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표현주의 영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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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표현주의의 생성 배경

2.표현주의의 개념과 그 시기

3.표현주의 시대의 문화-미술

4.표현주의 시대의 문화-연극과 영화

5.표현주의 영화의 특징과 작품

6.표현주의 영화의 영향

7.맺음말

본문내용

공간을 추상적기호물들과 병치해서 설치한 세트의 구성은 꿈과 현실 사이의 경계를 잘 이끌어 내고 있다. 몽유병 환자의 살인사건을 다룬 이 영화는 순수한 공포영화에 가깝다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모태가 된 작품으로서 그 서사와 시각적 특성은 당대의 가장 실험적 양상의 하나로 꼽힐 뿐 아니라 이후 수년간 지속된 표현주의 영화 경향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는 주인공이 칼리가리라는 연쇄 살인범을 회상하면서 얘기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에 따르면, 칼리가리는 몽유병자에게 최면을 걸어 자신의 친구를 죽이고 여자 친구를 유괴한다. 그의 추적으로 칼리가리는 18세기에 있었던 대리 살인을 재현하고자 하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정신병원의 원장임이 밝혀진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면 지금까지 이 이야기를 해준 주인공이 사실은 정신병원의 환자이며, 칼리가리는 그를 담당한 의사라는 것이 드러난다. 주인공은 병실로 끌려가며 소리치고, 의사 칼리가리는 그제야 그의 병증을 이해했다고 말한다.
이 마지막 부분은 관객을 당황하게 만든다. 관객은 지금까지 보고 들은 것이 미친 자가 꾸며낸 망상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며, 동시에 그가 정말 미쳤는지 의심하게 된다. 그러나 영화의 시각적 스타일이 관객의 의구심을 누른다.
영화의 장면은 현실감과는 거리가 멀다. 형태와 색채를 통한 왜곡, 구성의 부조화 같은 당대 표현주의 회화의 특성이 세트 곳곳에 그대로 살아 있다. 평면적으로 그려진 세트에는 원근감이 과장되어 있고, 사물의 형태는 각지거나 왜곡되어 있다. 인물 또한 분장이나 의상을 통해 그 세트의 일부처럼 기능한다. 조명은 명암의 대조가 극단적으로 드러나도록 조절되고 있으며, 연기도 극히 기교화되어 있다.
이런 극히 양식화된 장면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환상세계를 창조한다. 독일 표현주의 영화에서 공간의 표현이란 곧 정신의 표현이다. 즉, 영화 속의 공간에 합리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불안과 과대망상증으로 가득 찬 세계를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이 광인의 이야기가 시각화되어 표현주의 영화의 모태가 된 데는 헤르만 바름 같은 세트 디자이너의 역할도 중요했지만, 무엇보다도 제작자 에리히 포머의 역할이 컸다. 칼리가리가 연쇄 살인을 저지르는 미친 악당이던 원래 각본을 뒤집어 주인공을 광인으로 설정한 것도 그였으며, 세계 시장을 지배하고 있던 미국 영화와 경쟁하기 위해 표현주의 회화기법을 영화에 끌어들인 것도 그의 결정이었다.
포머의 그런 결정은 이 영화를 해석하는 데 흥미 있는 변수가 된다. 원래 각본의 의도는 개인이 폭정적 권력을 등에 업고 자유를 남용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완성된 영화는 폭정적 권력이 어쩌면 개인들에게 유익할지도 모른다고 시사한다. 이는 당시 독일인들의 의식 저편에 있는 불안과 공포심을 암시한 것이며, 칼리가리라는 인물을 통해서 히틀러의 등극을 예시했다는, 이 영화의 의미를 명확히 해 준다.
※ 기타
파울레나의 <밀랍 인형 전시실>(1924)은 표현주의의 절정을 보여준다. 거대한 바퀴가 있는 장터의 이미지, 바위로 된 성곽과 마분지로 만든 바그다드, 빵장수의 동굴 등은 그 괴상한 외관으로 인해 일종의 불안감을 조성한다.
파브스트 <어느 영혼의 비밀>(1926)은 보다 진지한 투를 견지하고 있어서 표현주의 영화가 쇠퇴의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시사해 준다.
※ 표현주의 영화는 전쟁의 참패라는 쓰라린 굴욕을 맛본 국민의 영화였다. 이 당시 독일 국민들은 의회 민주주의에도 실망만 느꼈고, 역사에 대한 믿음도 잃었으며, 극도의 혼란과 경제적인 궁핍으로 의욕을 상실한 채 모든 질서를 바로잡아 위대한 독일을 새로이 탄생 시켜줄 구원자만을 기다리는 상태였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칼리가리 박사나 마부제 박사의 존재 가치는 진정 충격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 두 등장인물이 지배자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이 역동적인 영화가 권위에 대한 갈등으로 다시 말해서, 우두머리에 대한 집단적인 복종으로, 권력에 대한 목마름으로, 대중이라는 집단에 대한 매력으로, 전체 속에 섞이기를 원하는 욕구로, 도덕이 결여된 출세주의로 해석 될 수 있다. 표현주의 영화 삼총사와 더불어 촬영감독 프리츠 바그너나 빌리 하메이스터, 미술감독 헤르만 바름, 오토 훈테 그리고 배우 에밀 야닝스 등이 활동하며 표현주의 영화 의 기본 골격을 마련한다. 이후 히틀러의 징고이즘적 통치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간 표현주의 거장들은 30년대 할리우드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특히 기괴한 미장센, 조명, 분장의 특성을 가진 표현주의적 특성들은 (프랑켄슈타인)(1931), (드라큘라)(1931) 등 공포영화에 응용됐다. 40년대 필름누아르 장르의 발달에도 독일 표현주의 영화는 산파역할을 했다. 또 표현주의 영화 기법은 프랑스의 전위 영화에도 영향을 주었다.
맺음말
예술은 사회를 비춰주는 거울이다. 유럽은 20세기를 들어서면서 그 전과는 너무나 다를 정도의 빠른 경제성장을 이룩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발전에 비해 문화의 성장은 더디었고 그에 따른 휴우증을 크게 겪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유럽 중에서 독일이 가장 빠르고 큰 성장을 하면서 그만큼 큰 리스크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사회로부터 지식인들이 표현주의운동이 시작되었다. 표현주의는 빠른 속도로 성장하였고 이 운동은 단지 독일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 유럽과 미국 쪽으로 파생이 되며 전 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주었다.
거기다 역사적으로 큰 전쟁 중 하나인 바로 제 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는 시점에 있던 표현주의는 그 당시의 처참함도 잘 나타내주고 있다. 물론 제 1차 세계대전이 발생하게 된 것은 바로 너무나 빠른 경제성장과 상대국을 배려하지 않는 이기심이 상호작용하여 발생한 전쟁이다. 이러한 전쟁으로 인한 엄청난 피해와 충격은 인간들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고 말았다. 그리고 이런 인간의 어두운 면이 표현주의를 통해 여실히 잘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러한 어두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예술은 자신의 현재의 모습을 성찰하게 만들어서 더 낳은 세상을 나아가려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예술이 지향하는 모습 또한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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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9.24
  • 저작시기20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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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428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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