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않았던 흉노라는 존재에 익숙해지게 하였고 이로써 그들을 조사하고 기록할 가치가 있는 주제로 확정하게 한 목적을 달성하였다. 흉노 왕가의 계보에 관한 상세한 정보가 없음을 인정한 사마천은 결국 흉노가 어디에서 기원하였는지 설명할 수 있도록 흉노와 과거 북방 주민 사이의 계통적 연관성을 확립하려고 노력하였는데, 중국을 압박하면서 문제를 일으키는 흉노가 중국사뿐 아니라 인류사라는 더 큰 체계에서 알려진 존재로 만들려면, 그들을 가장 원초적인 과거와 연결시킬 수 있는 전통을 창조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흉노의 계보를 구성하는 데에는 ‘합리적인’ 역사 해석 수단을 제공함과 아울러, 이념적으로 중국이 그러한 역사적 과정을 거치면서 문명의 힘 또는 무력을 이용하여 어떻게 오랑캐들을 정복하고 북방의 정치적, 군사적 위협을 무력화할 수 있었는지 증명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사마천은 이들 이방인의 위협이 매우 심각하기는 하지만, 언제나 극복할 수 있는 것이었음을 보여주려고 하면서, 중국이 이방 영역으로 진군해 들어가는 것을 ‘명백한 숙명’이라고 표현하였다.
『사기』 제110권 <흉노열전>의 관련 부분을 세밀히 고찰하면 흉노의 종족 계보를 설정한 두 가지 목적이 더욱 명확하게 나타난다. 우선 신화적 기원을 지닌 하 왕조에서 주나라 정복 시기까지를 세 단계로 설정하여 서술하기 시작하면서 대부분 이방인을 지칭하는 포괄적인 명칭들이 발견되는데, 사마천은 이를 시대적으로 맞지 않게 사용했다. 중국의 입장에서 볼 때 동일한 역할을 했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흉노와 정확한 연결 관계가 확립될 수 없는 다양한 정치, 종족적 집단을 가리키는 포괄적인 용어들을 사용하여 사후에 계보를 연결한 목적은 흉노가 담당한 역사적 역할을 설명하고 정당화하려는 것이었으며 사마천은 그 목적을 달성하였다. <흉노열전>의 서두에서 사마천은 흉노의 기원이 중국이라고 인정하고, 일부 그들의 조상이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을 유목 목축민이라고 규정하였다.
「사기」를 보면 천체와 이방인 사이의 상관관계가 점성술적 예언의 영역에서도 적용됨을 알 수 있다. 금성의 운행은 전쟁과 갈등을 관장하며 북방 주민과 중국의 관계에 영향을 준다고 여겼는데 인간사적 견지에서 보면 북방 지역의 별자리의 상대적 위치와 운행은 이방인과의 전쟁이나 군사 원정과 연결되었다. 한편, 하늘에서 금성의 위치는 상대편 군대의 역량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되었다. 점성술가로서의 능력을 지닌 사마천이, 상호작용하는 우주적 원리의 한 부분이 되는 역사적 활동에 천인상관적 우주론의 원리를 적용하였다는 사실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천인상관적 사고방식은 천체의 현상이 지상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영향을 준다는 믿음에 기초한다. 따라서 내륙아시아를 포함하는 상관관계에 관한 지식은 또한 이방인에 대한 군사 원정과 같은 일에서 길잡이를 제공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실제 전쟁 상황에서 군대의 지휘관은 이러한 점성술적 문제에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지만, 원정군을 출발시키는 데 불길한 날을 택할 때에는 점성술의 원칙들이 지켜졌을 가능성이 있다. 또 발생한 사건의 결과를 정당화하는 데 이러한 지식이 적용되었을 수도 있다.
