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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신학][기독교신앙][신학][과학][기독교][신앙][성경]기독교신앙과 역사변증, 신약신학, 구약신학, 실천신학, 과학의 본질, 과학의 방법, 과학의 특성, 과학과 성경, 기독교와 과학의 알력의 시기 분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들어가며

Ⅱ. 기독교 신앙과 역사변증

Ⅲ. 신약신학

Ⅳ. 구약신학

Ⅴ. 실천신학

Ⅵ. 과학의 본질, 방법, 특성
1. 과학의 본질
2. 과학적 방법
3. 과학의 특성

Ⅶ. 과학과 성경

Ⅷ. 기독교와 과학의 알력의 시기
1. 터툴리아누스와 아구스티누스
2. 중세 과학의 선구자
3. 16세기 : 과학과 신학의 투쟁기
1) 코페르닉스(1473-1543)
2) 부루노(Giordano Bruno,1548-1600)
3) 케플러(J.Kepler,1571-1630)
4) 갈릴레이 (Galileo Galilei,1564-1642)
5) 종교개혁자들의 견해
4. 과학과 신학의 분리기
1) 프란시스 베이콘(1561-1626)
2) 데카르트(R.Descartes.1596-1650)
3) 토란드(J.Toland 1670-1722)
5. 과학의 독주시대

