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서론
2. 하늘의 뜻은 옳은가, 그른가?
3. 참된 인간
1) 하늘 앞에 선 사람, 군자(君子)
2) 군자의 덕목(德目)과 의(義)
3) 공자가 바라본 인간과 사회 그리고 군자의 역할
4. 공자의 선택과 오늘의 우리
2. 하늘의 뜻은 옳은가, 그른가?
3. 참된 인간
1) 하늘 앞에 선 사람, 군자(君子)
2) 군자의 덕목(德目)과 의(義)
3) 공자가 바라본 인간과 사회 그리고 군자의 역할
4. 공자의 선택과 오늘의 우리
본문내용
회를 덧붙여 얘기하지 않더라도 우리 주변에서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남을 속이는 자가 부자가 되고, 그럴듯한 말로 남을 현혹하는 자가 지도자가 되고, 개인의 영달을 위해 아첨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인간이 출세를 한다. 반면, 정직한 사람에게 돌아오는 것은 종종 핍박과 불이익뿐이다. 물론 세상일이 항상 이렇게 불공정한 것은 아닐지라도, 자주 등장하는 저런 불공정함은 우리가 왜 도덕적으로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 회의를 품게 한다. 권력, 부, 명성 등의 행복의 조건들이 소중함에도, 왜 우리는 이것들을 도덕적 원칙 앞에서 버려야 하는가? 불공정한 세상에 아첨하고 타협하면 넉넉하고 근심 없이 살 수도 있는데, 왜 인간은 이익 대신 의로움을 택해야 하는가? 이익을 버리고 의로움을 품으면 군자라고 하지만, 이렇게 행동하기가 쉽지도 않으며, 또 이렇게 행동해야할 분명한 근거도 없다. 과연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공자는 삶의 목적을 하늘과 닮아가는 데 두었다. 하늘을 닮아 사람을 사랑하기에 세상을 인(仁)으로 꽉 채우고 싶어 했을 것이다. 공자가 생각하는 하늘은 주재성(主宰性)이 탈색된 모습이었다. 단지, 추구해야할 목표로서의 이법성 그 자체일 뿐이다. 여기서의 하늘은 신(神)이 아니기에 인간이 반드시 그를 좇아 행동해야할 의무가 없다. 그런데도 공자는 ‘자율적으로’ 하늘을 추구했다. 공자는 인간의 비천한 일면을 버리고 하늘을 선택한 것이다.
공자처럼 도덕의 문제를 선택함에 있어서 인간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다. 그러나 인간을 어떻게 정의내리기는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실증주의를 주창하고 나온 콩뜨(A. Comte)의 영향 이래로 인류는 모든 주의주장에 대해서 증거를 요구했다. 따라서 인간조차 관찰실험검증이 가능한 물질적 존재로만 파악될 뿐이었으며, 인간이 물질로 환원되는 그 순간, 인류는 도덕성을 회복할 실마리를 놓쳐버렸다. 보이는 것만을 믿는 사조(思潮) 안에서는 오직 물질만을 믿게 된다. 정신이 발붙일 곳이 없다. 물질만 존재하는 곳에서는 ‘확인 가능한 쾌락’이 선(善)이 되고, 이것을 많이 획득하는 것이 도덕적인 행위가 된다. 물질 그 자체가 목적이 된 세상이다. 하지만 인간은 단지 물질로만 환원할 수 없는 독특한 존재이다. MRI로 정신현상을 모조리 측정할 수 없고, 과학적 심리검사로 인성을 모조리 파악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스스로를, 그리고 타인을 어떻게 규정해선 안 된다. 다만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공자는 인간을 하늘의 이법을 실현할 가능성으로 선택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거짓된 가치에 매몰되지 않을 수 있고, 타인을 사랑할 수 있게 되며, 삶의 방향을 이익 대신 옳음으로 설정할 수 있는 것이다. 삶에 대한 주체적 자각을 통해 자율적으로 귀의한 하늘, 그리고 이 하늘을 통해 바라보는 인간세, 여기에서 빚어지는 일의 성패와 불공정함은 사람을 힘들게는 할 수 있어도 참된 인간으로서의 지위를 흔들진 못 한다. 이런 사람에게는 무엇보다 참된 인생이 중요하기에 그렇게 살면 그만인 것이다.『論語』「述而」“有曰 夫子爲衛君乎 子貢曰 諾 吾將問之 入曰 伯夷叔齊何人也 曰 古之賢人也 曰 怨乎 曰 求仁而得仁 又何怨 出曰 夫子不爲也”