사마천은 흉노의 침입을 논리적으로 분명히 연결되지 않는 일련의 이념적인 사건의 결과로 해석하였다. 사마천이 보기에 사물의 질서를 혼란시키고 그리하여 흉노가 침입하는 결과를 낳은 것은 바로 문제가 의례를 제대로 실행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흉노 침입 사건은 그 자체로 역사적 기록으로서의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황제의 잘못된 행동의 증거이자 의례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는 유교적 교리에 기초한 일련의 합리화였다. 또 다른 예로 중국이 중앙아시아 페르가나 지역으로 정벌을 나선 일과 메뚜기 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일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고 기술하는데, 메뚜기 떼라는 자연 현상의 이변을 한나라의 서역 공격에 따른 결과로 생각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자연 현상과 중국의 영역 밖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을 연관시켰다는 사실은 곧 천인상관론이 내륙아시아까지 확대되었음을 의미한다.
어떤 나라든 어느 민족이든 간에 자신들이 세계에서 가장 우월한 '특성'이 있다고 말하곤 한다. 그것은 나름대로의 자부심 정도로 이해해줄 수 있다. 그러나 특성 정도가 아니라 가장 우월한 ‘존재’라고 한다면 받아들이는데 곤란함이 발생한다. 자신들을 머리라고 칭하며 자신들의 주위에 있던 것들은 모두 발아래의 것으로 보았던, 그것을 바탕으로 심지어 오랑캐라는 것마저 탄생시킨 중국의 태도는 경계해야 마땅할 것이다. 특히 그것이 과거만 그러했던 것이 아니라 오늘날의 역사 왜곡 문제도 그런 태도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떠올려본다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메시지는 중국이 만들어낸 '오랑캐'라는 이미지를 서슴지 않고 받아들이는 사고를 타파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한국 또한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또 하나의 오랑캐다. 중국 고서에 기록됐던 한국의 많은 명칭들이 결코 좋은 의미가 아님은 여러 차례에 걸쳐 지적된 사실이다. 그럼에도 그런 용어들조차 스스럼없이 사용하고 있으며 또한 중국의 시각을 마치 한국의 시각인양 사용하는 것은 되짚어 생각해봐야할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오랑캐의 탄생』은 알려지지 않았던 것들을 알려주는 동시에 기이할 정도로 놀라운 '착각'의 세계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한국에서 흉노라는 단어를 떠올리면서 중국의 시각 그대로를 빌려 오랑캐 어쩌고 하는 동안, 반대편 땅의 누군가들도 고구려나 조선 같은 단어를 떠올리면서 중국의 시각 그대로를 빌려 오랑캐 어쩌고 하고 있을지 모른다.
이 책은 내륙아시아의 유목민들을 중심으로 서술되어졌지만 상대를 다루는 중국의 입장을 기술한 부분들을 살펴보면 낯설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중국이 아닌 모든 것은 중국에게 오랑캐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기도 하다. 『오랑캐의 탄생』은 그것을 알려준다. 중국이 있기에 오랑캐가 있었다는 사실을, 중국에 의해 주위의 것은 재구성되고 재구성되어 원형은 온데간데없이 조작된 모습만이 남겨진 오랑캐가 존재하고 있음을 말이다. 더불어 북방 유목민들만 그런 취급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도 말이다.
이렇게 흉노의 계보를 구성하는 데에는 ‘합리적인’ 역사 해석 수단을 제공함과 아울러, 이념적으로 중국이 그러한 역사적 과정을 거치면서 문명의 힘 또는 무력을 이용하여 어떻게 오랑캐들을 정복하고 북방의 정치적, 군사적 위협을 무력화할 수 있었는지 증명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사마천은 이들 이방인의 위협이 매우 심각하기는 하지만, 언제나 극복할 수 있는 것이었음을 보여주려고 하면서, 중국이 이방 영역으로 진군해 들어가는 것을 ‘명백한 숙명’이라고 표현하였다.
