福音의 정수 : 그리스도의 十字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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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福音의 정수 : 그리스도의 十字架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16, 21, 3:9~11, 4:2~6, 5:2~6, 6:14~16) 이런 점에서 본서를 로마서의 축소 내지 초안 정도로 생각하는 자도 있으나, 이는 오직 믿음으로만 된다는 ‘이신칭의’의 교리가 핵심을 이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행위로 의롭게 된다는 것은 유대인들의 전제이지만, 바울의 주장은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이다.
이한수 교수의 갈라디아서 주석은 강해설교를 위한 적용중심의 주해집이 아니라, 문법적, 역사적, 신학적 해석방법을 활용하여 본문의 \'본래 의미\'를 드러내는 데 주된 목적을 두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바울의 주장을 통해 선동자들이 사용하는 아브라함 전승과 성경 해석들을 급진적으로 재해석함으로써 종말론적인 새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을 규정하는 요소는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믿음뿐이라는 것을 논증한다.
기존의 유대교 해석 패러다임들이 바울의 칭의론의 참된 성격을 제대로 드러내는 데 약점과 한계들을 지니고 있음을 간파한 이한수 교수는 새로운 접근을 시도한다. 바울의 주장을 통해 율법종교인 유대교를‘육’이란 개념을 끌어다‘육의 종교’간주하고 있다. 그러므로 바울은‘율법의 행위’도 육의 영역 안에서 행해진 인간적 행위들에 불과하며, 그런 행위들은 어떤 누구에게도 칭의의 조건이 되지 못한다고 단언한다.
유대인들은 혈통, 할례, 율법 등에 기초해서 자신들이 이미 언약‘안에’있는 자들로 간주한 반면 바울은 그런 행위들에 종사하는 자들이 표면적 유대인에 불과할 뿐 여전히 언약‘밖에’있는 세상적 존재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바울의 이런 생각은 분명히 다메섹에서 계시적인 통찰로 얻어진 것이 분명하며, 본문의 칭의 진술도 바울의 이러한 계시적 전망 아래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한수 교수는 율법의 무익하다면 율법은 무엇 때문에 주어진 것인지에 대하여, 갈라디아서 3:19을 제시한다. 바울은 율법이 범죄을 더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천사들로 말미암아 모세의 중보의 손을 빌어 주어진 것이라고 밝히며 네 가지 중요한 율법관을 밝히고 있다.
첫째, 율법은 생명의 길, 의를 얻는 길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범죄를 인하여 또는 범죄를 더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주어진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둘째, 율법은 천사를 통해서 주어진 간접적인 계시일 뿐이다. 셋째, 율법은 모세의 중보를 필요로 하였으나 아브라함 언약은 하나님 자신이 직접 주신 것이기 때문에 모세와 같은 중보자가 필요 없었다. 단독으로 맺어진 아브라함 언약이 훨씬 우월하다. 넷째, 율법은 약속하신 자손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시기까지만 효력을 발휘하는 한정적이고 잠정적인 계시에 불과하다. 새로운 메시야 시대가 오면 율법은 그 타당성을 중단하게 될 것이다. 율법은 그리스도 안에서 폐지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율법을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그것은 유대인들의 민족적 정체성을 확인해 주는 기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할례나 율법은 유대인들의 선민적 배타주의의 보루가 된 것이다. 할례와 율법은 유대인과 비유대인을 구분하는 사회학적인 경계표지들이요, 자신들을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생각했던 유대인들의 정체성 의식의 표지였다. 또 이 율법을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때, 율법은 타락한 인류의 죄악상을 드러내고 폭로시키며 정죄하는 부정적인 기능을 가진다.
바울의 중심적인 신학적 메시지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십자가 사건이 할례와 율법이 지배하던 옛 세상 질서를 폐지시키고,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존재 양식과 삶의 양식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는데 있다. 바울은 아브라함의 축복을 오직 유대인들에게만 한정시키려는 유대주의적 선동자들의 선민적 배타주의에 직면하여,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유대인이나 이방인 모두가 한 아브라함의 가족이 되었다는 것과 성령의 능력으로 율법 아래서 죄의 종노릇하는 자들이 율법의 거룩한 요구들을 성취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는 것을 선포한다.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통일과 자유를 논증하므로 써, 교회를 요동케 하는 유대주의적 선동자들의 선동을 무너뜨리려고 한 것이, 바울이 갈라디아서의 목적이자 중심적 신학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한수 교수의 갈라디아 주석은 탁월하다. 바울의 주장을 가지고 해석했다고는 하지만 그의 깊은 통찰력은 참으로 놀랍기 그지없다. 이 시대의 바울 신학의 선두에 서있는 이한수 교수님의 강의와 책들은 현대의 혼탁한 신학의 시대 속에서 빛나는 보석과 같다고 생각된다. 강의 시간의 열정적 강의와 저술을 통하여, 이 시대 개혁주의 신학의 목회자들을 길러내고 있음에 감사를 드린다.
율법에 있어서의 정죄기능은 그리스도 안에서 폐지되었으나, 믿음이라는 성경의 원초적 신학사상과 성령의 원리를 좇아 사는 신자들에게는 성취된다는 개념이 갈라디아서의 중요한 사상이라 할 수 있다. 그 성취 속에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충만함으로 밑바닥에 흐르고 있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할례의식이나 율법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그러나 우리는 날마다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하는 당위성과 책임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강압이나 억압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자유함에서 출발되며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는 하나님 자녀라고 말로만 떠드는 많은 사람들로 인하여 고통 받고 있다. 이것은 갈라디아서 주석을 통한 바울의 주장처럼, 유대인들의 사고방식과 전혀 다르지 않다. 그들 자신이 성령의 열매를 맺기를 거부한다. 그저 교회 마당만 밟을 뿐인 형식적 그리스도인, 무늬만 그리스도인인 자들을 향한 바울의 외침인 동시에 저자의 외침이기도 하다는 것을 느꼈다. 왜 교회가 사회의 지탄의 대상이 되었는가? 이는 성령의 열매 맺는 삶과는 동떨어진 삶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된다. 갈라디아 주석-복음의 정수를 통하여 이 시대를 향한 저자의 외침과 바울의 외침을 동시에 들을 수 있는 귀한 책이었음에 감사를 드린다. 또한 앞으로 목회의 현장에서 나부터 올바른 성령의 열매를 맺는 목회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한학기 동안 열정을 쏟으시고 강의해 주신 교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 가격4,000
  • 페이지수11페이지
  • 등록일2010.12.09
  • 저작시기2010.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642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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