결국, 도덕의 문제는 논증으로 해결할 일도 아니고, 인성에 대한 사실 확인에서 가능할 것도 아니다. 비록 세상이 아름답지 않고 사람들이 천해 보인다 할지라도, 우리 모두의 마음에 선(善)이 내재돼 있다는 믿음이 도덕문제를 해결할 시작인 것이다. 이런 믿음을 근간으로 보다 높은 곳을 지향하되, 같은 뜻을 지닌 사람들이 생겨나면 즐거운 일이고『論語』「學而」“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
, 그렇지 못해 혼자서라도 그 길을 간다고 해도 상관없다.『論語』「學而」"人不知而不 不亦君子乎“
내 안에 잠재돼 있는 이기심으로부터 해방되어 올바로 살 수 있는 자유를 스스로 획득했으니.『論語』「顔淵」“顔淵問仁 子曰 克己復禮爲仁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焉 爲仁由己 而由人乎 顔淵曰 請問其目 子曰 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 顔淵曰 會雖不敏 請事斯語矣”
이런 사람은 세상의 유혹에 현혹되지 않고, 이익을 못 챙길까 걱정하지 않으며, 자기 뜻을 위해 투쟁해 나갈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論語』「子罕」“知者不惑 仁者不憂 勇者不懼”
오직 진리를 깨우치지 못할까봐 두려워하며, 의로운 사람이 되지 못할까봐 두려워하기에,『論語』「季氏」“君子有三畏 畏天命 畏大人 畏聖人之言 小人 不知天命而不畏也 狎大人 侮聖人之言”
천하의 넓은 곳에서, 천하의 바른 위치에 서서, 천하의 바른 길을 가되, 뜻을 얻으면 사람들과 함께 하고, 얻지 못하면 혼자서라도 갈 수 있다. 부귀도 이런 사람을 음란하게 하지 못 하고, 빈천도 그의 뜻을 옮기지 못 하며, 어떠한 위무로도 굴복할 수 없으니『孟子』「文公」下 “景春曰 公孫衍張儀豈不誠大丈夫哉 一怒而諸侯懼 安居而天下熄 孟子曰 是焉得爲大丈夫乎 子未學禮乎 丈夫之冠也 父命之 女子之嫁也 母命之 往送之門 戒之曰 往之女家 必敬必戒 無違夫子 以順爲正者 妾婦之道也 居天下之廣居 立天下之正位 行天下之大道 得志與民由之 不得志獨行其道 富貴不能淫 貧賤不能移 威武不能屈 此之謂大丈夫”
, 진정으로 자유롭고 즐거운 인생이다.
도덕이란, 이것이 옳기에 반드시 이것을 확고부동하게 잡고 있는 원칙도 아니며, 도덕적으로 행위 해야 하는 것이 의무이기에 그렇게 하는 것도 아닌 것이다. 도덕적으로 산다는 것은 스스로 자유롭게 해방되며, 스스로를 즐거움에 정주시키는 삶이다.『論語』「雍也」“賢哉 回也 一簞食 一瓢飮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 不改其樂 賢哉 回也”
「述而」“飯疏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 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
한 사람의 내면에서 의로움이 즐거움(樂)을 훼손하지 않으며, 즐거움이 곧 의로움이 되어 조화(和)를 이루니, 이것이 바로 참된 인간이다.
<참고문헌>
『論語』
『孟子』
『中庸』
『韓非子』
『莊子』
『史記』
『明心寶鑑』
풍우란,『중국철학사』上
김낙진,『조선유학의 개념들』, 예문서원, 2002
김명하, 「中國先秦政治思想에서의 天의 성격, 한국정치학회보 제30집 1호,
김태길, 『倫理學』, 박영사, 1964
백종현, 『서양근대철학』, 철학과 현실, 2001
공자는 삶의 목적을 하늘과 닮아가는 데 두었다. 하늘을 닮아 사람을 사랑하기에 세상을 인(仁)으로 꽉 채우고 싶어 했을 것이다. 공자가 생각하는 하늘은 주재성(主宰性)이 탈색된 모습이었다. 단지, 추구해야할 목표로서의 이법성 그 자체일 뿐이다. 여기서의 하늘은 신(神)이 아니기에 인간이 반드시 그를 좇아 행동해야할 의무가 없다. 그런데도 공자는 ‘자율적으로’ 하늘을 추구했다. 공자는 인간의 비천한 일면을 버리고 하늘을 선택한 것이다.
