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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신자유주의의 정의와 세계화, 신자유주의와 사회화, 신자유주의와 연금개악, 신자유주의와 노동불안정, 신자유주의와 금융세계화, 신자유주의와 산업재해, 신자유주의와 제3세계위기, 신자유주의와 문화사회교육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개요

Ⅱ. 신자유주의의 정의와 세계화

Ⅲ. 신자유주의와 사회화

Ⅳ. 신자유주의와 연금개악

Ⅴ. 신자유주의와 노동불안정

Ⅵ. 신자유주의와 금융세계화
1. 금융세계화의 영향
2. 초국적 기업과 금융세계화
3. 신자유주의 금융화의 함의

Ⅶ. 신자유주의와 산업재해

Ⅷ. 신자유주의와 제3세계위기

Ⅸ. 신자유주의와 문화사회교육

참고문헌

본문내용

존재인 인간만이 지구상에서 안정적으로 구축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본다. 이 공공성은 인간의 생명력과 역능을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한 시공간의 형태를 띠며 나타난다. 먹고, 마시고, 자고, 입고, 병고치고, 나아가서 개인과 집단의 능력 계발을 위해 지원하는 각종 사회보장과 복지는 일상에서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 일상은 우리가 구체적으로 살아가는 형태라는 점에서 시간과 공간의 조건에서 구성된다. 일상의 재조직은 결국 시공간의 재조직이며, 이를 위해서는 노동사회적 삶의 조건과는 구분되는 방향으로 새로운 조직 원칙을 가동할 필요가 있으며, 여기서 문화사회 건설이 요청된다고 하겠다.
문화사회가 건설되려면 사회적 공공성만이 아니라 새로운 인간 형성도 필요하다. 일상에서 활동하는 우리가 새로운 인간형태로 태어나야 하는 것인데, 바로 여기서 교육의 중요성이 나온다. 교육은 지금까지 말한 사회적 공공성의 중요한 한 축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인간 형성과 관련해서 볼 경우 그 중요성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교육은 문화사회를 구성할 새로운 인간 형성을 위한 사회적 공공성 확보의 가장 중요한 사회적 제도이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대로 이 교육은 계급투쟁의 현장이기도 하기 때문에 현재 한국교육 현실은 새로운 인간 형성의 디딤돌이 아니라 걸림돌이 되어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물론 계급투쟁의 전개 속에서 노동자계급이 승리해야 하는데, 이 투쟁의 전개를 교육 외부에서만 찾을 일은 결코 아니다. 교육 자체가 계급투쟁의 현장이라면 교육현장에서의 투쟁은 필수적이다. 그런데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 투쟁을 하는 지점을 좀더 근본적인 데서 찾아야 한다는 것, 즉 인간의 역능을 구성하는 바로 그 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 자리는 교육의 내용이 결정되는 교과과정, 교육과정이라고 본다. 현재 이 교육과정을 장악하고 있는 세력은 교육지배세력으로서 국가와 자본이며, 대학에서 기초학문분야가 홀대받고, 중·고등학교에서 입시 중심의 교육이 일어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중등교육의 내용을 보면 기본적으로 지식교육, 인성교육, 예능교육 등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지식교육이 중심이 되고 있는 것은 그래야만 국가와 자본이 인구를 통제하기 쉽게 학생들을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결과 학생인구는 지금 교육을 통해 자신의 역능, 꿈, 희망을 키우기보다는 평가를 받기 위해 학교생활을 하는 꼴이 되었다. 학생들은 자율적인 인간으로, 자신의 활동을 스스로 기획하고 자유시간을 인간다운 삶으로 채울 수 있는 사람으로 크기보다는 노동사회가 설치해놓은 사다리의 좁은 칸에 갇히도록 강요받고 있는 것이다.
중등교육에서 새로운 인간형성을 위해서는 교육과정의 지식교육, 인성교육, 예능교육의 관계를 새롭게 조직해야 한다고 본다. 지식교육이 중심이 된 현재의 교육방식은 지양해야 하겠는데, 그렇다고 지식교육을 배제해서는 물론 안 된다. 김대중 정권이 강조하는 ‘지식기반사회’ 같은 용어는 기만적인 부분이 없지 않지만 ‘지식’은 인간적 삶을 위해 필수적이며, 지식생산은 교육 분야가 그 책임을 주로 맡아야 할 사회의 중요한 기능 가운데 하나이다. 하지만 지식교육이 지금처럼 학생능력 평가의 기본 잣대가 되어 있는 것은 잘못이며, 인구의 기형적 발전과 배치의 중요한 원인이다. 교육과정을 새로운 관점에서 개혁할 필요가 있다.
문화교육을 현재 학교교육의 교육과정을 통합하는 원칙으로 삼는 것은 단순히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교육의 목표에 일대 변혁을 초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입시교육에 대한 저항의 태도를 담고 있으며, 교육을 통해 양성하고자 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바꾸자는 제안이기 때문이다. 문화교육은 학생들이 인간 주체로서 자율성을 되찾아야 한다는 발상을 담고 있으며, 지식교육이든 인성교육이든 예능교육이든 노동사회로 편입하기 위해 받고 있는 교육을 문화사회의 건설을 위해 개인들의 능력을 계발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문화교육은 기본적으로 교과영역이 아니다. 물론 문화교육의 하위 영역들을 상정할 수는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시각문화, 소리문화, 연행문화, 언어문화, 매체문화 등이 그런 경우이고, 이들 영역의 특수성에 따라서 예컨대 매체문화의 경우 오늘 그것의 지배적인 형태가 영상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영상매체문화라는 특수한 영역을 설정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들 영역이 기존의 교과영역을 대체하는 새로운 영역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문화교육은 영역 개념을 뛰어넘는 교육의 태도, 원칙, 그리고 방법의 개념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설령 몇 개의 영역을 설정한다고 하더라도 그것들을 횡단하며 거기서 일어나는 교육을 지휘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매체(인간의 신체든, 문자든, 영상이든, 아니면 하이퍼텍스트 같은 첨단 매체든)를 가지고 삶을 만들어내고 표현하려는 인간의 생명력, 활기, 역능이다. 이 능력은 구상과 실행을 동시에 해내는 능력으로서 영역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영역들을 관통하는 능력이다. 개인들은 이런 능력을 언제 잘 계발하고 발휘할 수 있을까? 그런 능력의 계발과 발휘를 자기 결정권을 가지고 할 수 있을 때, 즉 교육을 자율적으로 하는 자기-교육의 기회를 가질 때일 것이다. 이렇게 진행되는 문화교육은 따라서 전교조가 창립 때부터 주창해온 인간화교육, 참교육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필자나 문화연대가 이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참교육’은 설명을 듣지 않으면 쉽게 그 내용을 짐작할 수 없는 데 반해서 \'문화교육‘은 피상적이나마 미학적 영역과의 연계로 인해 그 내용 짐작이 가능하고, 나아가서 ’문화사회‘와 쉽게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 김석진·박민수(1997),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비판을 위하여, 공감
▷ 김문주(2008), 신자유주의 경제는 어떤 한계점에 와 있는가?, 새사연 부원장
▷ 서울사회경제연구소 엮음(2005), 신자유주의와 세계화, 한울 아카데미
▷ 이대훈(1998), 신자유주의의 공세와 인권운동의 과제, 민변 10주년 자료집
▷ 이은숙(1997), 신자유주의와 그 등장배경, 경성대신문 원고
▷ 안병영 외(2000),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나남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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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10.06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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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633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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