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의 시 비평에 대한 고찰

목차

1. 이원적 대립의 구조

2. 관념적 경향과 그 파장

3. 정교하고 치밀한 시 분석

4. 현실과의 거리, 이미지에 대한 집착

본문내용

여러 번 읽고 그 의미를 해석해 간다. 의미론적 분절과 음악적 분절을 거쳐 마음의 움직임에 의한 율독에까지 이르는 분석의 과정은 그의 탁월한 직관, 온유한 말결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 인상적이다. 작품에 제시된 상황의 드라마적 구조와 의미를 설명하는 부분도 김현다운 섬세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김현은 한 자아의 상처와 쓰라린 고통을 드러낸 이 시에 대해서도 역시 이미지에 집착하고 있다. “무화과라는 이미지가 그 진부한 대화―나는 실패했다 : 너는 위대하다―를 순식간에 비극적 높이로 이끌어 올린다”(전집 7, p.62)라고 그는 적고 있다. 나는 실패하고 너는 위대하다라는 이분법적 의미의 해석도 문제이고 그것을 진부한 주제라고 간단히 얘기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무화과라는 이미지가 진부한 대화를 비극적 높이로 끌어올린다는 해석은 정말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는 다시 뒤에서 이 시의 핵심적 이미지가 무화과의 이미지라고 반복하면서 이번에는 그것을 자웅동체의 상징성으로 해석하는데, 이 해석은 무화과의 의미를 새롭게 부여한 점에서 탁월한 발견이지만 시의 의미해석에 도움을 주지는 못한다. 요컨대 이미지에 집착하여 시의 메시지 포착에 실패한 것이다.
그는 이 글에서 참으로 수상한 욕망론에 의해 나의 실패와 너의 성공을 계속 이분법적으로 대비시키는데, 이것은 가능하지 않은 해석이다. “둘이서 검은 개굴창가 따라/비틀거리며 걷는다” 때문에 ‘나의 실패/너의 성공’의 대비는 애초에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시샘’이란 말은 이 시의 문맥에서는 떠올리기 곤란한 단어다. 둘 다 낭패감에 시달리는 실패한 친구이며 둘 다 절망에 허덕이는 친구인데 하나는 괴로워하고 하나는 위로했던 것이다. 그 위로에도 불구하고 괴로움은 가시지 않으며 현실의 정황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 이 시의 전언인데, 도대체 누가 성공하고 누가 시샘을 한 단 말인가. 김현 역시 이 사실을 감지한 듯 한 자아가 셋으로 분열되었다고 설명하였다. 그리고 “그 분열의 과정은 아름답고 감동적”(전집 7, p.64)이라고 적었다. 그러나 이 설명을 나는 전혀 받아들일 수 없다. 이 설명은 시의 구조를 김현식으로 해체하여 재구성한 것이지 김지하의 시작품 해석이 아니다. 김지하의 시는 한 인간의 절망과 그것에 대한 위안, 그럼에도 불구하고 벗어날 수 없는 세계의 어둠 및 절망의 지속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변혁운동에 참여했던 사람의 좌절만이 아니라 인간이 부딪칠 수 있는 보편적 좌절을 형상화한 것이다. 요컨대 절망과 그 극복, 희망의 지향과 그 좌절의 대위법을 통해 우리들 세계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주려 한 것이다.
김현은 글의 끝부분에서 갈등의 해소, 희망의 세계를 희구한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고 있다. 이것은 참으로 김현다운 독법인데, 그만큼 그는 시를 읽는 데에도 자신과의 관계 속에서 읽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이 시의 이미지 분석에서 얻어진 결과였다. 이 글은 여기에서 종결될 뿐 시인의 입장에서 이 시가 어떠한 의미를 지니며 이 시가 우리에게 어떠한 전언을 전달하는가 하는 것은 해석하지 않고/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삶의 현장과 늘 거리를 둔 채, 시를 언어구조물로, 이미지 조형물로, 욕망의 표현으로 보기 때문이다. 언어건 이미지건 욕망이건 그것이 우리의 역동적 삶과 밀접하게 관련된 것임을 그는 거의 인식하지 않았던/못했던 것이다. 그는 이 모든 것을 추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문학이건, 역사건, 인간의 삶이건, 그에게는 모두 이미지였고 꿈이었고 관념이었다. 그 결과 그의 비평은 현실과 거리를 둔 채, 리듬문장이미지사유에 집착하였다. 그의 모든 성취는 이러한 한계를 내포한 성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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