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신학
본 자료는 3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해당 자료는 3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3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성령신학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인 것이다. 바로 우리 성령님은 전도와 신앙을 위해서라면 어디든 역사하셨던 것이다. 우리의 믿음의 선진 바울과 베드로는 자신의 능력으로 복음을 증거하지 않았다. 바로 그들의 성령의 나타남의 실제적인 능력으로 전도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능력으로만 복음을 증거해야만 한다. 성령의 능력의 힘은 복음 증거의 힘이기도 하지만 죄를 이기는 능력이기도 하다. 아담 이후의 인간은 늘 죄에 노출되어 있고 본성이 죄를 지으려고 한다. 결국 우리들은 본성을 따라 산다면 사망의 길밖에는 없다. 우리는 우리 속에 있는 의로는 도저히 우리의 죄악의 본성을 이길 수가 없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의 능력으로만이 죄악을 이길 수가 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따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하는 것이다. 원 아담을 회복해야 하는 것이다. 바로 우리 성령님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도록 도와 주신다.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구원을 받은 것도 성령의 도움으로 말씀이 믿어지는 역사가 일어 났기 때문이다.
제 15 장 능력의 길 : 기도
그렇다면 우리가 갈망하는 성령님의 능력을 어떻게 하면 받을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기도를 통해서이다. 우리는 기도로 하나님의 보화를 캐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무식하고 학문에 졸하였던 베드로가 어떻게 능력의 사람이 되었는가? 그것은 바로 마가의 다락방에서의 기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기도는 우리의 육과 죄에 사로 잡혀있는 우리의 마음을 능히 제어할 수 있다. 엘리야는 우리와 똑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엄청난 기도의 사람이었기에 위로부터의 능력을 받아 하나님의 거룩한 선지자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제 16 장 능력의 소실
그런데 우리는 실제로 능력을 받은 사람보다 능력을 상실해 버린 사람을 많이 접할 수 있는 데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바로 그것은 기도의 상실인 것이다. 기도의 상실은 하나님과의 교제의 상실로 연결된다. 결국 우리들은 여전히 죄악에 허덕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가 이 육신을 벗는 그 순간까지 죄는 언제나 우리를 넘어 뜨리려고 할 것이다. 끊임 없는 기도만이 우리를 죄악의 순간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속사람을 기도로 강하게 해야만 한다. 그러나 우리는 기도의 능력을 알기 때문에 우리 자신을 위해 이용해서는 절대로 않된다. 기도를 통해 나타나는 모든 영광은 주님께로 돌려 드려야 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주께 영광을 돌리때 우리에게 풍성이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는 것이다.
제 17 장 성령의 은사들
성령이 우리에게 충만히 임하면 우리에게 실제적으로 나타나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바로 성령의 은사들이다. 은사는 우리의 의지로 받는 결코 아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에 의해서 인간에게 배분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은사간에는 상호 우열이 존재할 수 없다. 하나님은 각 지체에게 필요한 것들을 주권적으로 나누어 주시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목적은 우리의 은사가 아니다. 바로 은사의 목적은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우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사는 여러 가지이다. 그 중에서 방언은 실제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므로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서 많이 쓰여졌다. 특히 고린도 교회에서는 방언으로 인해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했음을 우리는 알 수가 있다. 바로 방언은 우리를 위함이 아니요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함인 것이다. 방언의 잘못된 오용은 고린도 교회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 교회에서도 쉽게 일어나는 문제이다. 즉 자기 과시를 위해서 많이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분명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방언 필수적인 은사는 아니다. 과거를 살아갔던 위대한 신앙의 인물이 모두 다 방언을 말한 것은 아니다. 오순절 신학이 방언 말함이 성령 세례 받음의 초기 현상이라고 했는데 이런 식으로 방언을 이해한다면 과거의 믿음의 선진들은 성령세례를 받지 못했단 말인가? 결코 그렇지가 않다. 방언외에도 오늘날 잘못된 인식중의 하나는 신유의 은사이다. 오늘날 은사로서의 신유를 강조하는 바람에 이 신유의 은사가 어떤 특정인 중에 주어져서 병을 고치는 것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다. 오늘날 행해지는 병고침의 은사는 바로 우리의 진실한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우리는 해석해야 하는 것이다. 이 신유의 은사는 사도시대에 벌써 끝이 난 것이다.
제 18 장 성령과 그리스도의 관계
이땅에 임마누엘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육의 부모를 가지고 우리 곁에 오셨지만 그 임하심은 육의 방법이 아닌 성령의 방법으로 오셨다. 바로 성령으로 잉태하신 것이다. 성령의 잉태였기에 인간의 몸에서 나셨지만 죄가 없으셨다. 예수님께서 성령을 한량없이 하나님께로 받으신 것도 죄의 몸으로 이땅에 오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성령을 한량없이 받으심은 인류의 구원을 위한 것이었다. 바로 성령은 오직 우리의 구원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의 담지자이시다. 이 성령의 담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서 모든 인류에게 임하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담지 하심은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 밖에 없는 온 인류를 위함이셨다. 그러하므로 그리스도의 사역과 성령의 사역이 일치함을 볼 수가 있다. 이 두 위격은 보혜사로서 우리에게 역사하고 있는 것이다. 부활이후의 사역은 성령에 의해서 인류에게 계속 진행되어 진다. 바로 성령의 사역의 목표는 그리스도의 영화인 것이다. 즉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 성령은 역사하신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임하신 성령은 그리스도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기에 그 보증으로 우리에게 임하실 수가 있었던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개인의 부활만이 아니었고 온 인류를 위한 부활하심이었다. 오늘날은 성령의 시대이다. 성령보혜사만이 우리를 원보혜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실 수가 있다. 우리는 우리의 삶속에서 이러한 성령의 영이 삶의 깊은 곳에 침투하여 이 죄악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로 하여금 넉넉히 이길 수 있도록 세상 끝날까지 우리를 지켜 주시리라 믿는 바이다.

키워드

  • 가격1,000
  • 페이지수11페이지
  • 등록일2009.02.10
  • 저작시기2003.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18409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