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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는 어린시절부터 <다이몬(禁止)의 소리>를 듣고, 자주 깊은 몰아상태를 경험하는 <신들린 사람>이었다고 한다. 만년에는 후대에 악처로 유명했던 크산티페와 결혼하였다. 펠로폰네소스전쟁 때에 중장보병(重裝步兵)으로 북그리스로 2회, 보이오티아로 1회 종군했으며, 이때 훌륭한 인내심과 침착한 용기를 보여주었다. 그는 종군 때 이외에는 아테네를 떠난 적이 없었는데, 젊은 시절에는 자연에 대한 연구도 했으나 그 뒤에는 인간문제에 관해서만 관심을 기울여, 아테네의 거리와 시장•체육관 등에서 대화와 문답을 하면서 지냈다. 그의 인격과 유머가 있는 날카로운 논법에 공감하는 젊은이들이 <소크라테스의 동아리>를 형성하였고, 플라톤도 그 모임에 들어 큰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펠로폰네소스전쟁 종결 5년 뒤인 BC 399년 신에 대한 불경죄라는 죄목으로 고발을 당해 재판에서 사형 받아 일생을 마쳤다. 그는 저서를 남기지 않아 플라톤의 대화편(주로 초기)과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 관계 저서를 통해 그의 생애와 사상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들이 주장하는 <덕(德)>과 세상의 이른바 지자(知者)라는 사람들의 <지(知)>에 대해 근본적으로 묻거나 밝혀내려 했다. 덕은 지와 동일시되며 혼(魂)의 비합리적인 부분 및 감정 등을 배제한 지의 추구만이 참으로 행복하게 사는 길이라고 주장하였다. 지가 원래 결코 실수하는 일이 없는 절대 확실한 것이라면 참된 지자는 신뿐이며, 우리 인간은 선미(善美)의 사항을 어느 한 가지도 확실히 알지 못하는 존재라고 하였다. 이런 자각을 하게 된 것은 <소크라테스 이상의 지자는 없다>고 한 델포이의 신탁(神託)이었다. 소크라테스는 그 뜻을 해명하기 위하여 세상에서 지자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사람들을 음미하며 편력한 결과, 그 사람들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있는데도 알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자신만은 무지를 자각하고 있다는 점에서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신탁의 참뜻은 소크라테스의 이름을 빌려 모든 인간의 무지를 깨닫게 하는 데에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덕이란 무엇인가> <정의(正義)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항을 음미, 논박하며 무지를 깨닫게 하는 활동을 <신명(神命)>으로 알고 그 스스로에게 부과한 것이었다. 이 문답의 과정에서 제시된 지의 기준의 엄격성, 논리와 방법에 대한 명확한 의식, <무엇인가>라고 하는 물음에 담겨진 본질에 대한 지향 등은, 그의 생사에 대한 본연의 자세와 함께 철학에 커다란 전환과 비약을 가져다 주는 원동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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