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전문학] 중세후기문학의 형성- 고려후기문학 사례와 경향 분석 및 한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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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고전문학] 중세후기문학의 형성- 고려후기문학 사례와 경향 분석 및 한계점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무신란· 몽고란과 문학
2. 불교문학의 새로운 경지
3. 사람의 일생 서술 방법
4. 문학의 본질과 기능에 관한 논란
5. 민족사 재인식의 시대

본문내용

.
“제왕이 장차 일어날 때에는 부명과 도룩을 받게 되므로 반드시 남들과 다른 일이 있었다. 그래야만 능히 큰 변화를 타서 제왕의 지위를 얻고 큰일을 이룰 수 있었다. ·····삼국의 시조가 모두 신비스럽게 탄생했다는 것이 어째서 괴이하랴.”
서두에서 이렇게 말하면서, 중국 고대의 창업주들이 부명이니 도록이니 하는 것들을 얻은 것이 당연하다고 하면서 다채로운 내용을 갖추고 있는 우리 건국신화는 배격할 수 있는가 하고 나무랐다고 한다. 삼국사기에서 표명한 역사관에 대한 비판으로써, 이규보가 동명왕편을 쓸 때 가졌던 것과 비슷한 생각이라고 한다. 삼국사기를 넘어서는 작업을 이규보가 한 것보다 더욱 폭넓게 전개해 역사 전체를 새롭게 이해하고자 하였다 한다.
또한 삼국사기가 불교를 다루지 않은 것에 커다란 불만을 가져, 민족문화의 가장 자랑스러운 맥락은 고대의 신화에서 불교로 이어졌는데 그 둘을 다 버리면 무엇이 남겠는가 하고 나무하는 자세로 새로운 작업을 했다고 한다. 이러한 불교가 시대변화에서 중요한 구실을 하면서 문화의 전반적인 양상과 깊은 관련을 가진 것을 밝히기 위해 고승전이 역사의 맥락 속에 들어가도록 하였다고 한다. 불교가 그 자체의 격식과 폐쇄성을 넘어서서 민중생활과 밀착되어 생동하는 구실을 해온 것을 납득할 수 있게 하려고 불교설화를 적극 활용 하였다고 한다. 또한 설화에 대한 관심은 역사 이해를 위해 긴요한 구실을 하고 사상에 관한 논란을 벌이는 데 깊이 관여하는 것들을 찾았다고 한다.
삼국유사는 중세보편주의를 독자적으로 구현하는 중세후기의 과업을 다각도로 수행해서 탁월한 성과를 이룩했다고 한다. 고대의 자기중심주의를 재평가하고 그 유산이 민족문화로 계승되고 있는 실상을 광범위하게 보여주어 설득력을 확보했는데, 한문 문장의 규범을 따르지 않는 다양한 문체를 갖추어, 서로 다른 문화형태가 각기 그것대로 지닌 특성이 손상되지 않게 했으며, 우리말의 어순과 어휘를 받아들이기도 했다고 한다. 그 때문에 한문학의 수준을 저하시켰다는 당대의 비판을 받기도 하고, 민족 주체성을 찾았다는 오늘날의 평가를 얻기도 한다고 한다.
제왕운기(帝王韻紀)
역사를 읊은 시를 영사시(詠史詩)라고 하는데, 서사시와 구별이 된다고 한다. 어느 특정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아 일관된 사건을 전개하지 않고, 역대의 사실을 간추려서 인상 깊게 전달하는 것을 과제로 삼았다고 한다. 고려후기에 이러한 영사시가 많이 나타나 역사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고려후기 영사시의 첫 예는 오세문의 ‘역대가(歷代歌)’인데, 작품이 지금 전하지는 않아서 내용을 알 수는 없지만, 삼국유사에서 언급한 것을 보면 중국 역사를 시초에서부터 다룬 것은 확실하고 우리나라 역사를 포함시켰던가는 의문이라고 한다. 그 뒤에 이규보는 동명왕편을 내놓는 한편 중국 역사에서 소재를 택한 ‘개원천보영사시(開元天寶詠史詩)’같은 것도 지어서 관심을 넓혔다고 한다.
