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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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경복궁 자료집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서∙울

과거지도를 보며 서울 600년 역사 속으로; 수선전도

1. 산-외산과 내산

집중탐구 - 남산

봉수대 이야기

2. 강-청계천과 한강

집중탐구 - 한강

3. 도성과 문

집중탐구 - 남대문 (국보 제1호)

4. 5대 궁궐

집중탐구 - 경복궁

광화문과 영제교

근정전

사정전(思政殿)

강녕전(康寧殿)

교태전(交泰殿)

아름다운 아미산 굴뚝

경회루 (慶會樓국보 224호)

자경전(慈慶殿)

동궁전(東宮殿)

향원정

건천궁터

본문내용

. 사정전은 왕의 공식 집무실. 최고통치자로서의 공식적인 일은 원칙적으로 이곳에서 처리하였다. 한양으로 돌아온 지방관을 맞아 그 지방의 소식도 듣고, 멀리 파견되는 지방관과 장수들을 격려하고 친히 당부하는 곳이기도 하다.
강녕전
건강과 안녕을 기원합니다
오복(五福) 중에 세 번째가 바로 강녕이다. 강녕을 택한 것은 임금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입니다. 인군(仁君)은 마음을 바르게 하고 덕을 닦아 왕위를 세워야 능히 5복을 누린다 하였습니다. 강녕은 오복 중 으뜸 가는 것이기도 하지만, 가운데 것을 들어 나머지를 모두 아우르기 위함이기도 한 것입니다.
Q. 휴~ 임금님도 쉬고 싶다!
A. 왕이라고 해서 늘 곤룡포, 면류관과 같은 화려하고 거추장스러운 복장을 하고 살았던 것은 아니다. 늘 일만 할 수 도 없다. 평복으로 일상생활을 하기도 하고 쉬기도 하고, 신료들과 편안하게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였다. 바로 그 장소가 강녕전 인 것이다.
교태전
경복궁의 중심축에 일직선으로 배열되어 있는 건물들 가운데 마지막이 교태전입니다. 강녕전의 뒤로 가면 양의문이 나오는데 교태전은 그 문 안에 있답니다. 강녕전이 왕의 침실이라면, 교태전은 왕비의 침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왕비는 궁궐 안에 살면 내명부를 비롯한 여러 층의 여인들의 일을을 처리하는 일 등 업무가 적지 않았어요. 그래서 교태전은 왕비의 정치공간 이기도 하답니다.
교태전은 용마루가 없다. 강녕전에도 용마루가 없고 창덕궁의 대조전, 창경궁의 통명전에도 용마루가 없다. 왜 일까?
보물 881호
드라마 속에서 보는 궁궐의 여인들은 늘 화려하지요? 하지만 실제로 궁궐의 여인들은 평생 좀처럼 바깥출입을 할 수 없고, 지켜야 할 것도 참 많았습니다. 특히 왕비라면 더욱 그러했겠지요. 궁궐에서 왕비가 마음 편하게 쉴 수 있는 곳은 아마 교태전의 후원뿐이었을 겁니다.
아미산은 교태전의 후원이다. 경회루 연못을 파낸 흙으로 쌓았다는 인공산으로 조그만 둔덕을 이룬다. 계단식으로 꾸며낸 이곳을 일명 아미산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미산은 신선들이 사는 산을 말한답니다. 아름다운 하늘을 담은 작은 연못도 찾아보고, 예쁜 굴뚝도 살펴보세요
아미산을 왜 만들었을까?
우리 조상들은 산에도 사람처럼 하나의 기운이 흐른다고 생각했어요. 백두대간의 흐름이 교태전 뒤에서 약해지는데, 아미산을 만들어 그 정기를 돋아 줄 수 있다고 생각했지요
경회루
경사(매우 즐겁고 기쁜 일)가 모이기를 바랍니다
경회는 경사가 모이기만을 바라는 뜻이 아니라. 올바른 사람을 얻어야만 경회라고 할 수 있다는 뜻에서 왕과 신하가 덕으로써 서로 만난 것을 말한답니다.
경회루는 국가 중요 연회나 외국사신을 접대하는 곳이랍니다. 창건은 태조때 있었는데 규모는 작았고, 1412년 그 건물이 기울자 이를 수리하면서 위치를 서쪽으로 옮기고, 원래보다 크기도 크게 하였으며 땅이 습한 것을 염려하여 둘레에 못을 박았답니다.
새 건물이 완공 될 때 태종은 많은 이들을 불러 기뻐하며 경회루라는 이름을 지었고, 편액은 세자인 양령대군에게 쓰도록 하였답니다.
경회루는 임진왜란에 불탔는데, 오늘날 경회루는 1867년 고종 때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다시 지은 것이랍니다.
자경전
‘자경’은 정조 임금이 즉위하면서 그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위해 창경궁에 커다랗게 집을 짓고 자경당이라 이름을 붙인 데서 비롯되었다고 해요.
‘자경’이란 자친 곧 왕이 어머니나 할머니 등 왕실의 웃어른이 되는 여성에게 ‘경사가 임하기를 바란다’는 뜻을 가지고 있어요. 지금의 자경전은 화재로 여러 번 소실 된 후에 고쳐지어서 만들어진 모습이랍니다.
무늬는 만(卍)자나 격자 도는 육각형의 벌집 모양(귀갑문) 등이 있고 그 사이사이에 작은 꽃을 넣기도 해요!
아니 굴뚝이 이렇게 아름다워도 되는 겁니까?
- 숨은 그림 찾기 “십장생 굴뚝에는 십장생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굴뚝그림 속에서 아래 보기에 있는 것을 찾아 연결해 보세요”
가운데 부분을
확대 편집 해 보았습니다.
●바위 ●구름 ●소나무 ●대나무 ●불로초
●연꽃 ●포도 ●국화 ●사슴 ●학 ●거북
동궁

