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물놀이][풍물굿][농악]풍물굿(풍물놀이)의 기원과 명칭, 풍물굿(풍물놀이)의 형태와 지역분화, 풍물굿패(풍물놀이패)의 짜임과 옷차림, 풍물굿(풍물놀이)에서 치배의 구성과 역할, 풍물굿(풍물놀이)에서 영기의 상징(풍물놀이, 풍물굿, 풍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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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풍물놀이][풍물굿][농악]풍물굿(풍물놀이)의 기원과 명칭, 풍물굿(풍물놀이)의 형태와 지역분화, 풍물굿패(풍물놀이패)의 짜임과 옷차림, 풍물굿(풍물놀이)에서 치배의 구성과 역할, 풍물굿(풍물놀이)에서 영기의 상징(풍물놀이, 풍물굿, 풍물)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풍물굿(풍물놀이)의 기원

Ⅲ. 풍물굿(풍물놀이)의 명칭
1. 농 악
2. 사물놀이
3. 그 외의 명칭
1) 풍장
2) 두레
3) 굿
4) 매구, 매굿, 매귀(埋鬼)
5) 풍물, 풍물굿

Ⅳ. 풍물굿(풍물놀이)의 형태
1. 축원형태
2. 노작형태
3. 걸립형태
4. 연예형태

Ⅴ. 풍물굿(풍물놀이)의 지역분화

Ⅵ. 풍물굿패(풍물놀이패)의 짜임과 옷차림

Ⅶ. 풍물굿(풍물놀이)에서 치배의 구성과 역할
1. 상쇠의 역할
1) 기획자로서의 역할
2) 지휘자로서의 역할
3) 연행자 역할
2. 꽹과리의 역할
3. 징의 역할
4. 장고의 역할
5. 북의 역할
6. 소고의 역할
7. 잡색의 역할

