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과 이단 라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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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결과 부흥을 위해 교역자들의 배출을 추구했던 테넌트를 중심으로 ‘신파’와 그렇지 말고 신중하게 하자는 ‘구파’간의 분쟁이 있었습니다. 가시적 부흥을 정통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내적 부흥을 정통신앙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도 인정한다. 그래서 가시적 부흥을 가지고 정통신앙의 판단 기준을 삼지 말아야 하며 다른 정통신앙의 판단 기준을 가져야 한다. 부흥주의는 경건주의와 청교도주의가 준 결과이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미국 역사에서 가장 종교적으로 영향을 끼친분이다. 그의 신학을 가리켜 ‘뉴 디비니티’, 철저한 칼빈주의, 에드워즈 전통, 뉴잉글랜드 신학 등으로 불린다. 그의 제자들로서 새무얼 홉킨스, 조셉 벨라미 등이 있다. ‘2차 대각성’ 운동이 일어나던 당시 에드워즈는 더욱 알려졌다. ‘1차 대각성’(1734-1735) 운동, 1740-1741년의 부흥에 직면하고, 노샘프턴에서 1727-1750년 목회자로 활동하던 에드워즈는 놀라운 부흥을 체험하게 된다. 특별히 그의 설교로 노샘프턴과 이웃 교구사람들은 영적 각성을 경험하게 된다. 300명이이던 교회 성도가 불과 6개월 만에 600명에 일고 조지 휫필드와 함께 ‘대각성’의 부흥운동을 이끌었다. 그가 말하는 정서는 영혼의 성향과 의지보다 왕성하고 감지될 수 있는 활동들이라고 정의될 수 있다. 조지 휫필드는 존 웨슬리에게 큰 감동을 주었던 인물로 찰스 웨슬 리가 소개해 준 스코틀랜드 헨리 스쿠갈이 쓴 “인간의 영혼 속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생명”을 읽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일만 오천 번 이상 설교를 했다. 웨일즈, 아일랜드, 영국, 스코틀랜드, 그리고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까지 가서 복음을 선포했다. 그런데 웨슬리와는 신학적 차이로 논쟁이 벌어져 갈라서게 되었다.
찰스 피니는 ‘2차 대각성’을 이끈 주역이었다. 그의 강조점은 은혜의 수단, 즉 말씀과 성례가 신자들에게 유용하다는 것보다 교회를 개인적이고 사회적 개혁의 매개체로 여긴다는 것이다. 그의 유명한 작품은 “종교의 부흥에 대한 강의집”으로 기독교 가수 키스 그린과 부흥사 빌리그래함이 영향을 받았다. 그런데 그의 신학은 펠라기인 주의와도 너무나 흡사하다. 그의 신학은 인간의 도덕성을 강조하고 있고, 속죄에 관한 중생, 회개, 믿음 등을 강조했다. 신학자가 아니었기에 그의 설교는 청중들로 하여금 도덕적 삶을 증진시키는데 강조점이 놓여 있었다.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으심은 목적을 위한 죽음이었지 사람들을 위한 죽음이 아니라고 억지 주장했다.
정통신앙의 판단 기준은 성경과 역사이다. 기록된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 역사를 통해 이것은 명백하게 증명되었다. 성경을 영감 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여기지 않으면 일단 정통에서 제외시키는 것이 좋다. 그리고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더라도 해석의 차이를 좁힐 수 있는 것이 교회사이다. 그 예로 진리의 말씀을 지키려고 했던 1-5세기에 있었던 1-4차 범종교회의를 거쳐 완성된 신앙인을 보았다. 로마 카톨릭, 그리스 정교, 프로테스탄트 등 어떤 기독교도 이를 다 수용하고 있다. 이 신앙을 우리는 정통신앙의 기준으로 보고 우리의 신앙이 제대로 나가고 있는지 판단 근거가 된다. 저자는 계혹 강조한 것이 올바른 신관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스도에 대한 관심을 가지지 않고 그분의 가르침에만 관심을 갖게 되면 자유주의로 빠지게 된다. 이것에 실패한 자가 아리안 주의이다. 아리안 주의는 2위가 하나님이라 믿는 그 분, 완전한 하나님이면서 동시에 완전한 인간이신 그 분의 신성을 부인했다. 에수 그리스도는 사람이었다는데 세례 받는 순간에 신의의 반열에 들어갔으며, 성부 하나님보다는 조금 모자라는 하나님으로 여겼다. 이런 아리안 주의 사상은 우리의 삶에 단성론적으로 나타난다. 이런 사상에 영향을 끼친 것이 영지주의이다. 혼합적인 사상으로 있는 것이 요즘의 뉴에이지 운동이나 포스트모던이즘과 맥락이 같다. 혼합주의와 다원화는 영지주의의 부활이다. 영적으로 무엇을 들었다 보았다 하는 것은 이상한 신앙의 모습이며, 신비주의로 가는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이다.
인간의 의지와 노력을 너무 강조한 펠라기안 주의는 인간 자체는 본래 선하게 태어났고, 원죄라는 것은 없다고 주장한다. 예수님의 신성이 예수님의 인성을 지배하여, 예수님의 육체는 신격화 된 육체라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거룩해지고 죄 안짓기를 바란다. 금욕적으로 살면서 초자연적인 능력을 바란다. 신앙에서 신비적인 것만 추구한다면 단성론자들이다. 이성주의와 신비주의의 공통점은 자기중심이다. 자신의 판단이 하나님의 말씀보다도 중요하다고 하여 이성주의이고, 자신의 체험이 하나님의 말씀보다도 우위에 있으면 신비주의가 된다. 따라서 인본주의, 이성주의, 신비주의는 대체적으로 단성론적이라고 할 수 있다.
성찬에 대한 논쟁의 역사에서 가시적인 물체와 형태를 가지고 은혜를 사모하여 그것이 은혜라고 억지 주장하는 경우가 있다. 이로 성상파괴 논쟁이 있었고 이런 모습은 1,000년 동안 진리를 왜곡하게 만들었다. 로마 카톨릭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선행으로 의롭게 될 수 있다고 가르쳐서 펠라기안주의, 아리안주의 또는 단성론의 모습으로 가게 만들었다. 이로 개혁신앙을 가진 분들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고, 전종교개혁자들이 순교를 당하고, 종교개혁자들이 카톨릭에 의해 엄청난 희생을 당하였다. 나아가 진리만 고수하면 스콜라주의와 같은 이성주의로 빠지게 된다. 이것에 반응으로 계몽주의 사싱이 일어나 기독교를 비난하고 이것에 대해 교회는 경건주의, 청교도주의, 부흥으로 답변했다. 그러나 진리를 강조하기보다 삶을 강조하면서 마음을 치료했지만, 교회를 회복시키거나 경건을 회복시키지 못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혼란한 시대에 진리를 찾고 진리 자체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가를 마음에 새기면서 올바른 신앙을 가지며 나아가길 바란다. 우리 마음 속에 계신 분은 성삼위일체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 분이 원하시기에 경건의 능력을 나타낸다는 마음, 영적으로 혼탁해져 가기에 믿으면 만사형통이라는 억지 주장에 혼혹되지 않고 좁은 길로 나아가길 간절히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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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8페이지
  • 등록일2010.07.16
  • 저작시기2008.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624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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