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미소 서산 역사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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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백제의 미소 서산 역사기행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우리가 가는 곳
백제
서산
서산마애삼존불
보원사터
개심사
해미읍성
체험보고서
체험일기장
메모장

본문내용

롱나무(for. alba)라 고 하며 인천에서 자란다.
배롱나무는 추위에 약하다. 따라서 정원수로 키울 때는 방한에 특히 신경을 써야 한다. 겨울에는 짚으로 싸주거나, 널빤지로 바람막이를 세워주는 것이 좋다. 또 강한 바람에 쓰러지지 않도록 받침대를 세워주거나 가지가 너무 옆으로 뻗지 않도록 잘라주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와 함께 매년 좋은 꽃을 보려면 꽃이 진 뒤 꽃꼬투리를 따주어야 한다. 꽃꼬투리를 따주지 않으면 10월께 열매가 맺혀 양분을 빼앗아가기 때문에 이듬해 꽃을 피우지 못한다. 또 가을에 꽃이 피었던 가는 가지를 아래쪽 10~15cm 가량 남기고 잘라주어야 한다. 그래야 이듬해 그곳에서 새 가지가 나와 꽃을 피운다.
해미읍성
내포지방을 지키는 중요한 읍성
해미면에 들어서면 옛 정취가 물씬 풍기는 아름다운 성을 하나 볼 수 있다. 제 모습을 거의 그대로 지닌 이 성은 해미면의 한가운데에 넓게 위치하고 있어 해미읍성이 해미면의 전부인 듯한 인상을 준다.
해미(海美)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정해현(貞海縣)과 여미현(餘美縣) 두 현을 조선 태종 7년(1406)에 병합하면서 두 현에서 한 자씩 따서 지은 이름이라 한다. 태종 14년(1414)에 충청도 병마절도사의 병영이 덕산에서 이곳으로 옮겨져, 효종 2년(1651)에 청주로 옮겨가기까지 서해안 방어의 군사요충지였다.
읍성이 군사요새로 다듬어지기 시작한 것은 세종 11년 부터였는데 성종 22년 (1491)에 성벽이 완성되었으니, 해미읍성은 농한기를 이용하여 오랜 세월을 두고 쌓여진 것임을 알 수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읍성은 조선 후기에 개축과 보수를 거친 것이다.
성에는 동남서문이 있었고 북문은 없었다. 그 중 동문과 서문은 1974년에 복원한 것이고 남문인 진남루(사진)는 잘 보전되어 있다. 홍예를 올려 문을 삼고 그 위에 3칸 2층 누각을 세웠다. 진남루에서 서쪽으로 항아리처럼 배를 불쑥 내밀고 있는 곳이 옹성이다. 옹성은 성문이 드러나지 않도록 문 바깥쪽에 성곽을 둥글게 한 번 더 둘러쳐 방비에 유리하도록 한 것이다. 해미읍성은 평야지역에 있어서 진남루에만 올라도 주위의 모습이 다 들어온다. 진남루 앞쪽으로 돌아 나와 살펴보면 석수장이였을 사람의 이름자가 새겨져 있다.
읍성의 대부분이 그렇듯이 해미읍성 안에는 원래 고을 행정을 담당한 많은 관아 건물이 있었다. 또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면사무소, 우체국 같은 행정기관과 민가, 학교도 있었으나 해방 후 사적으로 지정되면서 다 철거되어 지금은 관아 자리의 관리인 살림집 뿐이다. 성내 북쪽의 주산 숲 속 장군당이 있었다는 곳에는 일제 때 일본인들이 민간 신앙지를 없애려고 신사를 세웠었는데, 이것을 다시 헐고 정자를 세워 해미 인근을 조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정자를 콘크리트로 만들어 목조건축물의 정겨움을 찾을 수 없는 아쉬움이 있다.
진남루 아래 문을 통해서 따라 들어가면 관아자리에 동헌과 객사를 복원해 놓았다. 들어가는 길 양쪽으로 탱자나무가 빽빽하게 울을 이루고 있으니 가을이면 노란 탱자 열매가 탐스럽게 달린다. 탱자울 너머에 키 큰 나무가 한 그루 솟아 있는데, 수령 200년이 넘은 보호수로 ‘호야나무’이다.(사진) 이곳은 본디 해미영의 감옥자리였다.
해미읍성을 찾는 사람에게 읍성은 단지 아름다운 곳이기만 한 곳은 아니다. 1866년 병인양요에 이어진 천주교도 박해 때에 이 지역 천주교인들이 토포사(討捕使)가 있었던 이곳 해미영에 끌려와서 감옥에 갇히고 더러는 호야나무에 묶여 고문을 당하고 목매달려 죽기도 했으니 김대건 신부도 이 나무에서 순교했다고 전한다. 이에 해미읍성은 천주교인들에게는 순교의 성지이기도 하다. 읍성은 사적 제 116호로 지정되어 있다.
해미읍성 근처 마을에는 동서남북으로 미륵불이 모셔져 있는데 평지에 쌓인 해미읍성의 허(虛)함을 막고 마을을 보호하는 뜻에서 세워진 비보장승으로 모신 것이다.
[찾아보세요] 이 읍성을 지을 때 각 구간을 분담하여 짓게 하였습니다. 지역과 석수장이 이름이 써진 '공사실명제'의 흔적을 찾아보세요!
[문제] 우리나라에는 과거에 많은 읍성들이 있었습니다. 현재 남아있는 대표적인 읍성을 세 곳만 쓰세요!
[문제] 읍성과 산성의 차이점은?
현장체험보고서
학년 반 이름
견 학 목 적
견 학 한 곳
견 학 일 시
200 년 월 일 ( 요일)
교 통 수 단
도보 승용차 버스 기차 선박 비행기
도와주신 분
함께간 친구
견학한 내용
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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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은것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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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져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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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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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학을 통해 알게된 점과 조사한 내용
본것
※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그려보세요.
체험
일기장
※ 오늘 체험한 내용을 일기장에 써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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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정을 정리하면서 나만의 체험일기를 써보세요!
학 교
학년/반
이 름
  • 가격3,000
  • 페이지수31페이지
  • 등록일2010.06.09
  • 저작시기2010.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617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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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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