이승휴(李承休, 1224 ~ 1300)의 제왕운기는 그런 흐름을 이어 나타난 영사시의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한다.1287년(충렬왕 13)에 작품을 완성하고 서두에다 임금에게 올리는 글을 싣고서, 중국의 경우에는 금나라 때까지, 동국의 경우에는 고려 때까지의 사적을 여러 문헌에서 찾아 같고 상이한 점을 비교하고 요긴한 점을 간추려 역사가 이어진 과정을 쉽사리 참고할 수 있게 한다고 했다. 상권 서문에서는, 역대 제왕이 흥하고 망한 자취를 세상을 다스리는 군자는 알아야 한다고 하였다. 상권에서는 중국 역사를, 하권에서는 동국역사를 취급했는데 상권의 중국 역사는 알려 있는 사실을 정리해 참고자료를 제공하고자 했다고 할 수 있으나, 동국군왕개국연대(東國君王開國年代)라고 한 하권에서는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기 위해서 애쓰면서 역사 이해의 관점을 다시 정립하려고 고심했다고 한다. 허튼 수작은 버리고 이치에 맞는 것을 취한다고 하면서, 동국 역사가 오랜 연원을 지니고 자랑스럽게 전개된 것을 널리 알리려고 하였다고 한다.
작품 안에 동명왕편을 직접 언급한 대목도 있는데, 이규보가 선행작업을 새로운 관점에서 다시 해서 민족사의 연원과 주체성을 찾으려고, 역사를 시초부터 다루는 장편 영사시를 지었다고 한다. 6년쯤 먼저 이루어진 삼국유사에서와 같이, 단군의 사적을 서두에다 내세웠다고 한다.
요하동쪽에는 한 건곤이 따로 있으니
뚜렷하게 중국과 갈라지고 구분 된다.
큰 파도 넘실넘실 삼면을 둘러싸고
북쪽에는 육지가 실같이 이어져 있다.
그 가운데 지방이 천리, 여기가 조선이니
강산 좋은 형세 그 이름이 천하에 퍼졌다
밭 갈고 우물 파는 예의의 나라,
화인이 이름 해서 소중화라 일렀도다.
처음에 누가 개국해서 풍운을 열었던고
석제의 손자 그 이름이 단군이라.
우리 역사를 노래한 하권은 이렇게 시작이 되는데, 삼국유사는 단군의 사적을 자료에 나타나 있는 그대로 옮기면서 자기 말은 주에다 적었을 따름인데, 여기서는 작자의 생각을 바로 나타냈다고 한다. 중국과는 별개의 건곤에서 우리 역사가 면면하게 이어져와 자랑스럽다는 것을 중국인들도 인정한다 해서, 원나라에 복속되어 위축된 시대에 민족의식을 고취하려고 하였다고 한다.
역사에 대한 관심은 제왕운기가 이루어진 다음에도 계속 고조되었는데, 원나라가 고려의 주권을 위협하는 책동에 맞서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국의 역사가 잘 정비되어 있어야 했다. 그렇지 못하다고 걱정하는 데 앞장선 이제현은 자기 시대의 문제의식과 깊이 연결되면서 체제와 서술을 제대로 갖춘 역사서를 이룩하고자 했다고 한다. 이에 이제현은 벼슬에서 물러난 다음에 겨를을 얻어 백문보(白文寶), 이달충(李達衷) 등과 함께 기년전지(祈年傳志)라는 고려 역사서 편찬에 착수를 하였으나, 완성을 보지는 못했다고 한다.
또한 이제현 외에도 이곡(李穀), 이색(李穡) 등도 역사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형태의 영사시를 지어, 민족사의 정통성을 찾고 자주성에 대한 자부심을 나타내려고 했다고 한다.
중세후기문학의 형성
목 차
1. 무신란· 몽고란과 문학
2. 불교문학의 새로운 경지
3. 사람의 일생 서술 방법
4. 문학의 본질과 기능에 관한 논란
5. 민족사 재인식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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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35페이지
  • 등록일2010.07.15
  • 저작시기2010.7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623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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