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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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들어가는 말

Ⅱ. 자유연상기법

1 . 형성배경

2 . 정의

3 . 기법

4. 사례를 통한 자유연상기법

Ⅲ. 전이

1 . 전이의 이해

3 . 전이의 실례

4 . 전이를 정신 분석으로 이끄는 길

Ⅳ. 역전이

1 . 개념의 변화

2. 전체적 접근

3. 절충적 접근

4. 정의

5. 전이와 역전이 간의 연관성

6 . 역전이 문제의 해결

7. 사례를 통한 역전이 이해

V. 나가는 말

참고문헌

**참고**

본문내용

내고 이것을 분석하여 환자의 관계 패턴의 결함을 수정하게 되었는데 이것을 전이(transference) 분석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또한 치료 과정에서 환자가 말을 할 때 기억하기 싫어하거나 자신도 모르게 말을 실수하거나 더듬는 것에서 말의 실수를 상처의 실마리를 찾는데 사용하게 되었다.
정신분석의 탄생 이후
1895년 프로이드가 정신분석학을 탄생시켰을 때 프로이드는 히스테리아의 원인을 근친상간, 성폭행, 성적 학대로 보았다. 히스테리아 환자의 최면 치료에서 어린 시절의 섹스로 인한 직접적 상처가 히스테리아의 원인이라고 확신했다. 이것을 프로이드는 어른들의 유혹에 어린이들이 희생되었기 때문으로 보았다. 그래서 유혹이론으로 불렀다. 그러나 2년 후인 1897년에 프로이드는 이 유혹이론을 포기하고 직접 상처가 일어난 것이 아니고 어린이들의 상상에 의한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상상 이론으로 대체된 것이다. 프로이드는 유혹 이론이 가져올 엄청난 파장을 염려했기 때문이라고 학자들은 보고 있다(Herman, 1999). 환자들이 치료 과정에서 이야기하는 상처가 실제로 일어난 것인지 아니면 환자들의 상상력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인지를 증명할 길이 없었고 또 실제로 섹스 폭력이 일어났다고 한다면 어른들은 파렴치한이 된다는 것이었다. 환자들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성폭력, 성적 학대가 많았지만 이 상처 경험이 실제로 일어났다고 인정하게 되면 그 당시에 비엔나의 브르죠아들은 변태성욕자로 비난을 받게 되는 것이고 그것으로 인해서 발생할 사회적 파장을 막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프로이드는 섹스 폭력이 실제로 일어난 것이 아니고 환자의 상상력에 의한 창조물이라고 보고 이 상상력에 대한 심리적 연구로 나타난 것이 오디프스 콤프렉스 이론이 된 것이다. 성폭력은 실제로 일어난 것이 아닌 상상력의 산물이라는 쪽으로 연구가 진행되었고 프로이드의 제자들은 스승의 이론을 따랐다. 따라서 성폭력의 실제 상처 경험에 대한 연구는 실제로 성폭력 사건이 없었던 것이 아니고 무시되었다. 그러나 프로이드의 몇몇 제자들이 실제 상처 경험에 대한 연구를 계속했고 상처 경험에 대한 이론은 계속되어졌다. 대표적인 학자가 샌도르 프렌치(Sandor Frenczi), 아브라함 카디너(Abraham Kardiner), 그리고 파울 페드론(Paul Federn) 이었다. 산도르 프렌치는 1927년 세계 정신분석 학회 총회에서 어른들의 섹스 즐거움의 대상으로 어린이들이 희생되고 있음을 강조 했다. 성적 상처를 받은 어린이들은 이후에 성인이 되어서 계속된 상처의 피해자가 되고 학대자를 동일시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산도르 프렌치는 프로이드의 유혹 이론을 계속해서 연구 발전 시킨 사람이다. 세계 1차 대전과 2차 대전은 전쟁에 참가한 군인들이 귀향하면서 포탄 신경증(shell shock) 혹은 전쟁 신경증(war neurosis) 증세를 보이면서 학자들의 관심이 쏠리게 되었습니다. 미국 태생으로 프로이드에게 정신분석학을 공부한 아브라함 카디너는 군 정신과 의사로써 군에서 예편되면서 정신분석학과 전쟁 신경증을 접목시킨 사람이다. 그는 1943년에 "전쟁 상처 신경증"(The traumatic neurosis of war)라는 책을 출판 했다. 카디너(Kardiner)는 상처 신경증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은 예민한 경계심을 개발하여 환경의 위협에 예민하다고 기술했다. 이러한 병적인 상처 증후군은 세상에 대처하는 자아의 개념을 바꾸어버린다고 했다. 그 상처에 고착이 되어서 특히한 악몽을 꾸게 되며 만성적인 짜증, 놀람 반응행동, 폭발적인 공격 반응행동을 보이게 된다고 기술했다. 상처에 대한 공포의 정교함은 마치 이 환자가 정기적으로 신경증으로 고통 받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는 것이다. 유기체의 안정을 위해서 자아(ego)가 특수한 일에 희생되었다고 보았다. 환자는 상처에 매달려서 끝없이 상처를 반복하는 시지프스의 신화(Sisyphus dream)를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강박적 반복은 환자를 실망 시키고 감정 철회가 되고 애착에서 멀어져서 상처 받기 이전의 기능을 잘했다고 해도 대인관계가 손상을 입는다고 기술하고 있다. 카디너(Kardiner)의 핵심은 프로이드처럼 환자는 마치 오리지날 상처 상황이 지금 현재에 존재하는 것처럼 행동한다고 보았다. 오리지날 때 실패한 대응 기재에 그대로 매달려 있다고 보았다. 그 후 전쟁 상처 신경증은 베트남 전쟁을 거치면서 더욱 학자들의 연구가 집중 되었고 전쟁 상처 신경증은 결국 여성들이 히스테리아와 유사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미국의 여성운동가들 즉 페미니스트들에 의해서 가족 폭력, 아동 학대, 매맞는 여성들에 대한 연구가 집중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하면서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갇혀 있던 각종 섹스 학대, 감정적 학대, 신체적 학대 등이 표면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드디어 샤르코와 프로이드에 의해서 히스테리아의 핵심이었던 섹스 학대, 섹스 폭력, 근친상간 등이 100이 지난 후에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 그 기간 동안에 상처의 경험들이 묵인되고 참아왔던 것이 더 이상 억눌려 있기를 거부하여 터져 나오게 된 것이다. 마침내 1980년 DSM의 3차 개정 때 "강간 상처 증후군" "매맞는 여성 증후군" "베트남 참전 용사 증후군" "학대받은 어린이 증후군" 등이 새로운 이름으로 공식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 상처 후 스트레스 장애 혹은 후기 외상 스트레스 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라는 이름으로 통합을 하게 된 것이다. 1980년 이후에 인간의 상처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등장한 전문 연구 논문지로는 상처 후 스트레스 장애 저널(Journal of Traumatic Stress), 해리 장애(Dissociation) 장애, 어린이 학대와 방기(Chind Abuse and Neglect), 발달적 정신병리(Developmental Psychopathology) 등이 있다. 이러한 연구는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어 갔다. 미국에서는 국립정신건강 연구소 부설로 "폭력과 상처 스트레스 연구소가 설립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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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05.08
  • 저작시기2005.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608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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