본문내용

르게 취소되었다. 그의 주장이 인정된 셈이다.
이상에서 우리는 16세기와 17세기에 과학과 신학(교회)의 치열한 알력사건으로 고찰했다. 200년이 못가서 그들이 주장했던 모든 학설에 후세의 과학발전의 기초가 되었다.
5) 종교개혁자들의 견해
개혁자들은 교회의 권유를 앞세우며 지성인들의 새로운 발명을 무시하고 과학자들을 박해하는 일에 대해서는 로마천주교회에 반대했으나 과학자들의 새로운 발견이나 발명은 대체로 전통적인 교리와 조화되기 어려운 것이 많이 있다고 느꼈다. 루터는 코페르닉스의 지동설을 바보들이나 하는 이야기라고 무시했다. 제네바에서 화형당한 세르베투스는 전통적 3위 1체론에 반대했기 때문에 화형의 중벌을 받았다고 알려졌으나 사실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이미 그때 한 의사로서 혈액의 순환을 발견했다. 이 설이 기독교의 전통교리에 맞지 않았다고 한다. 이와같이 종교개혁자들은 당시의 과학자들과 함께 로마천주교회에 대하여 반대했으나 발달되기 시작한 과학에 대해서는 로마천주교회와 함께 반대했다.
4. 과학과 신학의 분리기
종교개혁운동이 전 유럽에 파급되고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전통적 교리에 유착되어 있을 때 많은 과학자들은 과학을 신학과 교회의 권위에서 독립하려고 했다.그러한 시도가 프란시스 베이컨과 데카르트와 톨란드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1) 프란시스 베이콘(1561-1626)
그에 의하면 인간이 바른 지식을 가지려면 종래 가지고 있는 선입관념을 없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그러한 선입관을 우상이라고 했으며, 그 우상에는 네가지가 있다고 한다. 즉 종족의 우상, 동굴의 우상. 시장의 우상, 극장의 우상이다(Novum Organum,1620) 이때까지의 철학은 이러한 우상의 지배하에서 삼단논법을 쓰면서 사변의 세계에 몰입했다.
이러한 경향을 비판하고 그는 실험을 통하여 개별적 사물을 이해하는 동시에 자연의 일반적 법칙을 찾아내려고 했다.그렇게 함으로써 베이콘은 교회의 가르침과는 관계없이 자기 나름대로의 자연과의 우주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활동하던 17세기의 교회는 당시의 과학자들의 새로운 교설에 대하여 전세기처럼 혹평은 하지 않았다. 이 말은 당시 과학이 교회의 지배권과 감독권에서 벗어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2) 데카르트(R.Descartes.1596-1650)
데카르터는 중세기의 스콜라주의에 대하여 대담하게 비판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으나 교회에 대해서는 도전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이중진리를 말한다. 즉 자연계에는 과학자가 탐구하는 분야와 그들이 탐구할 수 없는 분야가 있다고 한다. 전자에 대해서는 과학자들이 연구하나 후자에 대해서는 교회와 신학이 탐구하는 영역이다. 즉 종교적 영역이다. 그러므로 과학자들은 종교적 영역에 침입하지 말 것이며, 종교가들은 과학적 영역에 간섭해서는 안된다. 이와같이 과학은 교회와 신학으로부터 유리되어 독자적인 길을 택하게 되었다.
3) 토란드(J.Toland 1670-1722)
근세 일원론의 아버지로 알려진 토란드는 1696년에 익명으로 \"기독교는 신비적이 아니다.\"라는 책을 출판했다. 그 책에서 그가 말하기를 신은 기적을 통하여 자기를 계시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법칙 안에서만 활동한다고 했다. 인간은 모든 인식은 이성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교회가 주장하는 진리도 이성에 의해서 이해되고 증명되어야만 한다. 이렇게 주장하는 그에 대하여 교회는 그를 처단하려고 했으나 독일로 피신하여 그는 난을 피했다. 이와같이 17세기부터 과학과 신학은 상호보완적이거나 종속적인 관계를 떠나 독자적인 활동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점차적으로 과학의 독주가 시작되었다.
5. 과학의 독주시대
바나르에 의하면 과학은 세 단계적으로 발전되었다. 제1단계는 사적 과학시대로 대학교수들이 대학안에 있는 실험실에서 소규목적으로 연구를 계속하던 시대이다. 제2단계의 시대로서는 산업계의 과학시대로서 산업체가 막대한 비용을 제공하여 대학안에서나 회사(공장) 안에 대규모의 연구시설을 두고 연구한 시대이다. 제3단게는 정부의 과학시대로 정부가 정책적으로 방대한 연구시설을 세워 국가가 필요로 하는 프로젝트를 연구케 하는 단계이다.
지난 100년동안 이와 같은 단계를 거쳐 현대와 같은 과학만능시대를 성취했다. 특히 과학은 열전과 냉전이 계속되는 동안 괄목할 만큼 발달되었으며 이에따라 과학의 모든 분야가 함께 발달되었다.
과학이 이와같이 급속도로 발달되는 동안에 종교는 독주하고 있는 과학을 구경만 하고 있었다. 18세기까지 겨우 상호보완적 관계를 유지해 오던 양자의 관계가 과학이 종교를 무시하고 인간의 능력에만 의존하는 독주를 계속했기 때문에 과학은 손을 쓸 수가 없었다. 기독교 신학자들 중에는 발달하는 과학과 전통적 신학과의 조화와 타협을 시도한 학자들도 많이 있었다. 소위 자유주의 신학자들이다.
그러나 그들과는 달리 전통적 신학을 고수하면서 성서적 가르침의 우상 안에 모든 과학적 활동을 수용하려고 했다. 그러나 큰 효과를 얻지 못했다.근본주의자들은 기독교의 절대성을 강조하면서 자연과학과의 대립과 투쟁을 선포했다. 1925년에 미국에서 있었던 스콥스 재판(The Scopes Trial) 이 대표적인 케이스이다.그러한 강력한 도전이 일부 기독교들에 의하여 제기되어으매도 불구하고 과학의 독주는 막을 수 없었다.
현재 과학은 세 분야에 있어서 기독교의 전통적 인간관과 세계관을 무색케 하고 있다. 첫째는 우주과학의 발달로 기독교의 우주관을 뒤엎어 버렸다. 갈릴레오의 지동설보다 훨씬 더 정확성과 설득력을 가지고 있어서 기독교는 전통적 세계관을 수정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둘째는 생물학의 발달로 생명의 기운이 하나님의 입김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며 특히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의 섭리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지혜로 생명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유일한 생명 지배권을 부인하는 것이다. 셋째는 첨단기술 발달로 예수 이상으로 이적과 기사를 연출하고 있다. 현재 모든 분야에 있어서 과학은 종교적 지혜와 우주관의 도움없이 자연계의 신비의 심부까지 탐구의 메스를 꽃고 있다. 종교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도전을 받고 있다. 따라서 일대 위기에 처해 있다.

키워드

신학,   과학,   기독교,   신앙,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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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8.04
  • 저작시기2021.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23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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