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한시속의 삶과 의식<<책속의 정약용 요약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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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정약용의 시와 실학사상

1)삶과 의식

2)시에 나타난 실학사상

가. 사실성과 조선시

나. 직설적 현실 비판

다. 우의와 풍자

라. 생활주변과 전원풍경

본문내용

6, 전제5, 士治人之職
벼슬이 없어도 사회의 지도자적 역할을 행하여 민생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田論5, <全書>I-11, 44b <奎本> 與猶堂集11, 論辨,14쪽.
바꾸어 말하면 사(士)는 벼슬이 있어야 자신의 직분을 적극적으로 다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벼슬이 없었으므로 국정은 어진이가 다스리라 하고 벼슬이 있거나 없거나한 경우를 물오리나 기러기라는 말로 돌려서 그게 그거라는 식으로 말하고 말았다. 그의 의식 소에는 사(士)의 직분에 대한 강한 집념이 역설적으로 배어 있다고 할 것이다. 어쨌거나 그는 시사를 만들어 친구들과 교유하며 시재(詩才)를 연마하고 심회를 달랬다.
산의 나무 (山木)
초여름의 기운이 널리 퍼지니 산의 나무들이 함께 푸르구나.
여린 잎은 아침햇살을 머금어 볕 바래는 누런 명주처럼 투명한데
짙은 녹음 서로 번갈아 차례로 번져 비스듬히 경계선을 이루누나.
소나무 향나무는 늙은 게 부끄러워 가지 끝에 고운 새싹을 뱉어내고
해묵은 등 넝쿨 또한 마음이 있어 간들거리며 죽죽 뻗어나가네.
요컨대 이 모두가 속물이 아닌지라 서로 기뻐하며 조용히 구경하네.
다행히 벼슬에 얽매이지 않았는데 어찌 다시 집안일에 연연하리요.
붙잡고 오를 때 이미 수고했기에 마땅히 편할 대로 기쁨을 누리네.
생성의 이치를 조용히 연구해보면 족히 책 읽은 것과 맞먹으리라.
온 산이 붉게 단풍든 가을에 다시 와서 시절의 변천을 보리라.
首夏氣布濩山木交蔥嫩葉含朝暉通明黃絹濃綠遞相次引界線松羞老蒼新梢吐昭絢壽藤亦生心舒蔓要皆非俗物熙怡共幽眄幸無簪組累奚復室家戀攀旣費勞享受宜自便靜究生成理足以當書卷高秋滿山紅重來覽時變 (全書I-7, 55a)(奎本, 詩集8 13-14쪽)
이 시는 그가 66살(1827)4월 말에 현계(玄谿)와 석천(石泉)등과 세 집 자제를 합쳐 10여명이 함께 천진암에 가 놀면서 지은 시들을 묶은 <천진소요집(天眞消搖集)>에 들어 있는 작품이다.<全書>I-7, 52a 病伏十有二旬 適逢玄谿令公從龍門 水鍾而至 將南游天眞菴 勉而從之 仍訪石泉翁偕適 三家少年及季林聖九規伯亦從焉
그는 귀양에서 돌아온 후 노론계열의 홍석주(洪奭周)*현주(顯周) 형제, 김매순(金邁淳)등과도 자주 어울려 산천을 유람하며 시를 짓고 학문을 토론하곤 했다. 이 시는 앞뒤 다섯줄씩으로 나누어 앞은 경물묘사이고 뒤는 시인의 서정표현이다. 즉 ‘촉물흥감’이다.
앞부분의 처음 석 줄은 산의 전체적인 인상을 개괄한 것이고, 다음 두 줄은 개별적인 나무에 대한 관찰이다. 초여름의 푸르름, 아침 햇살, 돋아나는 새싹과 뻗는 줄기 등이 생명의 기운을 보여준다. 뒷부분의 처음 석 줄은 앞에 펼쳐진 경물에 취해 감상하는 일행의 분위기를 표현했고, 마지막 두 줄은 생성의 이치를 음미하는 시인의 모습이다. 이러한 우주만물의 생성이치에 대한 깨우침은 수많은 독서와 저작을 마무리한 자신의 경지와 그 비중이 서로 맞먹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이 나무들이 단풍든 가을에 다시 와서 우주의 변화하는 모습을 다시 확인하고 싶다고 한 것이다.
