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론][유물사관][마르크스]변증법적 유물론, 역사적 유물론(유물사관), 역사적 유물론(유물사관)의 형성, 마르크스 역사적 유물론(유물사관), 마르크스 유물론과 자본론, 마르크스 유물론과 반자연주의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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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유물론][유물사관][마르크스]변증법적 유물론, 역사적 유물론(유물사관), 역사적 유물론(유물사관)의 형성, 마르크스 역사적 유물론(유물사관), 마르크스 유물론과 자본론, 마르크스 유물론과 반자연주의 분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변증법적 유물론
1. 유물론의 개념
2. 유물론의 역사
3. 유물론의 내용과 형식
4. 부정의 부정
5. 유물론의 인과성

Ⅱ. 역사적 유물론(유물사관)
1. 국가관
2. 사회관
1) 자본주의에서의 시민사회
2) 시민
3) 보편계급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

Ⅲ. 역사적 유물론(유물사관)의 형성

Ⅳ. 마르크스 역사적 유물론(유물사관)
1. 과학주의 또는 실증주의의 문제점
2. 역사주의의 문제점
3. 경제 결정론의 문제점

Ⅴ. 마르크스 유물론과 자본론

Ⅵ. 마르크스 유물론과 반자연주의
1. 자연주의와 반자연주의
2. 사회적인 것의 환원 불가능성
3. 인간 본성과 생산력

참고문헌

본문내용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역설한 것은 기억할 만하다.
마지막으로 명제 1)에 대하여는 그것이 생산관계와 생산력의 설명적 우선성이라는 역사적 유물론의 기본적 명제를 함축하지 않음을 주목하자.
2. 사회적인 것의 환원 불가능성
자연주의와 반자연주의의 진정한 논쟁이 시작되는 것은 바로 두 번째 문제 즉 과학들의 방법론적 통일성의 문제이다. 불행하게도 이 문제에 대한 마르크스주의 내에서의 진지한 논쟁은 헤겔주의적 마르크스주의자들과 프랑크푸르트학파에 통용되고 잇는 수학과 자연과학에 대한 극히 조야하고도 부정확한 이해에 의하여 대체적으로 손상을 입었다. 반자연주의를 독일 지식인층의 몰락의 징후라고 무시해 버리거나 과학과 테크놀로지에 대한 비합리적 낭만적 거부라고 간단히 무시해 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기 쉽다. 그러나 이는 성급한 것이 될 것이다. 반자연주의에도 합리적 핵심이 있다. 이는 그 반과학주의에 있는 것이 아니고 과학들의 방법론적 통일성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명제 3), 즉 과학이 사회적 행동을 설명하는 모델을 제공한다는 명제에 대한 적대성에 있다. 이 문제는 반자연주의자들이 명제 2)가 명제 3)을 함축하거나 그와 동일하다고 믿고 잇기 때문에 불명료해진다. 그러나 두 명제는 뚜렷이 다르다. 왜 이런지를 명확히 보기위해서 때때로 자연주의와 동일시되는 명제들을 둘 더 살펴보자.
4) 인간행위에 대한 유일한 완전하고 만족스런 설명은 사회과학을 자연과학으로 환원하는 데 있다.
5) 사회적 행위는 인간 본성에 내재하는 어떤 성향들의 발현으로 설명되어야 한다.
명제 5)(이 장의 마지막 절에서 더욱 상세하게 논의될 것이다)는, 인간의 성향을 거론하는 것은 이 성향들을 궁극적으로 물리적인 용어로 환원하기 이전에 사회적 행위를 잠정적으로 설명해 준다는 전제 위에서 명제 4)와 어긋나지 않게 연관되는 것으로 될 수 있다. 역사적으로는 명제 3)과 5)가 더 중요하게 연관된다. 인간과학의 물리학으로의 환원에 대한 요구를 담은 명제 4)는 조금 달라진 형태로 현재 정신을 연구하는 분석적 철학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쟁의 재료가 되고 있다. 나는 여기서 인간의 행위가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가에 대한 하나의 주장이라는 점에서 명제 4)에 주의를 집중할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와 물리주의가 양립할 수 없다고 믿게 되는 데에는 어쨌든 두 가지 타당한 이유가 있다. 첫째, 마르크스는 인간을 다른 자연 세계와 구분하는 것은 무한하게 다양한 방식으로 자연환경에 반응하고 자연환경을 바꿀 수 있는 인간의 능력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이 만일 타당하더라도 그 자체로 물리주의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지는 않음에 주목하자. 