을 가져다 주는 행위이다.
2권 1장
지적인 덕은 교육에 의해 발생한다. 반면에 도덕적인 덕은 습관의 결과이다. 우리는 흔히 어렸을 때부터 습관이 좋은 아이가 커서까지 유덕한 삶을 사는 경우를 보게 된다. 이처럼 결국 도덕적인 덕은 본성에 내재하는 것이 아니다.
2권 2장
덕이 무엇인지 아는 것은 실천하는 것과 같다. 즉 알면 바로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덕적 덕은 어떠한 방법으로 실천할 수 있을까? 도덕적인 덕을 실천하는 것에는 각기 다른 대처방식들의 중심이 되는 것, 즉 중용이 필요하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덕을 생기게 하는 원인은 똑같이 덕 있는 활동의 원인도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무엇인가를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결국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덕이 무엇인지 아는 것-실천하는 것
2권 3장
그렇다면 덕이란 과연 무엇인가? 덕은 쾌락과 고통에 관하여 최선의 행위를 하는 것이다. 즉 마땅히 기뻐해야 할 일에 기쁨을 느끼고 괴로워해야 할 일에 괴로움을 느끼는 것이 바로 덕인 것이다.
2권 4장
그렇다면 덕은 어떤 상태에 있어야 가장 좋은 활동을 할 수 있을까? 그 조건을 살펴보면 우선 덕은 지식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또한 덕 바로 그 자체가 목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덕에 대한 행동은 확고하고 변하지 않는 것이어야 하겠다.
2권 5장
그렇다면 덕은 정념, 능력, 성품 중 어떤 것과 관련이 있을까? 여기서 말하는 정념은 쾌락이나 고통을 수반하는 감정이고 능력은 정념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이며 성품은 정념에 관한 처리 문제를 다루는 것이다. 여러 가지 덕의 기본적인 성질로 보아 덕은 성품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즉 행동으로 표출될 때 그것이 옳으면 덕이 되고 옳지 못하면 악덕이 되는 것이다. 즉 덕은 선택의 상황을 내포하고 있다.
2권 6장
덕은 인간을 선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덕은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은 중간을 택하는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중용이다. 중용은 개개인마다 다르게 적용되는 것이며 또한 모든 행위와 정념에 중용이 있는 것은 아니다.
2권 7장
중용, 즉 덕은 개별적 상황에 적용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공포와 태연의 중용은 용기이고 비굴, 아첨과 심술의 중용은 친근미 이다. 상황에 따라서 중용은 다르게 선택될 수 있으며 같은 중용을 잘못 사용하면 오히려 해가 된다.
2권 8장
여기서 우리는 이제 중간과 비교해 봤을 때 중용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적인 부분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우리는 쉽게 과도와 부족은 대립관계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의 중간은 양 극단에서 거리상으로 정확히 가운데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중용에서는 어떤 경우는 부족이, 어떤 경우는 과도가 더 대립된다고 생각되어 진다. 즉 상황에 따라 적절한 중간이 융통성 있게 결정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원인은 때로는 사물 자체에서 나오기도 하고 우리 자신으로부터 나오기도 한다. 더 많이 나가는 방향의 것이 중용에 더 반대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5. 우리가 이제 생각해 볼 내용은 무엇인가? (결론, 내용정리)
결론은 중용은 지키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따라서 양극단 가운데 덜 그렇된 것, 즉 중간에 좀 더 가까운 행동을 취하는 것이 바로 덕을 행하는 길인 것이다. 중간이라고 해서 상황을 고려하지도 않고 중간점만 행동한다면 어떤 경우에는 그것이 그릇된 것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이렇게 중용을 행하는 것이 바로 덕을 행하는 길이며 우리가 궁극적인 선이라고 생각하는 행복으로 가는 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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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3.17
  • 저작시기20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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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399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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