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기시대의 사회와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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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신석기시대의 사회와 문화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 신석기시대의 사회와 문화

1. 자연환경과 문화의 성립

2. 유적분포와 문화영역 구분

3. 유적과 유물
(1) 유적
① 주거지
② 무덤
③ 조개더미
(2) 유물
1) 토기
① 중․서부지방
② 동북지방
③ 서북지방
④ 남부지방
2) 석기
① 어로용
② 수렵용
③ 농경용
④ 일상용구
3) 골각기
① 어로구
② 수렵구
③ 농경구
④ 일상용구
4) 토제품

4. 경제생활과 문화
(1) 수렵과 어로
1) 수렵
2) 어로
(2) 농경
1) 중․서부지방
2) 동북지방
3) 남부지방
(3) 의생활과 장신구
1) 의생활
2) 장신구
(4) 예술과 신앙

5. 연대와 사회
(1) 연대
1) 상대연대
2) 절대연대
(2) 사회

6. 신석기문화의 종말
(1) 중․서부지방
(2) 동북지방
(3) 서북지방
(4) 남부지방

본문내용

을 빚어 만든 것으로 농포리, 신암리, 동삼동에서 출토되었다. 토우 중에는 여성이 많이 나타나는데 이점은 당시에 여신신앙이 숭배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특히 여성상에는 유방과 궁둥이를 과장해 표현하고 있는데 이것은 다산과 풍요를 기원했던 것으로 이해된다.
이 밖에도 연대도에서 조사된 무덤이 살림공간의 주변에 바로 조영된 점은 죽은 사람과 산사람이 같은 생활공간에서 공존한다는 일체화된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암사동주거지의 경우 새로 만든 주거지의 화덕 바로 밑에 먼저 만들어진 주거지의 화덕이 파괴되지 않은 상태로 겹쳐서 발견되는데, 이것은 당시 인간이 갖고 있었던 불에 대한 외경심을 나타내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5. 연대와 사회
(1) 연대
1) 상대연대
상대연대의 결정은 고고학적 자료의 선후관계를 밝히는 것으로 층위의 순서가 기준이 되는 층서학, 그리고 토기나 석기를 비롯한 유물의 형식비교를 바탕으로 연구되는 형식학적 방법이 있다.
중서부지방의 토기는 네 형식으로 구분된다. Ⅰ식은 구연부 동부 저부의 3부 위에 서로 다른 문양이 시문되는 것이다. Ⅱ식은 저부에 무늬를 생략한 것이다. Ⅲ식은 토기 전면에 고기뼈 무늬 한 종류만 나타난다. Ⅳ식은 무늬가 전혀 시문되지 않은 토기와 덧무늬 한 줄, 손톱무늬 한줄 등 무늬가 퇴화되어 있는 것으로 구분된다. Ⅰ- Ⅳ식은 층위 상으로도 그 순서가 확인되고 있다. 즉 층서학 및 형식학적 방법으로 볼 때 중서부지방의 토기는 Ⅰ식은 전기 Ⅰb와 Ⅱa식은 중기, Ⅱb식과 Ⅲa.Ⅲb식은 상한이 후기전반과 후반으로 상대편년 된다.
동북지방토기는 서포항유적에서 층위 상으로 출토된 토기로 볼 때 Ⅰ.Ⅱ기층 토기류는 전기에 Ⅲ기는 중기에 Ⅳ.Ⅴ기는 후기에 편년된다.
남부지방토기는 다른 지방과는 달리 융기문토기에서 빗살무늬토기로 발전되었는데 빗살무늬토기의 무늬에도 지두문, 신선문 계통의 집선문. 압인문 등 중서부지방과 동북지방의 토기에 보이지 않는 문양이 시문되어 있어 지역적인 특성이 잘 나타나고 있다. 이 지역의 토기는 융기문토기→ 구연부에만 시문된 빗살무늬토기(전기)→ 전면무늬토기(중기)→ 구연부무늬로 퇴화→ 한 줄의 빗금무늬, 겹아가리토기(후기)로 변화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2) 절대연대
상대편년은 시기의 선후관계는 밝힐 수 있으나 연대를 분명히 하는 데에는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 등에 의한 절대연대의 도움이 필요하다 현재까지 우리나라 신석기시대 유적에서 얻어진 방사성탄소연대는 60가지 예에 이른다. 이를 상대편년된 지역별 유적에 대입할 때 중서부지방은 암사동이 기원전 5300-기원전3200년, 남부지방은 동삼동이 기원전 5000-기원전1500년으로, 동북지방의 오산리유적은 기원전6000-기원전4400년으로 밝혀지고 있다. 이러한 수치로 볼 때 우리나라 신석기시대는 기원전 6000년에서 기원전 1000년까지 5000년간 존속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2) 사회
