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잔틴문화와동방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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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고도 한다. 이반 4세(1533~1560)가 동쪽 지역에 있던 몽골의 정복자 키잔간국을 정벌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러시아의 건축가 3명에게 명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평면형식은 이때까지 이루어졌던 후기 비잔틴식에서 한 단계 발전되었다. 이전부터 러시아 건축에서는 지붕의 양파모양 큐폴라(Cupola)의 형태가 크고 높게 치솟게 되었다.
그림14. 모스크바 바실리 사원
또한 높아진 다각추형의 지붕도 병행되었는데 본 사원에서도 팔각추형 지붕을 중심으로 주위에 대소 8개의 이 치솟은 큐폴라를 얹고 있다. 본 건물의 구성형태는 특이한 것으로 하나의 교회당이 아니고 중심이 되는 교회당의 주위에 8개의 소 교회가 하나의 건물형태 속에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중심의 교회당은 천막형을 한 탑상 건물이며 그 주위에 여러 가지로 채색된 돔이 둘러져 있는 외관이다. 이 건물은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에 서있으며 오늘날 모스크바의 상징적인 건축물로서 현재와 같이 채색된 것은 17세기부터이며 당초에는 백색으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
비잔틴 예술
(1) 미술
비잔틴 미술은, 비잔틴제국 수도 콘스탄티노플 (지금의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5~6세기부터
제국이 멸망한 15세기 중엽까지 동방 그리스도교 세계에 펼쳐진 중세 미술을 말한다.
비잔틴 문화권은 유럽에서 아시아 북아프리카의 광대한 지역을 포함하기 때문에
그 미술도 시대와 지역 특성에 따라 각기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
약 1천년에 걸쳐서, 비잔틴 제국은 서양과 동양 미술이 융합된 독특한 양식의
미술 장르를 이루어 낸다.
이러한 장르의 창출은 제국의 주도하에 의도적으로 이뤄진 결과라기보다, 로마 제국이 콘스탄티노플로 천도하면서 동방의 지역적 문화와 자연스레 접촉·동화되면서 발생한 현상으로 보여진다. 과거 로마적 서양 양식에 그 미술적 중심이 맞춰졌던, 비잔틴 미술은 점차 동방적인 스타일이 가미되며 동방미술과 서양 헬레니즘 미술을 혼합한 동서 문화를 절충한 기독교 미술로 재탄생한다.
즉, 서방의 자연주의 양신과 고대 동방미술의 엄격한 정신성에 뿌리내린 추상적인 양식과의 결합이 비잔틴 미술을 통해 나타난다는 것이다. 서유럽 중세의 로마네스크나 고딕미술과의 차이는 바로 이 깊은 명상적 경지에 있었다. 비잔틴 미술은 비잔틴문화에 있어서도 특별히 가장 유력한 분야이기도 했다.
모자이크나 프레스코기법에 의한 벽화, 납화기법의 이콘 채색사본 삽화 상아 금은의 세공, email이라 불리는 칠보 등의 공예품 분야를 통해 화려한 중세미술을 구축하였다. 비잔틴 미술의 본질은 신학이론을 기초로 한 절대적인 신에 대한 찬미에 있었으며 때문에 비잔틴 미술은 궁정과 교회를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비잔틴 미술은 크게 성상파괴운동이 종결되는 843년까지를 초기, 마케도니아 왕조와 콤네노스 왕조 시대를 중기, 팔라이올로고스 왕조시대인 13~15C를 말기로 나누어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2)회화
바진틴미술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정확히 단정짓기는 어려우나 유스티니아누스 대제 시대에 최초의 황금기를 맞은 것은 확실해 보인다. 고대 말기의 초대 그리스도교 미술계에서는 이미 동서 지중해 세계의 서로 다른 흐름이 인정되었는데 동방 그리스도교 미술의 독특한 양식이 분명히 자각된 것은 6세기이후의 일이다. 회화에서는 초기 중기에 모자이크가 시공되었는데 라벤나의 산 비탈레 성당에 위치한 <유스티니아누스 1세>와 그리스의 다프니 수도원에 있는 <그리스도>등이 당시를 대표하는 모자이크 작품들이다. 비잔틴 제국 말기에는 모자이크를 대신하여 프레스코 벽화와 이콘이 성행한다.
(3)장식
장식은 특히 건축 내부에 집중되었다. 여기서 장식이란 단순한 벽면 미화가 아니라 조형적 수단에 의해 공간 내부를 성화하여 거기에 초자연적인 세계를 현실에 나타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비잔틴 세계에서는 성스러운 것 또는 성스러운 공간은 결코 현세나 물질계의 것처럼 나타내어서는 안된다고 보았다. 이리하여 십자가, 성스런 물품, 제단 등이 황금 보석 등으로 만들어졌으며 비단 등을 사용한 호화로운 염직물이 귀하게 여겨졌다. 그 전형적인 것은 이탈리아의 라벤나에 풍부하게 남아있다. 특히 그들은 초자연적인 것을 표현하기 위한 가장 좋은 수단으로 빛을 이용했다. 이러한 그들의 견해는 건축 장식으로 색유리를 많이 사용하는 모자이크 미술의 발달을 가져왔다. 그러나 모자이크가 비용과 수고가 많이 듦에 따라 시대 또는 경우에 따라 벽화가 이를 대신하였다. 어쨌든 그 표현양식을 보면 무엇보다도 색채의 효과가 중시되어 3차원적인 표현에서 입체감이나 원근 표현은 되도록 피하려 하였다.
(4)조각
비잔틴에 있어서 조각미술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기둥머리, 내진장벽 등) 오늘날 발견되는 조각품의 대부분은 일상용품인 식기 등에 새겨진 부조 정도다. 다른 회화나 장식미술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각미술이 발달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동방에는 여전히 성스러운 자나 성스러운 장면의 물질화를 두려워한 사람들이 존재했다. 그들은 그리스도 상 마리아 상 등등 이른 바 ‘형상 images'를 만들어 놓으면 사람들이 본질은 깨달으려 하지 않고 그 형상만 숭배하게 될 것을 우려했다. 그 결과, 성산 자체를 없애자는 운동으로 발전한다. 이것이 8~9 세기 전 동방에 걸쳐 펼쳐진 성상파괴운동이다
○나가는 말
이상으로 비잔틴 양식과 동방 교회의 관계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천년의 찬란했던 문화는 한마디로 신비스럽다고 할 수 있다.
그리스 고전 문화와 로마의 헬레니즘 그리고 그리스도교적 요소들이 어우르고 있으며,
채색의 미, 직접적인 표현의 미 보다는 정신과 이상의 아름다움을 더 추구했음은 분명하다.
동방신학의 부정신학적 모습들은 예술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예술 작품을 접할 때마다 볼 수 있는 동방교회의 영성은 우리에겐 이해가 안될 때도 있고
이해는 되어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도 많다.
그러나 무엇이 좋고 우선임을 구별하기 보다는 예술 속 그들의 영성에서 느껴지는
경건함과 엄숙함은 우리도 충분히 배워야 한다.
그리고 작품 구석 구석에서 볼 수 있듯이 세밀하고 완벽하고 꼼꼼한 터치는 적당한
신앙생활을 하려 하는 오늘날 교인들의 영혼에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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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2페이지
  • 등록일2007.09.27
  • 저작시기2007.9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29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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