초여름 산 속의 나무를 보고 자연의 섭리를 조용히 음미하고 그 경이로움에 감동을 느끼는 데서 전원에서의 즐거움을 볼 수 있다. 그는 고향에 돌아와 전원생활을 묘사하거나 산수를 유람하면서 전원풍경을 시화하였다.
이상 살펴본 대로 그는 생활 주변의 일상사와 교유, 혈연에 대한 애정, 전원생활과 산천유람, 그리고 농촌 현실을 사실적이고 운치있게 표현했다.
☞☜
정약용은 조선 후기의 실학사상을 대표하는 학자이다. 그는 유교경전을 새로운 관점으로 해석하고 유학사상을 새롭게 정립한 사상가요, 국가 현실의 제반 문제점을 비판하고 국가 경영의 대안을 제시한 경세가이며, 자신의 정감과 예술적 재능을 시문으로 표현한 시인이기도 하였다.
그는 당대부터 훌륭한 시인으로 인정받았으며, 민중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표현하여 민생과 치세에 이바지하려 하였다. 그는 두시를 익혔고 시사를 결성하여 동인활동도 하였는데, 조선의 현실을 사실적이고 즉물적으로 제시하면서 당시풍에서 송시풍으로 점점 옮아갔다. 그의 시는 소박한 소재를 짜임새 있고 아취있게 다루어 고아한 품격을 지녔고, 현실의 부조리에 비분을 감추지 않는 ‘온유격절(溫柔激切)’의 미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현실을 개혁하여 민생을 이롭게 하고자 실학을 집대성하고 경전의 참뜻을 궁구했으며, 벼슬길의 험난함을 겪고 유배생활을 하면서 민중의 고통과 현실의 부조리를 체감하였다. 그리고 전원에 돌아가 산천을 유람하고 전원의 여유를 즐겼다. 그의 시에는 이러한 그의 삶과의식이 다음과 같이 반영되어 있다.
첫째, 조선후기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여 즉물적으로 사물을 제시하는 사실주의적 경향이 두드러진다. 뿐만 아니라 민중의 고통을 증언하고 개혁을 촉구하는 비판적 현실주의의 시각도 드러나고 있다.
둘째, 자주적인 조선시를 주장하여 조선 후기의 풍속과 언어 등의 실상을 그대로 담은 조선시를 쓰고자 하였다. 이것은 중국 공안파의 영향으로 의고시를 버리고 개성과 독창을 중시하는 겨향으로 나아간데서 비롯되었다고 할 것이다.
셋째, 직설적인 현실 비판의 시를 들 수 있다. 조선의 현실을 비판하고 개혁하려는 실학사상에 바탕을 두고 민중의 고통을 고발하고 증언하여 현실의 부조리를 비판하였다. 그리하여 삼정의 문란과 관리의 횡포로 인한 조선 후기의 가혹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증언하고 있다.
넷째, 우의와 풍자의 방법을 이용하여 조선의 현실을 구체적인 서사형태로 객관화시켜 재현하고 이를 통하여 현실의 부조리를 한층 심도있게 비판하였다.
다섯째, 생활 주변의 일상사와 혈연에 대한 애정, 벗들에 대한 우정, 저원생활과 산천유람에서 느끼는 서정과 농촌 현실을 사실적이고도 운치있게 표현했다.
끝으로 그의 시가 한국 한시사에서 차지하는 의의는 숙종조 이후 대두되기 시작한 조선의 자연과 풍속, 그리고 조선인의 정서를 사실적으로 그려내려는 경향을 이어받고 있다는 점이다 나아가 그는 비록 한시이긴 하지만 조선의 풍속과 언어를 담아내고 우리 고전에서 용사를 취하려고까지 하였다. 이것이 우리말로 우리의 사상과정서를 표현한 진정한 조선시에 이르지는 못했다고 할지라도 자주적 조선시를 주장한 의의는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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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12.18
  • 저작시기20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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