우리나라 신석기시대의 사회는 동남아시아 오스트레일리아 등지의 원시미개민족 즉 신석기시대문화수준에 머물러 있는 주민들의 생활상과 비교해서 유추해볼 때 신석기시대인들은 모든 행위가 공동체적인 집단행동으로 이루어져 공동생산. 공동소유. 공동분배에 기초를 두고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생산 활동에서 여성의 역할이 큰 경제생활을 영위해 자연히 모계씨족사회에 바탕을 둔 사회조직체로 운영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사실은 대부분의 원시 미개민족들의 혼인 및 가족제도가 모계(母系)인 점에서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씨족모계사회는 농경이 본격화하는 신석기시대 말기부터 남성의 역할이 커짐에 따라 부계(父系)사회로 넘어갔을 것으로 생각된다.
6. 신석기문화의 종말
(1) 중서부지방
중서부지방에서는 신석기문화와 청동기문화가 층위를 달리하여 조사된 평양 금탄리와 남경유적을 통해서 빗살무늬토기와 민무늬토기의 일시적인 동반현상과 민무늬토기문화의 정립상을 살필 수 있다. 신석기문화층인 금탄리2문화층에서는 토기 겉면 전체에 생선뼈무늬가 베풀어진 토기, 몸통에 덧무늬 한 줄을 덧대준 토기, 빗금줄무늬 서너 줄을 등 간격으로 베풀어준 토기와 함께 다수의 빗살무늬계 민무늬토기가 출토되었다. 남경유적 신석기시대 말기 토기의 양상도 대체로 빗살무늬계 민무늬토기의 비율이 전체 토기의 30퍼센트에 가까워지는 등 민무늬토기 문화에 더욱 접근하고 있다.
(2) 동북지방
서포항, 범의구석유적 등 신석기시대의 만기유적에서 빗살무늬토기와 민무늬토기와의 공반관계를 살필 수 있다. 서포항 신석기시대 5기층에서는 4기층에 보이던 번개무늬.삼각무늬.점줄무늬.생선뼈무늬 등 신석기시대 말기의 무늬들이 퇴화해 없어지는 대신, 빗살무늬로는 생선뼈무늬만이 아가리에서 몸통일부에 베풀어지는 토기 외에 민무늬의 겹아가리토기가 증가된다.
범의구석의 신석기시대유적에서는 10기의 움집터가 조사되었다. 여기서는 민무늬토기에는 굽다리잔과 간토기들도 보이는 데 그 수량은 같이 출토된 빗살무늬토기보다 많아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적인 양상을 잘 보여준다.
(3) 서북지방
신암리유적은 신석기시대 말기부터 청동기시대와 초기철기시대의 문화층이 퇴적되어 있다. 이 신석기시대 말기의 빗살무늬토기는 청동기시대의 영향이 깊게 나타나 있으며 이러한 변화가 청동기시대 층위에서 출토되는 무늬가 없는 미송리형토기로 이어진다.
(4) 남부지방
남부지방의 신석기시대 말기의 문화층은 부산동삼동과 금곡동, 농소리, 상노대도유적에서 확인되었다. 이 유적들은 오랜 기간에 걸쳐 문화층이 형성된 곳으로 말기에 이르면 무늬가 아가리에 일부만 베풀어진 것, 무늬가 퇴화하여 간단한 빗금무늬만 들어 있는 빗살무늬토기와 함께 같은 아가리를 겹아가리로 만든 민무늬토기가 출토된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신석기문화는 이의 계승. 발전 속에서 청동기문화로 접어드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원래의 신석기시대 문화인이 새로운 문화의 소지자인 청동기시대인에 의해 정복되었다는 것보다는 서로의 혼거 속에 보다 발달된 문화의 경제체계를 갖고 있었던 청동기시대의 문화로 발전되어나간 것으로 볼 수 있다.

키워드

신석기,   사회,   문화,   유적,   유물,   토기,   주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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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4.01
  • 저작시기20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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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40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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