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성령과 믿음이 없는 인격들이 되며 성경에서 빼 내었으나 하나님이 가르치신 바가 아닌 육적인 사람들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이로 말미암아 반대자는 이러한 논쟁자의 논쟁으로 화가 나게 되고 반대자는 비록 답변 할 수는 없지만, 자신을 반대하는 논쟁자의 행동 방식, 육적인 감정, 모욕, 그와 유사한 것들로 말미암아 반대자는 회심할 가망이 없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올바르게 높이고자 한다면, 논쟁의 방향은 반대자들을 회개시키고 수호되어 온 진리를 거룩한 순종과 하나님을 충분한 감사에 적용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 제 5 제안 : 성직자들이 올바르게 훈련을 받아야 한다.
슈페너는 성직자를 양성하는 대학에서 교수와 학생이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먼저 교수들에 대해서는 교수들이 솔선수범하여 세상에 대해서 죽은 자로서 행동하고 모든 일에서 자기의 영광, 이익, 쾌락을 추구하지 않으며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잘 감당하는 등 삶 자체로서 학생들에게 본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식탁에서도 좋은 규율을 행해야하고, 걸맞지 않는 대화, 특히 악한 목적으로 성경 본문, 찬송 시, 그리고 이와 유사한 말들의 의미를 왜곡하여 잘못 사용하는 대화를 금하고 이를 강하게 책망해야 할 것이며, 무관심하게 용납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교수들은 학생들의 연구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에 주의를 기울여서 비록 학생이 연구에 있어서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그의 삶이 방탕하면 분명히 지적해서 잘못을 알게 해야 하며, 경건한 삶의 학생들에게는 비록 학업에 있어서는 부족할 지라도 존귀하고 사랑받는 존재임을 공개적으로 분명하게 보여주라고 이야기한다.
신학은 실천적인 훈련이므로 경건의 묵상을 시작하는 법,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는 법, 자신의 소원을 점검하는 법과 세상에 대하여 죽는 법, 선 안에서의 성장 또는 여전히 부족한 면을 성찰하는 법, 다른 사람들의 행위를 가르치는 내용을 스스로 행하는 법에 대해 구체적인 제안을 학생들에게 제시하면 바람직 할 것이라고 슈페너는 제안한다.
학생들에 대해서는 인간은 무엇엔가 따라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규제할 수 있는 삶의 본을 가지라고 권하고 또 거룩한 삶이 부지런함과 연구 못잖게 중요한 것이며, 경건이 없는 연구는 가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자신에게 끊임없이 새겨 두라고 이야기한다.
배움에서 성장하고 도덕에서 후퇴하는 자는 누구든지 발전이 아니라 쇠퇴의 길을 가고 있다는 인생의 법칙을 학생들은 기억해야하며 그 이유는 신학은 실천훈련이기 때문에 모든 것은 믿음의 행위와 삶을 지향해야만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슈페너는 아브라함 칼로비우스가 신학생이 왜 거룩한 삶에 힘써야 하는가에 대하여 요약한 내용을 소개한다.
첫째, 바울이 디모데를 그렇게 가르쳤기 때문이다.
둘째, 참되시고 유일하신 스승이신 성령께서는 죄의 노예가 된 심령 속에 거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셋째, 신학생은 육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이고 거룩한 하나님의 지혜를 다루며, 지혜의 시작은 주를 경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넷째, 신학에는 지식뿐만 아니라 마음의 감정과 실천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다섯째, 말을 행동으로 옮기는 자는 복이 있다고 선인들이 말했고, “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고 예수님께서 말씀 하셨기 때문이다.
여섯째, 지혜는 악한 영혼 안으로 들어오지 않으며 죄 아래 있는 몸에 거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곱째, 구약의 레위인들처럼 주의 집에 들어가 있기를 원하는 자들은 자신들의 삶을 성별되게 하고 정화하는 데 있어서 수고를 아끼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슈페너는 이러한 내용들을 도처의 모든 강연회 장 앞과 내부에 붙여지고 연구실에 있는 모든 학생들 앞에 두게 하여 그들의 마음속에 새겨지기를 하나님께서는 바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하기를 권고한다.
