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천명 시인 연구 - 대표 시작품과 친일문학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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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시인의 생애

2. 시작품 분석
- <남사당>, <사슴>, <푸른 오월>, <아름다운 새벽을>

3. 노천명 작품의 특징

4. 친일 문학, 친일 작품
1) 배경
2) 친일작품보기 - <싱가폴 함락>,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서>

5. 맺음말
◎ 참고문헌

본문내용

영국의 식민지였던 말레이, 싱가폴 작전에서 기대 이상의 승리를 거두었다. 서전에서의 이 승리는 일본 전역을 열광케 하면서 제 1차 승전축하회가 전국에서 개최되었는데, 아래의 <싱가폴 함락>는 그 같은 분위기 속에서 발표된 것이다.
우리들이 내놓는 정다운 손길을 잡아라
젖과 꿀이 흐르는 이 땅에
일장기가 나부끼고 있는 한
너희는 평화스러우리 영원히 자유스러우리
<싱가폴 함락 中에서>
위의 9연은 일제의 지배 아래서만이 평화와 자유가 보장된다는 것인데, 이는 진정한 의미의 평화와 자유는 아니다. 식민통치하의 민족은 지배자의 착취대상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여기에서 말하는 자유와 평화는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려는 속임수에 불과한 것이다.
② 2차 대전에 참전하면서 일본은 영국, 미국과 전쟁을 하면서 우리 민족에게도 그들에 대한 적개심을 불어넣으려고 했다. 우리 민족과는 전혀 상관없는 전쟁에서 우리 민족을 총알받이로 쓰려고 별의별 헛소리를 다 한 것이다. 그리고 일제는 그런 사상을 우리 민족에게 주입시키려고, 각계의 저명한 지식인들을 회유와 협박을 통해서 친일 행각을 벌이게 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시가 바로 다음 시이다.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서>
남아면 군복에 총을 메고
나라 위해 전장에 나감이 소원이리니
이 영광의 날
나도 사나이였드면 나도 사나이였드면
귀한 부르심 입는 것을-
갑옷 떨쳐입고 머리에 투구 쓰고
창검을 휘두르며 싸움터로 나감이
남아의 장쾌한 기상이어든-
이제
아세아의 큰 운명을 걸고
우리의 숙원을 뿜으며
저 영미를 치는 마당에랴
영문(營門)으로 들라는 우렁찬 나팔소리-
요랜만에
이 강산 골짜구니와 마을 구석구석을
흥분 속에 흔드네-
'님의 부르심'이라는 것도 결국, 일본 천황의 '일시동인' -조선인과 일본인을 똑같이 사랑한다는.... 돼먹지 않은 헛소리-이라는 허울 좋은 사탕발림 앞에 전쟁터 나가서 일본인과 똑같이 싸우다 죽고, 일본을 위해서 죽어라.... 라는 전시 동원령에 지나지 않는다. 아세아의 큰 운명이라는 것 역시, 일본의 아시아 침략이 곧 서구 열강의 침략을 막고, 황인종끼리 소위 대동아 공영권을 이룩하자는 것으로 미화를 시킨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망언에서 비롯된 것이다. 2차 대전에 참전하면서 일본은 영국, 미국과 전쟁을 하면서 우리 민족에게도 그들에 대한 적개심을 불어넣으려고 했던 것이다.
우리 민족과는 전혀 상관없는 전쟁에서 우리 민족을 총알받이로 쓰려는 수작인 것이다. 그리고 일제는 그런 사상을 우리 민족에게 주입시키려고, 각계의 저명한 지식인들을 회유와 협박을 통해서 친일 행각을 벌이게 했던 것이다.
친일시를 조사하면서도 과연 진정한 친일인가에 대한 의문은 계속 되었다. 일제 시대 이 땅의 지식인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딱 두 가지 뿐이었다. 펜을 꺾든지 아니면 일제에 동조하던지…… 불행한 과거의 어두운 한 단면이다. 그러한 현실이 아니었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문학 작품만큼 인격적인 칭송도 같이 따랐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제치하라는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그들의 친일행각을 비판하는 것은 당연히 그들에게 선택권이 있었다는 데에서 기인하는 것 같다. 절필할 수 있는 선택권이다. 글을 쓰지 않을 자유 말이다. 그런 권리가 있었음에도 그들은 펜을 놓지 않았고 오히려 일제에 동조하는 글을 불쌍한 백성들에게 공공연히 내보임으로써 한없는 식민지 백성의 아픔을 왜곡시켰다는 것이다. 더더구나 친일문학가들은 당대의 뛰어난 명성을 지니고 있었던 자들로 그들이 국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한마디로 그 시절엔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은 설득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계속 붉어져 나오는 것이 아닐까 한다. 시대상황 앞에서 그들이 선택에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절필이든 친일이든 선택에 있어 분명 그들도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그들의 선택이 어찌 되었던 간에 남겨진 작품 속에서 작가로써의 그들을 평가함이 옳지 않은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5. 맺음말
노천명의 생애는 유년기부터 허약한 신체적 조건으로 스스로 고독을 택했으며, 이 고독이 숙명적인 친구가 되어 일생을 동반하게 되었다. 청년기에 이르러 고독은 자신을 고고한 위상으로 격상시키기 위한 도구로서의 고독으로 변용되었으며, 장년기에 가서 6-25의 발발로 그의 현실 도피적인 고독이 현실참여를 꾀함으로써 부역사건에 연루되어 사회로부터 소외되는 고립무원(孤立無援)의 경지에 다다랐다. 그것은 친일적인 변절과 6-25 부역이란 외부적 조건이 그를 위축시키고 좌절시킨 것이다. 그리고 만년의 그의 고독은 가톨릭에 귀의함으로써 외롭지 않은 내세관아래 至善至愛(지선지애)의 임종을 맞았다.
노천명의 작품세계는 삶과 무관하지 않으며 시와 삶이 거의 일치했다. 그가 사랑한 고독이 시종일관 그의 시의 주조를 이루었으며 「산호림」,「창변」의 초기시에서 현실 도피적인 양상을 띠고 향수 속으로 몰입했다가 서서히 죽음을 외곽으로 접근하는 한편 「별을 쳐다보며」 와 「사슴의 노래」의 후기시에 가서 조국애를 발현하는 현실 참여적 시 세계를 형성시켰다. 노천명의 삶을 결국 현실에 소외당한 인생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고독을 사랑함으로써 초연한 자세가 될 수 있었으며 많은 실패작을 냈음에도 <사슴>, <자서전>, <남사당>, <장날>, <오월의 노래> 등과 같은 몇 십 편의 명편으로 문학사에 기여했다는 점은 높이 살만하다. 사슴을 그토록 이나 좋아하던 시인, 오직 詩만을 생각하고 詩만을 벗하며 길지 않은 생애를 고적하게 살다가 간 시인. 타계한 지도 어언 47년을 헤아리게 되었다. 그리 짧지 않은 세월 속에 시인에 대한 추억도 이젠 많이 퇴색되어 가고 있다고 하겠다. 노천명은 고독한 시인이었다. 가없고 짤막한 일생이었다. 그러나 그의 시는 진실로 이 고독이란 도가니 속에서 연마되고 승화된 노천명의 인생과 문학은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현대시의 이해와 감상> - 김태형, 정희성 엮음, 문원각
<한국의 명시를 찾아서> - 박제천 지음, 문학아카데미
<한국 현대여성시인연구> - 김지향 지음, 형설출판사
<한국 현대 시인 특성론> - 문학사 국학 자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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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8.03.24
  • 저작시기200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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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457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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