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문제와 불교사상(불교의 관점에서 본 환경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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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환경문제의 심각성

2. 세계 환경위기의 현황

3. 생태계의 에너지 순환구조

4. 현대사회의 구조적 환경문제 일고찰

5. 저(低)엔트로피 사회의 필요성과 부처님의 사상

6. 불교의 환경윤리와 생리학적 사상

7. 맺음말

본문내용

탈시키는 것. 이것이 쾌유의 출발점이다. 적의에 의하여 적의는 가라앉지 않는다. 우애에 의하여 적의는 사라진다는 말이 붓다의 설법의 서두에 나온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 말하는 것은 결코 도덕이 아니다. 이런 방식으로 말하는 것은 생리학이다.
분명히 불교는 생리학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 붓다의 가르침은 괴로움으로부터 해탈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우리 인생의 괴로움이라는 것은 다분히 생리학적이고 심리학적인 것으로서 무지에 의한 탐욕이 적의에 의해서 일어나는 집착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으로부터 우리가 해탈할 수 있는 길은 무지에 대한 탐욕과 적의를 버리는 것이다. '성유식론' 1권에 따르면 인간의 아집에는 구생의 아집과 분별의 아집 두 가지가 설명되고 있다. 여기서 구생의 아집은 무시이래 허망에 훈습된 내인의 힘에 의하여 항상 몸에 구유하고 있는 것을 의미하며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미세한 집착심으로서 나면서부터 선천적으로 지녀오는 아집이다. 이 아집 속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그 하나는 제 7식인 마나식이 제 8식인 알라아식을 대상으로 하여 자심의 상을 일으켜 간단없이 실아에 매달리게 되는 아집이다. 이 실아의 상을 일으킬 때에는 아치 아견 아만 아애라는 사번뇌를 동반하게 된다. 바로 이 아집은 쇼펜하우어의 삶에 대한 맹목적 의지나 프로이트의 본능과 비교하여 생각하면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이 자신의 삶에 대한 맹목적 의지에 의하여 고를 만들고 있다고 말하고 그 맹목적 의지로부터 도피하여 불교적인 명상적 삶을 영위함으로서 고의 세계로부터 해탈할 수 있다고 하였다. 또한 프로이트는 인간을 자기 자신을 억압하는 동물이라고 말하고 문화나 사회를 자기 자신의 억압을 위해서 만들어 내는 동물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니체가 말하는 소위 '인간이라고 하는 이름의 질병'을 스스로 만드는 존재이다. 그는 '세계는 너무나 오랫동안 정신병원이었다'라는 말로 표현할 만큼 억압에 의하여 왜곡된 역사를 고발하고 있다.
한편 분별의 아집은 철저하게 육근육경 내지 오온에 근거하여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무안이비혈신의 무색성향미법 무색 무수상행식'의 경우와 같이 주객 분리와 심신의 분리를 부정함으로써 여일한 진여의 세계를 깨달아 반드시 넘어서야 할 아집인 것이다. 여기서 아집을 버려야 한다는 것은 곧 탐욕과 우치를 떠나는 것을 의미하며 그 대신 보시와 보은과 자비의 덕을 낳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불교 윤리의 사상 속에서 자비와 보은의 사상이 깊이 뿌리박고 있다. 불교의 은 사상은 부모나 타인이나 모든 중생이 나에게 베풀어 준 은혜에 대한 감사와 보은이라고 하는 넓은 의미의 횡적인 윤리에 그 중심을 두고 있다.suttanipata에서 암시하는 바와 같이 '은을 안다','은을 갚는다'라는 말은 행해진 것에 대한 감사를 함축하고 있다. 이것은 불교의 근본 사상이 연기에 있다는 점에서 쉽게 파악될 수 있는 것으로서 우리 모두가 연기적 존재이므로 항상 타자의 도움에 의하여 자기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데서부터 일어나는 감사의 념에 연유하는 것이다. 대지도록에 의하면 보살은 응당 은을 알아야 한다. 중생은 숙세의 낙인이 있다 하더라도 금세의 사화합을 이루지 못하면 곧 낙을 얻을 수 없다고 하여 금세의 인연화합을 중요시하고 있다. 우리가 날마다 다른 중생들의 은혜에 의하여 생존을 영위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중생간에 서로 인연화합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아는 일이 보은의 첫걸음이 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므로 대지도론은 은을 아는 것, 이것이 대비의 본으로서 선업을 여는 초문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원시 불교의 경전에도 지은, 보은에 대한 교설이 여러 곳에 나온다.
등론경의 사법 중의 '사섭사'와 육법 중의 '육화경' 등에도 보은 사상이 나타나 있는데 이것도 역시 연기 사상에 근거하고 있다. 아무튼 오늘의 환경 위기의 시대에서 먼저 제기되어야 할 것은 전술한 바와 같이 지금까지의 인류의 이기적인 욕구에 편중된 가치 체계와 거기에 입각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급선무는 온 국민 개개인이 이러한 위기 상황을 철저하게 자각하여 환경 보호에 솔선 수범하는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 속에서 각자가 자아를 혁명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7. 맺음말
지구 환경 문제와 관련한 국제 회의에서 제기된 문제들은 환경 보전 문명을 하나의 이념으로 세우고 자연과 문명의 양립, 지구적 규모의 생태계의 보전과 평화의 양립이 가능한 새로운 세계관의 필요하며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 폐기와 연결되는 시장 경제체제가 점진적으로 환경 보전과 생태윤리학적 공생의 복지경제형 체제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선진국과 개발 도상국 사이의 이해 관계가 얽혀 풀기 어려운 문제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아무튼 어떤 방식으로든지 지금의 성장과 소비위주의 체제를 억제하지 않는 한 지구 세계와 인류가 파멸의 위기를 맞게 되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이러한 시대적 위기 상황에서 전술한 인간중심주의와 인간의 탐욕을 증대시키는 소비 위주의 체제를 완화하고 자연 환경을 되살리고 보전하기 위해서 제 과학이 불교의 중도 사상, 연기 사상, 무아 사상, 자비 사상을 과감하게 도입 수용한다면 21세기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출해 내는데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지금 여러 환경 단체들이 각 방면에서 환경 운동을 벌이고 있으나 좀더 개개인에게 직접 접근하여 환경 정화 운동을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곳은 종교계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동서고금을 통해서 종교야말로 인간 정화를 근본 문제로 삼아 왔기 때문이요, 또한 사찰이나 교회에서 쉽게 집단적으로 만나 대화를 나눌 수 있고 평화롭게 환경 운동을 전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 환경의 오염은 결국 인간에게 그 책임이 있기 때문에 먼저 인간의 정화가 있고서야 환경의 정화가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이제 불교는 물론 각 종교단체가 앞장서서 인간학적인 자각을 통하여 인간 정화의 길, 환경 정화의 길에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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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8.01.30
  • 저작시기20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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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449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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