Ⅷ. 풍물굿(풍물놀이)에서 영기의 상징

Ⅸ.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생명을 탄생시킨다. 이처럼 하늘과 땅과 사람의 만남, 그 만남을 확실하게 하나로 통하게 만들어 새 생명력을 획득해 가는 굿의 구조, 이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삼지창의 모양이며 이 삼지창의 뜻과 힘을 글로서 표현한 것이 令이라는 글자다.
삼지창은 세 끝(極)이 있는 창을 하나의 막대기(하나)가 받치고 있는 형상이다. 三極은 하나와 통하고 있다. 삼극은 하늘(天), 땅(地), 그리고 사람(人)을 이른다. 담고 있는 뜻은 셋이면서 하나고 하나이면서 셋이다는 의미가 된다. 한민족의 고유사상에서는 하나를 삼극을 밝히는 하나라고 보았다. 또한 하늘과 땅과 사람의 지극한 이치로서 하늘은 음양으로 하나를 얻어 셋이 되고 땅도 음양으로 하나를 얻어 셋이 되고 사람도 음양으로 하나를 얻어 셋이 된다. 천지인 삼재가 음양으로 육을 이룬다.(天二三地二三人二三大三合六... - 김일훈, 천부경주해, 민속신약 제3집, 1988, 9쪽)라고 보았다. 주역의 계사전에서는 육효의 움직임은 삼극의 도라, 도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셋을 낳아 셋에 이르되 그 변화가 다함이 없으므로 셋이 만물을 낳는다라고 하였다. 이와 같은 사상을 삼신사상이라고 일컬어 왔다. 새로운 창조가 가능하도록 변화의 뜻에 합일시켜나가는 인간의 행위가 곧 굿이다. 굿은 삼신사상을 구현해 나가는 생명체(인간)들의 지극한 행위이다.
영기의 令은 신의 명령을 대변하고 시행시키는 명(命)이기도 하고, 군법(軍法)을 세우는 군령이며, 그 집단의 공유된 힘이 내리는 명령이기도 하다. 그렇게 때문에 영기를 담당하는 영기수는 온 정성과 신경을 써서 영기가 쓰러지지 않도록 지켜야 했다. 이는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절대적인 원칙이자 책무였다. 천지인이 합일되는 순간 생성되는 힘과 생명력이 판(인간세의 생활현장)에 새생명을 불어넣어준다는 믿음과 사상, 이를 구현시키기 위한 애씀이 굿이며, 이 사상의 판에서의 구현이 굿의 책무이자 굿의 구조와 연행원리를 제공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확인했으며 영기가 이를 상징하고 있음을 알았다.
Ⅸ. 결론
풍물은 조선 후기 마을공동체에서 힘든 노동을 즐겁고 활기찬 노동으로 전환하기 위하여 놀이와 노동이 결합된 두레굿으로 형성되었으며 마을 전체의 크고 작은 일들과 결합하면서 마을굿으로 확대 발전되었다. 실례로, 모판을 내고 씨를 뿌릴때 20명이 논에 모를 낼때 7~8명이 논뚜렁에서 풍물장단에 맞춰 농요가락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데, 현대의 경제학적인 측면에서보면 27~8명이 함께 모를 내면 효용의 가치가 높아진다. 이것은 자본중심의 가치이다.그러나 사람중심의 가치를 보면, 20명이 모를 내고 옆에서 노는 꼴을 보면, 이미 그것은 힘든 농사일이 아니라 함께 어울려 노는 놀이이다.
지금까지 전승되어온 농요로는 에루아 에루얼싸가 있다. 앞소리를 논두렁에서 치고 그장단에 맞춰 뒷소리를 모내는 사람들이 받는것, 이때는 이미 힘든 노동을 즐거운 놀이로 전환하는 조상들의 지혜가 엿보인다. (이러한 형태들을 두레패적 풍물이라고 한다)이후 이러한 마을 단위의 풍물을 바탕으로 하여 마을 공동기금 조성을 위한 걸립굿이 생겨나면서 전문적인 풍물패가 만들어지고, 사회경제학적으로는 조선후기에 양반제도의 해체과정 (조선후기엔 양반계급이 70%이상)과 상공업의 발전에 의해 지방장시를 기반으로 한 전문 예인 집단인 사당패가 출현하면서 전문적인 연희굿이 발전하게 된다.(이러한 형태를 사당패적 풍물이라고 한다.) 이 연희굿은 노동 과정에 나온 풍물이 전문적 문화예술로까지 발전한 것으로 풍물의 가능성을 더욱 넓혔고 마을굿과 유기적으로 결합하면서 풍물의 전성기를 이루게 되었다. 이렇게 두레를 기반으로 발전해 온 풍물은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으로 그 발전이 단절되고 왜곡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두레 공동체에 대한 철저한 탄압과 함께 민족적인 유대감과 일체감을 형성하는 한민족의 뿌리깊은 문화인 풍물도 낭비적인 것, 미신적인 것이라 하여 철저히 탄압을 받았다. 농민에 의해 자발적으로 발전되어 온 공동 노동 조직인 두레는 부역에 의해 강제화 되고 품팔이에 의해 개별화되었으며 풍물은 일과 놀이의 생산적 결합이 아니라 강제노동의 능률을 높이기 위하여 사용되었으며 전문연희패는 일제의 수탈정책에 이용되면서 마을굿과의 유기적 관계 속에서 담보해 온 민중지향성을 상실하게 된다. 해방후 우리의 역사는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채 서구의 개인주의적인 문화가 밀려오는 과정에서 우리 민중들이 향유하는 문화는 퇴폐적이고 향락적인 자본주의 문화의 영향으로 비생산적인 소비문화로 자리잡게 되었다.
70년대 초에는 새마을 운동으로 민족적인 전통을 무시한 서구적 합리주의의 영향으로 민족적인 것을 미신, 낭비적인 것이라 하여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던 당산, 악기 등을 없애버렸던 것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전통 문화 복원정책은 창조적이고 생명력있는 전통민중문화를 형식적으로만 복원시킴으로써 삶 속에서 변화, 발전하는 주체적인 문화가 아니라 박제화되고 특정인만이 하는 특별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따라서 이러한 풍물은 민중의 건강한 문화로서가 아니라 마스게임화되고 경연 대회 출연용 박정권시대 80년도 국풍81 등으로 둔갑하는 풍물로 자리잡아 왔던 것이다. 반면에 70년말부터 우리의 전통 문화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탈춤을 중심으로 하여 풍물, 민요 등이 광범위하게 확산되는 과정을 거치게 되었으며 이러한 쟝르중에서 풍물이 가장 많이 보급되었고, 특히 87년 노동자 대투쟁이후 노동자들이 풍물을 가장 많이 찾게 된 과정이기도 하다. 따라서 새로이 광범위하게 보급되는 풍물은 과거의 지나간 문화로서가 아니라 살아있는 현재의 문화로 재창조하여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김헌선(1988) : 사물놀이란 무엇인가, 귀인사
김현숙(1999) : 사물놀이의 기초적 지도 방안에 대한 연구, 한양대학교 교육대학원
권희덕(1995) : 농악교본, 서울 : 세일사
국립국악원(1990) : 국악교육의 이론과 실기, 서울: 국립국악원
봉천놀이마당(1994) : 민속교육자료집, 우리교육
박준(2003) : 사물놀이의 관객개발을 위한 마케팅 연구, 단국대학교

키워드

풍물놀이,   풍물굿,   풍물,   농악,   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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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05.03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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