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역사와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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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인도-파키스탄 카슈미르 분쟁

◈ 파키스탄 - 방글라데시 종교분쟁

◈ 파키스탄의 정치

◈ 파키스탄의 경제

◈ 파키스탄의 자연환경

◈ 파키스탄의 사회 ․ 문화

◈ 파키스탄 민족 ․ 교통

◈ 파키스탄 종교 ․ 언어

◈ 한국과의 관계

◈ 파키스탄 미래 전망

참고자료

본문내용

발루치인(Baluchi) 및 파탄인(Pathans)으로 나뉘어지며 각 지방 원주민들은 상이한 특성을 갖고 있다.
펀잡인은 인구의 56%를 차지하고 있으며 체격이 건장하고 활동적이어서 군과 관료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신드인은 손기술이 뛰어나 정교한 수공예품 생산에 능하고, 발루치스탄지방에 거주하는 발루치인들은 단순하고 정직하며 신앙심이 깊고 주로 유목생활을 한다. 북서변방주에 거주하는 파탄인은 발루치인과 더불어 인도 아리안계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종족으로 투사적 기질이 뛰어나고 원한 및 적대 관계가 있을시 생명을 건 결투 전통을 지키고 있다.
파키스탄의 국어는 우르두(Urdu)어이다. 비록 종족에 따라 모국어가 다를지라도 우르두어를 통해서 국민의 일체감을 가진다. 영국의 오랜 식민지 지배로 영어가 널리 전파되어 사용되고 있는데, 상용 및 관용문서도 영어를 사용한다. 그밖에 펀잡어, 신드어, 발루치어, 파슈트어 등 24개의 지방 언어가 있다. 파키스탄을 탄생케한 역사적인 배경이 종교에 있었듯이 국민의 97%가 회교도이며, 이중 대부분이 수니파이고 나머지15-25% 정도가 시아파이다. 회교는 국교로서 사회문화는 물론 정치, 경제, 법률에까지 크게 영향을 미친다.
파키스탄의 도로는 카라치에서 인더스강 연안을 따라 북상하여 라호르라왈핀디를 거쳐 페샤와르를 지나 카이바르 고개에 이르는 옛 실크로드가 간선이며, 철도도 간선도로와 같은 방향으로 건설된 노선의 교통량이 가장 많다. 이슬라마바드에서 중국에 이르는 카라코람 고속도로는 중국의 원조에 의해 건설이 시작되어 15년에 걸친 오랜 공사 끝에 1978년에 개통되었다. 이 도로는 중국과의 교류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무역항은 카라치이며 국제공항은 카라치라호르이슬라마바드에 있다.
◈ 파키스탄 종교 언어
파키스탄 인구의 대부분은 이슬람교을 믿고 있으며, 그 중에서 수니파가 75%, 시아파가 20%를 차지하고 있다. 무슬림 외에는 기독교인이 2.5%로 가장 많으며, 그 밖에도 소수의 힌두교도, 불교도, 조로아스터교도, 시크교도 등이 있다.
파키스탄의 종교인구의 구성은 영국령 인도의 분할에 의해 크게 바뀌었는데, 영국령 인도가 인도와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으로 분할될 당시 7백만 명의 무슬림이 인디아에서 파키스탄으로 이동했고, 반대로 6백만 명의 힌두교도와 시크교도는 파키스탄에서 인디아로 이동하여 파키스탄에서 무슬림은 더욱 더 큰 수를 차지하게 되었다.
또한 파키스탄은 시크교와 대승불교, 그리고 밀교의 발생지이기도 하다.
법적으로는 우르두어가 공용어이지만, 다음과 같은 단서가 있다. "공용어가 영어의 역할을 대체할 때까지는, 영어는 공적인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즉, 명목적으로는 우르두어가, 실제적으로는 영어가 공용어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방수준에서는, 신드주만이 신드어와 우르두어를 공용어로 사용할 뿐, 나머지 지역은 우르두어가 유일한 공용어다.
◈ 한국과의 관계
파키스탄은 한국과 1968년 한국 총영사관 설치와 무역협정을 체결하고 1983년 양국 대사관 설치에 합의하였다. 1985년과 1988년에 하크 대통령과 모하마드 칸 주네조 총리가 각각 방한하였으며, 1990년 최호중 외무장관이 파키스탄을 방문하여 경제협력 확대방안을 논의하였다. 1984년 해운협정, 1985년 과학기술협정사증면제협정문화협정, 1985 사증면제협정, 1987년 이중과세방지협정, 1988년 투자보장협정, 1996년 항공협정을 체결하였다. 1998년 현재 대한수출은 1억 5,000만 달러, 대한수입은 3억 4,400만 달러이다. 주요 수출품은 면류, 원피, 광물연료 등이고 수입품은 전자 및 전기제품, 화학공업제품, 플라스틱, 인조스테이플 섬유, 원자로 등이다. 한국은 1991~1997년 사이 총 190만 7,000달러의 무상 원조를 하였다.
◈ 파키스탄 미래 전망
아시안 월스트리트저널(AWSJ)은 파키스탄 정부가 이슬람 극단주의의 확산을 막고 경제발전을 위해 공기업의 민영화를 서두르자 외국의 투자자금이 속속 유입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파키스탄 정부는 경제 발전을 위해 '실탄'을 마련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지난 5년간 은행 자산의 90%를 민간의 손에 넘겼다. 지난 3년간 민영화된 공기업만 26개에 달한다.
2003년 이후 공기업을 팔아 모두 50억달러의 자금을 확보했다. 지난주에는 파키스탄 텔레커뮤니케이션의 지분 26%를 아랍 에미리트 회사에 26억 달러를 받고 팔았다.
올해에는 수이 서던 가스나 파키스탄 스테이트 오일과 같이 주요 공기업을 매각할 계획이다. 올해 외자 유치 목표액은 30억달러에 달한다.
중국과 인도가 시장을 개방해 들여온 자금을 발전의 밑천으로 삼은 것과 비슷한 양상이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파키스탄은 지난해 8%가 넘는 경제성장을 달성했다. 미래 경제 전망도 밝은 편이다. 투자자들의 반응도 좋다. 테러와 국경지방의 반란 등 정세는 불안했지만 파키스탄 정부의 적극적인 '구애'에 외국 투자자들은 자금을 쏟아 부었다. 외국 투자자들 사이에서 파키스탄의 이미지는 좋게 채색되고 있다.
하지만 성장의 그림자가 발목을 잡고 있다. 파키스탄의 물가는 지난 2년간 두 자릿수 상승했다. 이로 인해 소득은 잠식됐고, 부는 적절히 분배되지 못했다.
공기업 매각과정의 투명성과 민영화에 따른 실업도 문제로 떠올랐다.
여기에다 덴마크 언론의 만화로 촉발된 반미 시위까지 겹쳐 파키스탄 정부는 1999년 정권을 잡은 이후 최대 위기에 섰다. 제2의 인도로 부상할 지 기로에 서 있는 셈이다.
한편 파키스탄은 원래 인도와 같은 국가였으나 영국 식민지에서 해방될 때 종교문제로 분리 독립했기 때문에 인도와 같은 문화와 전통을 가지고 있다.
참고자료
KIDA 한국국방연구원 http://www.kida.re.kr
밀레니엄 세계 대백과사전 8권 p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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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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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2페이지
  • 등록일2009.12.21
  • 저작시기2008.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69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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