공자처럼 도덕의 문제를 선택함에 있어서 인간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다. 그러나 인간을 어떻게 정의내리기는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실증주의를 주창하고 나온 콩뜨(A. Comte)의 영향 이래로 인류는 모든 주의주장에 대해서 증거를 요구했다. 따라서 인간조차 관찰실험검증이 가능한 물질적 존재로만 파악될 뿐이었으며, 인간이 물질로 환원되는 그 순간, 인류는 도덕성을 회복할 실마리를 놓쳐버렸다. 보이는 것만을 믿는 사조(思潮) 안에서는 오직 물질만을 믿게 된다. 정신이 발붙일 곳이 없다. 물질만 존재하는 곳에서는 ‘확인 가능한 쾌락’이 선(善)이 되고, 이것을 많이 획득하는 것이 도덕적인 행위가 된다. 물질 그 자체가 목적이 된 세상이다. 하지만 인간은 단지 물질로만 환원할 수 없는 독특한 존재이다. MRI로 정신현상을 모조리 측정할 수 없고, 과학적 심리검사로 인성을 모조리 파악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스스로를, 그리고 타인을 어떻게 규정해선 안 된다. 다만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공자는 인간을 하늘의 이법을 실현할 가능성으로 선택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거짓된 가치에 매몰되지 않을 수 있고, 타인을 사랑할 수 있게 되며, 삶의 방향을 이익 대신 옳음으로 설정할 수 있는 것이다. 삶에 대한 주체적 자각을 통해 자율적으로 귀의한 하늘, 그리고 이 하늘을 통해 바라보는 인간세, 여기에서 빚어지는 일의 성패와 불공정함은 사람을 힘들게는 할 수 있어도 참된 인간으로서의 지위를 흔들진 못 한다. 이런 사람에게는 무엇보다 참된 인생이 중요하기에 그렇게 살면 그만인 것이다.『論語』「述而」“有曰 夫子爲衛君乎 子貢曰 諾 吾將問之 入曰 伯夷叔齊何人也 曰 古之賢人也 曰 怨乎 曰 求仁而得仁 又何怨 出曰 夫子不爲也”
결국, 도덕의 문제는 논증으로 해결할 일도 아니고, 인성에 대한 사실 확인에서 가능할 것도 아니다. 비록 세상이 아름답지 않고 사람들이 천해 보인다 할지라도, 우리 모두의 마음에 선(善)이 내재돼 있다는 믿음이 도덕문제를 해결할 시작인 것이다. 이런 믿음을 근간으로 보다 높은 곳을 지향하되, 같은 뜻을 지닌 사람들이 생겨나면 즐거운 일이고『論語』「學而」“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
, 그렇지 못해 혼자서라도 그 길을 간다고 해도 상관없다.『論語』「學而」"人不知而不 不亦君子乎“
내 안에 잠재돼 있는 이기심으로부터 해방되어 올바로 살 수 있는 자유를 스스로 획득했으니.『論語』「顔淵」“顔淵問仁 子曰 克己復禮爲仁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焉 爲仁由己 而由人乎 顔淵曰 請問其目 子曰 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 顔淵曰 會雖不敏 請事斯語矣”
이런 사람은 세상의 유혹에 현혹되지 않고, 이익을 못 챙길까 걱정하지 않으며, 자기 뜻을 위해 투쟁해 나갈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論語』「子罕」“知者不惑 仁者不憂 勇者不懼”
오직 진리를 깨우치지 못할까봐 두려워하며, 의로운 사람이 되지 못할까봐 두려워하기에,『論語』「季氏」“君子有三畏 畏天命 畏大人 畏聖人之言 小人 不知天命而不畏也 狎大人 侮聖人之言”
천하의 넓은 곳에서, 천하의 바른 위치에 서서, 천하의 바른 길을 가되, 뜻을 얻으면 사람들과 함께 하고, 얻지 못하면 혼자서라도 갈 수 있다. 부귀도 이런 사람을 음란하게 하지 못 하고, 빈천도 그의 뜻을 옮기지 못 하며, 어떠한 위무로도 굴복할 수 없으니『孟子』「文公」下 “景春曰 公孫衍張儀豈不誠大丈夫哉 一怒而諸侯懼 安居而天下熄 孟子曰 是焉得爲大丈夫乎 子未學禮乎 丈夫之冠也 父命之 女子之嫁也 母命之 往送之門 戒之曰 往之女家 必敬必戒 無違夫子 以順爲正者 妾婦之道也 居天下之廣居 立天下之正位 行天下之大道 得志與民由之 不得志獨行其道 富貴不能淫 貧賤不能移 威武不能屈 此之謂大丈夫”
, 진정으로 자유롭고 즐거운 인생이다.
도덕이란, 이것이 옳기에 반드시 이것을 확고부동하게 잡고 있는 원칙도 아니며, 도덕적으로 행위 해야 하는 것이 의무이기에 그렇게 하는 것도 아닌 것이다. 도덕적으로 산다는 것은 스스로 자유롭게 해방되며, 스스로를 즐거움에 정주시키는 삶이다.『論語』「雍也」“賢哉 回也 一簞食 一瓢飮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 不改其樂 賢哉 回也”
「述而」“飯疏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 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
한 사람의 내면에서 의로움이 즐거움(樂)을 훼손하지 않으며, 즐거움이 곧 의로움이 되어 조화(和)를 이루니, 이것이 바로 참된 인간이다.
<참고문헌>
『論語』
『孟子』
『中庸』
『韓非子』
『莊子』
『史記』
『明心寶鑑』
풍우란,『중국철학사』上
김낙진,『조선유학의 개념들』, 예문서원, 2002
김명하, 「中國先秦政治思想에서의 天의 성격, 한국정치학회보 제30집 1호,
김태길, 『倫理學』, 박영사, 1964
백종현, 『서양근대철학』, 철학과 현실,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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