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사조 - 상징주의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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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문예사조 - 상징주의에 관하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개념

2. 상징주의의 발달과정

3. 한국의 상징주의
1) 준비기에서 도입기로
2) 전개기의 김억과 황석우 그리고 양주동
3) 상징주의의 여운-김광균, 박목월, 서정주

본문내용

은 김억의 번역 태도를 비난하고 프랑스 상징주의 시를 다시 번역해 보였다. 제 1호 <근대불란서시초>에서 번역은 “극히 충실하게 축자역”을 해야 한다고 했고, 제 3호에서는 운문을 모르고 중역을 일삼는 ‘개똥번역’이 성행한다고 헐뜯었다. 그래서 김억과 양주동 사이에 논쟁이 일어났다. 김억이 자기 번역을 옹호하자 양주동은 직역이 아니면 번역이 아니라고 반박하고, 김억은 창조적인 의역의 의의를 다시 주장했다. 두 사람의 능력을 견주어 보면 원시 이해에서는 양주동이 앞섰으므로 번역은 직역이어야 한다면서 큰 소리를 칠만했다. 탁월한 번역가로서 양주동을 상징주의 계열에 올려놓기는 부족함이 있다. 양주동을 상징주의 시인으로 보는 까닭은, 프랑스 상징주의의 중개자로서의 역할도 있었겠지만, 스스로 시를 썼다는 데 있다. 특히 「금성」창간호에 실린 <소곡>은 서정미나 완성도에서 상당한 수준에 이른 것으로 보고 있다.
3) 상징주의의 여운-김광균, 박목월, 서정주
「태서문예신보」에 실린 김억의 <겨울의 황혼>과 황석우의 <봄>이 보인 한국 상징시의 가능성은 , 그 후 「창조」「폐허」「백조」등의 시대를 거치면서 시들고 방향이 뒤틀려 훗날 문학사가들에 의하여 <병적 낭만주의>나 <퇴폐주의>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그러나 결국 「금성」이에 이르러 「태서문예신보」시절의 수준을 겨우 회복한 감이 있다. 그러나 양주동은 체질상 심벌리스트는 되지 못하고 말았다.
한국에서 상징주의의 개화는 훗날 김광균을 거쳐 박목월에 이르러 보게 된다. 김광균은 언어의 연금술사로서 공감각을 통한 사물의 형상화를 이룩해 내고 박목월 언어의 생략과 진술의 기피를 통해 대비되는 두 개의 심상 상이에서 짙은 정서를 유발한다.
끝으로 한국 시사상의 접신술사 인 서정주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영통자로서의 역사 참여를 표방한 적이 있다. 일종의 무속적 영매로서, 저승에 가 있는 이의 넋을 불러낼 수도 있는 시인이다. 뜰에 피어 있는 모란꽃을 바라보면서, 그 꽃과 자신의 전생의 모습이며 서로 얽히고설킨 누세의 인연을 꿰뚫어 보는 이가 서정주다. 젊은 날에 보들레르에 심취해서 「화사」를 썼다는 그가 「신라초」거처 다다른 곳이 「질마제 신화」다.
* 참고문헌
김윤식, 『한국 문학사』, 민음사, 1996.
김은철, 『한국 근대시 연구』, 국학자료원, 2000.
이선영, 『문예 사조사』, 민음사, 1986.
조동일, 『한국문학통사5』, 지식산업사, 1994.
  • 가격1,300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07.08.23
  • 저작시기2006.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26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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