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찬][성찬 기원][성찬 4중 행위][예배 본질][성찬 사상가][성찬 방향]성찬의 의의, 성찬의 기원, 성찬의 목적과 효과, 성찬의 4중 행위와 예배의 본질, 성찬에 대한 사상가의 이해, 향후 성찬의 방향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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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성찬][성찬 기원][성찬 4중 행위][예배 본질][성찬 사상가][성찬 방향]성찬의 의의, 성찬의 기원, 성찬의 목적과 효과, 성찬의 4중 행위와 예배의 본질, 성찬에 대한 사상가의 이해, 향후 성찬의 방향 분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성찬의 의의

Ⅲ. 성찬의 기원

Ⅳ. 성찬의 목적과 효과

Ⅴ. 성찬의 4중 행위와 예배의 본질
1. 성물의 봉헌 - 떡과 포도주를 취함
2. 성찬기도 - 감사를 드림
3. 분병 - 떡을 뗌
4. 수찬 - 떡과 포도주를 나눔

Ⅵ. 성찬에 대한 사상가의 이해
1. 성찬에 대한 바울의 이해
2. 성찬에 대한 루터의 이해
3. 성찬에 대한 칼빈의 이해
4. 성찬에 대한 쯔빙글리의 이해

Ⅶ. 향후 성찬의 방향

Ⅷ.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마시는 것은 부인하고, 믿음 안에서 영적 참여를 가르쳤다.
그가 이같이 주장하는 배경에는 성찬 제정의 말씀에서 \"est(ist)\"라는 단어를 \"significat(bedeutet)\"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근거로서 쯔빙글리는 성서의 예를 제시하고 있다. 출애굽기의 \"일곱 염소는 칠 년의 풍년이다\" 또는 요한 복음의 \"나는 포도나무이다\",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등의 표현에서의 \"이다\"는 \"의미한다\"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표상은 성찬에 계시지 않는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을 말한다. 그는 지리적 관념을 가지고 부활하여 승천하신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시는데 지상의 성찬의 자리에 동시에 계실 수가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그리스도는 승천하신 후에 그의 신성으로만 편재하시며 그의 인성으로는 하늘의 일정한 장소에 제한되어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쯔빙글리에게 있어서는 세례가 내적인 거듭남의 표시와 상징이듯이 성찬도 역시 한 표시이며 상징일 뿐이다. 이렇게 생각함으로서 그는 성찬을 그리스도와 그리고 믿는 그리스도인들과의 공동 식사(Gemeinschaftmahl)로 간주하고 있다. 그는 성찬에 있어서 참여자의 신앙을 강조하고 있는데 그리스도는 본질적으로 또는 실제적으로 성찬에 임재 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을 통해서 임재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신앙의 행위를 통해서 임재 하신다는 것이다. 우리가 \"아들을 우리에게 보내 사 우리를 구속하신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감사(Eucharistie)를\" 행할 때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임재 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러므로 쯔빙글리는 \"das Essen des Glaubens\", \"geistige Speise\"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성찬에 진정으로 임재 한다고 믿는 바 그러한 임재 없이는 영적 교제(Kommunion)가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이 조악하고 육체적인 방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종교적이고, 신앙적이고, 경건한 마음에 의한 영적인 방법에 의해서 먹히운다고 믿는다.\"
쯔빙글리는 1525년 4월에 Z rich에서 미사를 폐지하고 대신 성찬예배로 대치하였다. 이 예식은 청년들에게는 목요일에, 중년층은 24일에 노년들에게는 부활절 주일에 행하였는데, 이때 누룩이 섞이지 않은 빵과 포도주를 나무그릇에 담아 행하였다. 그는 1년에 네 차례-부활절, 오순절, 가을에 한 번, 크리스마스-성찬식을 행하도록 제안하였다.
Ⅶ. 향후 성찬의 방향