슈페너는 만일 자신에게 제안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경건한 신학자가 처음에 많은 학생들을 훈련시키지 말고 의로운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열렬히 소망하는 것으로 관찰된 일부 수강생들만을 훈련시키는 것이 유리 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또한 신학자들과 학생들은 학문적인 것은 경시하고 그들의 교화에 유익한 것에만 주목하는 방향으로 신약성경을 다루어야 하며 또한 학생들의 생각이 목적에서 벗어나는 것을 본다면 명확하고 친절한 자세로 본문에 기초하여 바로잡아주어야 할 것이며, 이런저런 행동법칙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어떤 기회를 그들에게 보여 주어야 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뜨겁고 열정적인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면서 이러한 훈련을 계속하고 노력한다면, 짧은 시간 안에 경건의 훌륭한 성장을 이룰 것이라는 것이다.
▶ 제 6 제안 : 설교는 청중들이 최대한 성취 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슈페너는 학생들이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고양시키기 위한 이러한 훈련들 외에도 교수들은 학생들이 사역할 때 다루어야 할 것들, 즉, 때때로 무식한 사람을 가르치는 훈련, 병자를 위로하는 훈련, 특히 설교하는 훈련 등에 관한 행동 지침을 만든다면 유익할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청중은 이해 못하는데 설교자가 학식이 있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는 내용들로 설교의 대부분을 채운다든지 외국어를 많이 사용한다든지 하는 것은 잘못된 설교이며 설교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수단이 되어야 할 것이므로 이 목적에 맞게 지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요리문답도 중요한 기초이므로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참여 시켜 되풀이해서 가르치라고 이야기한다. 설교자는 설교를 통해 겉 사람에게는 관심을 갖지 않게 하고 속사람, 새사람이 변화되고 또 더 강해지는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하고 그 것이 익숙해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세례나 성찬이나 기도 등 모든 행위가 겉 사람에 머물지 않고 속사람에 까지 영향을 미쳐야 하며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슈페너는 이렇게 기독교의 실제 능력은 속사람에게 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설교들은 이러한 방향을 지향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며, 여러 유명한 설교자의 설교 집을 참고하여 능력 있는 설교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올바르게 높이고자 한다면, 논쟁의 방향은 반대자들을 회개시키고 수호되어 온 진리를 거룩한 순종과 하나님을 충분한 감사에 적용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 제 5 제안 : 성직자들이 올바르게 훈련을 받아야 한다.
슈페너는 성직자를 양성하는 대학에서 교수와 학생이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먼저 교수들에 대해서는 교수들이 솔선수범하여 세상에 대해서 죽은 자로서 행동하고 모든 일에서 자기의 영광, 이익, 쾌락을 추구하지 않으며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잘 감당하는 등 삶 자체로서 학생들에게 본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식탁에서도 좋은 규율을 행해야하고, 걸맞지 않는 대화, 특히 악한 목적으로 성경 본문, 찬송 시, 그리고 이와 유사한 말들의 의미를 왜곡하여 잘못 사용하는 대화를 금하고 이를 강하게 책망해야 할 것이며, 무관심하게 용납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교수들은 학생들의 연구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에 주의를 기울여서 비록 학생이 연구에 있어서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그의 삶이 방탕하면 분명히 지적해서 잘못을 알게 해야 하며, 경건한 삶의 학생들에게는 비록 학업에 있어서는 부족할 지라도 존귀하고 사랑받는 존재임을 공개적으로 분명하게 보여주라고 이야기한다.
신학은 실천적인 훈련이므로 경건의 묵상을 시작하는 법,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는 법, 자신의 소원을 점검하는 법과 세상에 대하여 죽는 법, 선 안에서의 성장 또는 여전히 부족한 면을 성찰하는 법, 다른 사람들의 행위를 가르치는 내용을 스스로 행하는 법에 대해 구체적인 제안을 학생들에게 제시하면 바람직 할 것이라고 슈페너는 제안한다.
