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CEO -대왕 세종 (다시 주목 받는 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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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들어 가는 말 (다시 주목 받는 세종)

Ⅱ. 본론
1. 500년 전 세종의 업적
1-1 천문학의 발전
1-2 시계의 발명
1-3 음 악
1-4 한글창제
2. 500년 후 CEO 세종

Ⅲ. 맺음말

본문내용

정음이 완성된 것은 1443년(세종 25)이며, 이것이 제정되자 그 창제 목적을 실천하기 위하여 금중(禁中)에 언문청(諺文廳)을 설치하고, 훈민정음의 해례(解例)와 같은 원리를 연구하게 하고, 그 보급책의 일환으로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를 짓고 운서(韻書)를 번역하는 등의 과정을 거쳐 공포하였다. 이 국자 제정과 '해례' 편찬은 정인지(鄭麟趾)를 비롯하여 당시 집현전(集賢殿) 학사인 최항(崔恒)·박팽년(朴彭年)·신숙주(申叔舟)·성삼문(成三問)·강희안(姜希顔)·이개(李塏)·이선로(李善老) 등의 협조로 이루어졌다. '훈민정음'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의 뜻이며(訓民正音諺解), '정음'은 '우리나라 말을 정(正)히, 반드시 옳게 쓰는 글'임을 뜻한다(釋譜詳節序).
2. 500년 후 CEO 세종 (세월이 지날수록 빛나는 세종의 실용주의 )
이명박 당선자는 이런 관훈클럽에서 "생생지락(生生之樂)의 편안한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고 "평소 소신껏 일하다 일을 그르쳐도 그 사람에게 불이익을 주면 안 된다"는 말로 세종의 철학을 참고했음을 암시했다. 이 당선자가 밝힌 차기 정부 키워드인 실용주의도 세종을 벤치마킹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세종의 업적은 `우리나라 말과 중국 말이 다르다`는 실용주의 정신에서 출발한 한글 창제를 비롯해 측우기ㆍ해시계ㆍ물시계 등 실생활형 발명품, 갑인자ㆍ병진자 등 활자 제작, 농사직설 등 실용주의 서적에 이르기까지 이루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세종의 실용주의는 그의 독특한 국가 운영방식 덕분에 꽃피울 수 있었다. 신하들 중 학술이 우수한 사람을 임금이 초빙해 강의를 듣는 제도인 `경연(經筵)`의 적극 활용, 적절한 업무 위임, 국가사업으로 선택과 집중 등은 차기 정부에 시사 하는 바가 크다. 함규진 성균관대 국가전략연구소 연구원은 "세종은 일반 행정업무를 신하들에게 위임하고 자신에게 남는 시간을 주요 국가 프로젝트에 활용했다"면서 "박연 장영실 등 하위 관리들과 일종의 태스크포스를 조직해 운영의 묘를 살렸다"고 분석했다. 세종은 집권 내내 신하들을 프로젝트팀처럼 동원해 쉴 틈을 주지 않았다. 또한, 지방관 임기를 늘리는 정책 등에 대해 반대파 저항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이는 면모가 있었으며 불교정책으로 내불당을 세운다고 하자 집현전 학자들이 뛰쳐나가기까지 했지만 결국 임진왜란 때 승병들이 조선을 위해 싸우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리더의 비전 제시와 효과적인 조직 구성으로 세종 시대가 조선왕조 500년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시대로 우뚝 설 수 있었다.
Ⅲ. 맺음말
세종대왕은 우리 역사가 배출한 전무후무한, 진정한 카리스마를 드러낸 경영자였다. 그는 주식회사 조선을 경영했으며 미래를 경영했다. 오늘날에는 우리들의 정신을 경영하고 있다. 그는 노력하는 천재로서 품격 있는 인격을 갖추었고 엄청난 리더쉽 으로 한 시대를 묶어 버렸다. 그의 국가 경영은 너무나 탁월해, 전후로 그의 경영 역량과 견줄수 있는 경영자는 없어 보인다. 우리 모두 550년전 영웅 세종대왕을 벤치 마킹하여 혼란의 시대를 헤쳐 나가 보도록 하자.

키워드

대왕,   세종,   조선,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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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7페이지
  • 등록일2008.01.02
  • 저작시기2007.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45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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