종교개혁의 전통을 따르는 우리의 예배는 말씀의 권위회복은 가져오면서도 역시 성찬의 의미를 간과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던 것이다. 즉 말씀의 의미만 예전의 요소로 강조하였고 성찬은 부차적인 것으로 보았다는 점이다. 따라서 오늘날 한국개신교의 예배는 이러한 문제점을 안고 있음을 지적할 수 있는데, 성찬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말씀 설교만 강조함으로서 결국 중세 로마 카톨릭 교회의 반대적 모순을 저지르는 예배가 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신학적으로 말씀 예배는 성찬 예배로 가는 수단으로 보아야 하며 예배의 실제적인 목표는 어디까지나 성찬에서의 주님과의 신비로운 연합과 교제에 있음을 우리는 인식해야 할 것이다. 그 때문에 말씀예배와 성찬이 항상 연결되는 예배가 가장 이상적인 예배임을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이 균형있는 예배가 되기 위해서는 매주일 예배에서 말씀과 성찬이 함께 있는 예배를 드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전통이 익숙하지 않은 관계로 한 달에 한 번 정도라도 말씀과 성찬이 함께 어우러지는 예배가 이루어지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예배는 헌신의 고백과 결단을 위한 상징적 의식으로서 성찬과 연결될 때에 헌신의 의미가 무엇인지 더욱 분명하게 될 것이다. 세상 가운데서 이루어야 할 하나님의 뜻을 따름이 선교의 사명이며 그것은 사랑의 봉사를 통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말씀 중심의 기본적인 구도에 따라서 다양한 예배의 순서들이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말씀중심의 예배는 동시에 성찬을 중심한 예배와 연결된다면 더욱 바람직한 기독교의 예배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아직은 전통과 익숙하지 않은 습관 때문에 매 주일예배에 말씀과 성찬이 연결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지 모르나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씩 첫 주 예배에 말씀과 성찬이 연결된다면 바람직한 예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Ⅷ. 결론
오늘날 예배의 개혁에 대한 움직임 가운데 예전성의 회복을 통한 개혁의 필요를 주장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와 관련해서 예배에서 성찬의 비중과 가치에 대한 긍정적 평가도 함께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평가의 근저에는 성찬의 단순한 행위보다도 그 행위가 동반하는 예배 신학적 가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성찬과 관련된 해묵은 교리적 논쟁에 대한 또 하나의 주장이 아닌, 그 속에 녹아 있는 오늘을 향한 예배의 소중한 원리와 내용에 대한 재발견을 염두에 둔 말이다. 특별히 성찬의 틀인 4중 행위는 현대의 예배에 대한 여러 개혁적 고려들에 대해 중요한 방향과 지침을 제공하고 있다. 그 내용과 실행의 방법과 거기서 울어나는 상징성을 통해서 4중 행위는 역사적 과정에서 교회가 갈고 다듬은 건전한 신학을 담고 있는 중요한 태(胎)가 되어 왔기 때문이다. 오늘의 시대적인 상황에서 비록 예배가 동시대적인 요청에 대해서도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하겠지만 전통에 대한 겸손한 의뢰는 여전히 필요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성찬의 4중 행위의 올바른 이해와 실행은 자칫 황폐해지거나, 왜곡되거나, 균형을 잃거나, 심지어 방향마저 상실할 수 있는 오늘 우리의 예배를 위한 필요한 좌표가 될 수 있을 것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참고문헌
◈ 가홍순, 성만찬과 예배갱신, 나단, 1994
◈ 김상구, 일상 생활과 축제로서의 예배
◈ 김순환 역, 도서정보 로렌스훌 스투키, 성찬, 어떻게 알고 실행할 것인가,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2
◈ 빌리앙 나아겔, 그리스도교 예배의 역사, 대한기독교서회, 2006
◈ Franklin M. Segler, 예배학 원론, 요단출판사, 1989
◈ J.J. von allmen, 예배학 원론, 대한 기독교 출판사, 1979

키워드

성찬,   4중 행위,   예배,   교회,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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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1페이지
  • 등록일2009.09.20
  • 저작시기2021.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53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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