학생들에 대해서는 인간은 무엇엔가 따라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규제할 수 있는 삶의 본을 가지라고 권하고 또 거룩한 삶이 부지런함과 연구 못잖게 중요한 것이며, 경건이 없는 연구는 가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자신에게 끊임없이 새겨 두라고 이야기한다.
배움에서 성장하고 도덕에서 후퇴하는 자는 누구든지 발전이 아니라 쇠퇴의 길을 가고 있다는 인생의 법칙을 학생들은 기억해야하며 그 이유는 신학은 실천훈련이기 때문에 모든 것은 믿음의 행위와 삶을 지향해야만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슈페너는 아브라함 칼로비우스가 신학생이 왜 거룩한 삶에 힘써야 하는가에 대하여 요약한 내용을 소개한다.
첫째, 바울이 디모데를 그렇게 가르쳤기 때문이다.
둘째, 참되시고 유일하신 스승이신 성령께서는 죄의 노예가 된 심령 속에 거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셋째, 신학생은 육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이고 거룩한 하나님의 지혜를 다루며, 지혜의 시작은 주를 경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넷째, 신학에는 지식뿐만 아니라 마음의 감정과 실천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다섯째, 말을 행동으로 옮기는 자는 복이 있다고 선인들이 말했고, “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고 예수님께서 말씀 하셨기 때문이다.
여섯째, 지혜는 악한 영혼 안으로 들어오지 않으며 죄 아래 있는 몸에 거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곱째, 구약의 레위인들처럼 주의 집에 들어가 있기를 원하는 자들은 자신들의 삶을 성별되게 하고 정화하는 데 있어서 수고를 아끼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슈페너는 이러한 내용들을 도처의 모든 강연회 장 앞과 내부에 붙여지고 연구실에 있는 모든 학생들 앞에 두게 하여 그들의 마음속에 새겨지기를 하나님께서는 바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하기를 권고한다.
슈페너는 만일 자신에게 제안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경건한 신학자가 처음에 많은 학생들을 훈련시키지 말고 의로운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열렬히 소망하는 것으로 관찰된 일부 수강생들만을 훈련시키는 것이 유리 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또한 신학자들과 학생들은 학문적인 것은 경시하고 그들의 교화에 유익한 것에만 주목하는 방향으로 신약성경을 다루어야 하며 또한 학생들의 생각이 목적에서 벗어나는 것을 본다면 명확하고 친절한 자세로 본문에 기초하여 바로잡아주어야 할 것이며, 이런저런 행동법칙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어떤 기회를 그들에게 보여 주어야 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뜨겁고 열정적인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면서 이러한 훈련을 계속하고 노력한다면, 짧은 시간 안에 경건의 훌륭한 성장을 이룰 것이라는 것이다.
▶ 제 6 제안 : 설교는 청중들이 최대한 성취 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슈페너는 학생들이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고양시키기 위한 이러한 훈련들 외에도 교수들은 학생들이 사역할 때 다루어야 할 것들, 즉, 때때로 무식한 사람을 가르치는 훈련, 병자를 위로하는 훈련, 특히 설교하는 훈련 등에 관한 행동 지침을 만든다면 유익할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청중은 이해 못하는데 설교자가 학식이 있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는 내용들로 설교의 대부분을 채운다든지 외국어를 많이 사용한다든지 하는 것은 잘못된 설교이며 설교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수단이 되어야 할 것이므로 이 목적에 맞게 지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요리문답도 중요한 기초이므로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참여 시켜 되풀이해서 가르치라고 이야기한다. 설교자는 설교를 통해 겉 사람에게는 관심을 갖지 않게 하고 속사람, 새사람이 변화되고 또 더 강해지는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하고 그 것이 익숙해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세례나 성찬이나 기도 등 모든 행위가 겉 사람에 머물지 않고 속사람에 까지 영향을 미쳐야 하며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슈페너는 이렇게 기독교의 실제 능력은 속사람에게 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설교들은 이러한 방향을 지향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며, 여러 유명한 설교자의 설교 집을 참고하여 능력 있는 설교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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