세자를 동궁(東宮)이라 하였습니다.
세자는 흔히 봄에 비유되었는데, 가을에 풍성한 결실을 거두기 위해서는 봄부터 결실을 준비하고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랍니다.
오행(五行)에 따르면 봄은 동쪽을 뜻하고요, 이 때문에 왕이 거처하는 곳 동쪽에 세자궁을 만들었습니다. 세자궁을 동궁 또는 춘궁(春宮)이라고 한 것도, 세 책봉을 봄에 한 것도 이 때문이지요.
향원지와 향원정
아름다운 향기가 멀리 멀리 퍼져나가는 곳
향원정은 내전 뒤편에 있는 후원으로서 경치가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할 수 있지요. 향원정은 장엄한 경회루와 달리 대체로 아늑하고 아담한 분위기가 묻어난답니다. 향원정은 정자 위에 올라 주변 경치를 즐기면서 쉬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랍니다.
내 이름은?
연못의 물은 북쪽 언덕 밑에서 솟아나는 샘,
_______________(洌上眞源: 차고 맑은 물의 근원이란 뜻) 흘러나온 물은 곧바로 연못으로 흘러가지 않고 원형의 오목한 작은 웅덩이에 모여져 있다가 방향을 바꿔 판석 밑으로 해서 연못에 흘러든다
취향교가 이어지는 북쪽에는 건청궁이 있었어요. 경복궁의 대부분 건물이 흥선대원군 때 재건되지만, 건청궁은 고종이 직접 명하여 지은 건물이랍니다. 독자적으로 새로운 정치를 펼치고 싶었던 고종의 뜻이 담긴 곳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바로 이곳에서 일어나게 되고, 일제는 박람회를 핑계로 1929년 이 일대의 건물을 헐어 없앴답니다.
Q. 명성황후를 살해한 일본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A. 사건 진상이 알려지자 일제는 국내외로부터 빗발치는 비판과 항의를 받았다. 어쩔 수 없이 일제는 국제 여론을 피하고자 미우라 공사 등 50여 명을 히로시마 감옥에 수감하였다. 하지만, 이듬해 1월 20일 일본 정부는 춘생문 사건을 빌미로'증거 불충문'이라는 이유로 이들을 모두 석방하였다. 감옥에 있는 동안에도 이들은 영웅으로 대접을 받았고, 왕비를 내려쳤던 칼은 아직도 후손들이 가보로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이야기가 있는 경복궁 나들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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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04.10
  • 저작시기2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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