오히려 이 주장은 만일 마르크스주의가 옳다면 물리주의는 틀렸다는 것을 확증한다. 마르크스주의의 진위를 확증하는 것은 별개의 경험적인 문제인 것이다. 물리주의를 거부하는 두 번째 이유는 다음과 같다. 2장에서 보았듯이 마르크스는 재정향적 활동에 참가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 즉 고정되고 제한된 과제들을 수행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질적으로 새로운 목적을 설정할 수 있는 능력은 자신의 활동에 대하여 반성할 수 있는 능력과 그리고 실로 자신의 반성에 대하여도 반성할 수 있는 능력과 불가분 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믿었다.
3. 인간 본성과 생산력
이제 명제 5) 즉 사회적 행동의 설명은 주어진 행동들이 구현하는 인간 본성의 지속적인 특징들을 상세히 밝히는데 있다는 주장이 남았다. 이 명제에 대한 마르크스의 반대는 그의 정치경제학 비판에 의해 강화되었는데, 여기서 그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들의 특수한 성향들을 인간 본성의 보편적 특징들로 간주하며 그럼으로써 일시적이고 착취적인생산양식의 특징들을 자연적이고 불변적인 것으로 보는 경향을 밝혀냈다. 나는 역사적 유물론 내에서 \'인간 본성의지속적인 사실들\'에 보다 높은 지위를 부여하려는 Cohen의 최근의 시도에 대해 고찰함으로 써 이 문제를 해명하려고 할 것이다. 코헨은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의 서문에 설명되어져 있고 제2인터내셔널에 널리 받아들여진 역사적 유물론을 옹호하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생산력들의 발전은 역사변화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독립 변수이다. 이 접근법에는 여러 난점들이 있다. 이 글에서 집중하고자 하는 난점은, 사회변화를 야기하는 것이 인간의 생산력들의 확대라 고한다면 왜 \'생산력들은 역사를 통해서 발전하는 경향이 있는\' 것인가라는 문제를 중심으로 한다. 이 \'발전테제\'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코헨은 초역사적인 \'합리성 원리\' -인간이 합리적이고, 물자가 희소하며, 인간이 자신의 상황을 향상시킬 수 있는 지성을 소유하고 있다면 생산력을 확대할 것이다- 를 들먹이고 있다.
이 합리성의 원리가 그가 바라는 만큼의 설명적 역할을 맡지는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기는 어렵지 않다. 실로 모든 증거는 유럽의 중세 시대의 경제적 상황은 노동생산성의 증가라기보다는 인구 압박에 비례하는 경작되는 땅의 총량의 증가를 포함하는 외연적인 것임을 시사한다. 나의 주장의 요점은 생산력들이 전반적으로 발전함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력 확대의 서로 다른 형태와 속도는 생산관계들에서 시작함으로써만 그리고 생산력들이 아니라 생산관계들을 독립변수로 간주함으로써만 설명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실로 생산력들이 하락하는 비정상적인 경우를 \'역사적 병리학\'에 귀속시키는 것은 제2인터네셔널의 마르크스주의가 가진 것과 같은 유기적 역사관을 시사한다. 이런 식이라면 역사의 진보는 필연적이 되며, 사회투쟁에 내재하는 대안들에 대한인식, \'서로 싸우는 계급 모두의 파멸\'의 가능성에 대한 인식은 마르크스주의 에서 말소된다.
참고문헌
두레 - 사적 유물론과 변증법적 유물론 마르크스주의와 언어학
이용필 - 유럽마르크스주의의 전개, 서울대학교출판부, 1997
이기백 - 유물사관적 한국사상, 현대한국사학과 사관, 일조각, 1991
알렉스 캘리니코스 - 마르크스의 사상, 북막스, 2000
크라피빈 - 변증법적 유물론이란 무엇인가, 광주
한수영 외 - 재미있는 철학강의, 도서출판 이성과현실, 1989
F,V 콘스탄티노프 - 사적유물론, 도서출판 새길,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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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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