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와 유럽 : 지배와 저항-러시아와 터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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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세계와 유럽 : 지배와 저항-러시아와 터키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 러시아:하나의 독립된 세계-경제
․신속하게 반(半)독립성으로 되돌아간 러시아 경제
․강한 국가
․러시아에서 예속이 심화되다
․시장과 농촌
․읍 수준의 도시
․어떤 성격의 세계-경제인가?
․시베리아를 발명하다
․취약성과 약점
․유럽의 침투의 대가

․터키제국
․세계-경제의 기초
․유럽의 지위
․카라반의 세계
․오랫동안 지켜온 해상공간
․터키에게 봉사하는 상인들
․경제적 데카당스와 정치적 데카당스

본문내용

낫기도 했다. 터키는 아덴을 장악하고 있던 1538-1549년 동안 이곳을 확실하게 통제했다. 그보다 더 일찍부터 홍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던 터키는 메카와 다른 이슬람 성지들을 점령했다. 홍해는 오랫동안 카이로, 알렉산드리아, 지중해로 가는 후추와 향신료의 핵심적인 수송로 역할을 했다. 그러나 1630년경에 이르면 네덜란드인들은 유럽으로 가는 극동의 후추와 향신료들을 거의 희망봉을 우회하여 수송할 수 있게 되었다. 향신료 수송의 우회로가 생겼다고 해서 홍해가 폐쇄되지는 않았다. 홍해를 통한 연결로는 신대륙의 귀금속이 인도로 그리고 그 너머의 동쪽으로 가는 흐름에서 핵심적인 통로였다. 그리고 이것이 16세기 이후에도 계속 그랬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 카라반은 직물이나 산호와 같은 유럽 및 지중해 상품들도 함께 운송했다.
- 반대방향으로는 남부 아라비아의 커피가 갈수록 중요한 모터 역할을 했다. 모카가 그 중심지가 되었으며 홍해상에서 지다와 함께 가장 큰 항구가 되었다. 극동의 온갖 지역 출신의 상인들과 상품들을 실은 선박들이 인도양으로부터 이곳에 들어왔다. 향신료와 커피는 지다나 수에즈로 갔다.
- “제왕”의 상품이 된 커피와 함께 홍해는 새로운 번영을 누리게 되었다. 동인도 회사의 선박들도 귀항 길에는 일부러 모카를 들르는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레반트 무역의 재생의 중심지이며 사실상 자유도시인 커피 무역 중심지 모카는 인도양을 항해하는 많은 배들이 기항하는 곳이었다.
- 어쨌든 수에즈, 이집트 그리고 홍해는 유럽 인들의 탐욕을 새로 자극했고, 이스탄불과 카이로 등지에서는 프랑스 인들과 영국인들 사이에 경쟁이 치열해졌다.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고 인도로 가는 지중해 통로가 다시 열리는 일이 실현되려면 아직도 한 세기를 더 기다려야 한다(1869).
터키에게 봉사하는 상인들
- 터키 제국을 지탱하는 제국 경제는 서유럽 인들의 침투를 제한하고 막아내고 있는 한무리의 상인들이 수호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일상적인 거래를 담당하는 사람들은 아랍 상인, 아르메니아 인, 우대 인, 인도 인, 그리스 인, 터키 인도 있었다. 어디에서든지 유랑상인, 소매상인, 점포 주인들이 조그마한 가게에서 우글거리고, 지리적, 인종적 그리고 사회적으로 온갖 잡다한 배경 출신의 대리인들이 득실거렸다. 수백만 피아스트라의 사업이 벌어지는 거대한 집합소인 정기시들이 사람, 상품, 끌짐승 등의 끊임없는 흐름을 조직했다.
- 활동적인 국내시장에서 서유럽 상인들은 출입할 수 있는 거래 중심지를 가지고 있긴 했으나, 현지 소매상인들과 접촉하는 것을 금지했다. 따라서 서유럽 상인들은 유대인이나 아르메니아 인들의 중개를 통해야 했는데 이 중개인들은 “조심해야 할 사람들”이었다.
- 더군다나 동양 상인들은 서유럽으로의 수출을 서양 상인들에게만 완전히 맡기지 않았다. 이들은 16세기이래 아드리아 해 연안의 이탈리아 도시들에 정착했다. 이 세기 말에는 베네치아, 페라라, 안코나, 심지어 페사로, 또 나폴리 및 메초조르노의 정기시들에 동양 상인들이 침투해왔다. 이들 중 가장 호기심을 끄는 사람은 그리스 출신의 상인 겸 선원들이었다.
- 흥미로운 것으로 18세기 합스부르크에 양도된 땅으로의 “그리스 정교인” 상인들의 이산을 꼽을 수 있다. 그리스 인들은 새로운 지역을 정복하고, 팽창해가면서 경계를 넘어 유럽 전역으로 퍼져갔다.
경제적 데카당스와 정치적 데카당스
- 터키 제국이 완전히 쇠퇴한 것은 19세기 초에나 가서의 일이다.
- 해결해야 할 문제는 19세기 첫 1/3에 해당하는 이 시기가 정치적 측면에서도 오스만의 쇠퇴과정이 진척된 시기였는가를 확인하는 일이다. 터키는 폴란드 보다 강한 실체였고, 혁명전쟁과 나폴레옹 전쟁이라는 휴지기도 작용했다.
- 터키를 괴롭히는 해악들은 모든 면에서 동시에 터져나왔다: 국가에 대해서는 누구도 복종하지 않았다 ; 생활비는 상승했는 데 임금은 그대로여서 횡령을 통해 배상을 받았다; 아마도 화폐량이 모자라거나 적어도 화폐의 여력을 잘 동원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육군과 해군을 개혁하고 지키며 쇄신하는 데에는 오랜 기간이 필요했고 국가의 덩치가 큰 만큼 엄청난 비용이 소모되었다.
- 이 곤경에 처한 세계에 상업화되고 적극적이며 욕심이 한이 없는 유럽이 성공적으로 들이닥친 것은 자신도 모르는 새에 조종이 울린 것과 마찬가지였다. 오스만 제국은 그만큼 강한 힘을 가지고 있긴 했지만 구태의연한 체제와 무거운 과거의 유산으로부터 빠져나올 정도로 강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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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10.15
  • 저작시기2009.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56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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