『사기』 제110권 <흉노열전>의 관련 부분을 세밀히 고찰하면 흉노의 종족 계보를 설정한 두 가지 목적이 더욱 명확하게 나타난다. 우선 신화적 기원을 지닌 하 왕조에서 주나라 정복 시기까지를 세 단계로 설정하여 서술하기 시작하면서 대부분 이방인을 지칭하는 포괄적인 명칭들이 발견되는데, 사마천은 이를 시대적으로 맞지 않게 사용했다. 중국의 입장에서 볼 때 동일한 역할을 했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흉노와 정확한 연결 관계가 확립될 수 없는 다양한 정치, 종족적 집단을 가리키는 포괄적인 용어들을 사용하여 사후에 계보를 연결한 목적은 흉노가 담당한 역사적 역할을 설명하고 정당화하려는 것이었으며 사마천은 그 목적을 달성하였다. <흉노열전>의 서두에서 사마천은 흉노의 기원이 중국이라고 인정하고, 일부 그들의 조상이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을 유목 목축민이라고 규정하였다.
「사기」를 보면 천체와 이방인 사이의 상관관계가 점성술적 예언의 영역에서도 적용됨을 알 수 있다. 금성의 운행은 전쟁과 갈등을 관장하며 북방 주민과 중국의 관계에 영향을 준다고 여겼는데 인간사적 견지에서 보면 북방 지역의 별자리의 상대적 위치와 운행은 이방인과의 전쟁이나 군사 원정과 연결되었다. 한편, 하늘에서 금성의 위치는 상대편 군대의 역량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되었다. 점성술가로서의 능력을 지닌 사마천이, 상호작용하는 우주적 원리의 한 부분이 되는 역사적 활동에 천인상관적 우주론의 원리를 적용하였다는 사실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천인상관적 사고방식은 천체의 현상이 지상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영향을 준다는 믿음에 기초한다. 따라서 내륙아시아를 포함하는 상관관계에 관한 지식은 또한 이방인에 대한 군사 원정과 같은 일에서 길잡이를 제공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실제 전쟁 상황에서 군대의 지휘관은 이러한 점성술적 문제에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지만, 원정군을 출발시키는 데 불길한 날을 택할 때에는 점성술의 원칙들이 지켜졌을 가능성이 있다. 또 발생한 사건의 결과를 정당화하는 데 이러한 지식이 적용되었을 수도 있다.
사마천은 흉노의 침입을 논리적으로 분명히 연결되지 않는 일련의 이념적인 사건의 결과로 해석하였다. 사마천이 보기에 사물의 질서를 혼란시키고 그리하여 흉노가 침입하는 결과를 낳은 것은 바로 문제가 의례를 제대로 실행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흉노 침입 사건은 그 자체로 역사적 기록으로서의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황제의 잘못된 행동의 증거이자 의례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는 유교적 교리에 기초한 일련의 합리화였다. 또 다른 예로 중국이 중앙아시아 페르가나 지역으로 정벌을 나선 일과 메뚜기 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일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고 기술하는데, 메뚜기 떼라는 자연 현상의 이변을 한나라의 서역 공격에 따른 결과로 생각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자연 현상과 중국의 영역 밖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을 연관시켰다는 사실은 곧 천인상관론이 내륙아시아까지 확대되었음을 의미한다.
어떤 나라든 어느 민족이든 간에 자신들이 세계에서 가장 우월한 '특성'이 있다고 말하곤 한다. 그것은 나름대로의 자부심 정도로 이해해줄 수 있다. 그러나 특성 정도가 아니라 가장 우월한 ‘존재’라고 한다면 받아들이는데 곤란함이 발생한다. 자신들을 머리라고 칭하며 자신들의 주위에 있던 것들은 모두 발아래의 것으로 보았던, 그것을 바탕으로 심지어 오랑캐라는 것마저 탄생시킨 중국의 태도는 경계해야 마땅할 것이다. 특히 그것이 과거만 그러했던 것이 아니라 오늘날의 역사 왜곡 문제도 그런 태도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떠올려본다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메시지는 중국이 만들어낸 '오랑캐'라는 이미지를 서슴지 않고 받아들이는 사고를 타파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한국 또한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또 하나의 오랑캐다. 중국 고서에 기록됐던 한국의 많은 명칭들이 결코 좋은 의미가 아님은 여러 차례에 걸쳐 지적된 사실이다. 그럼에도 그런 용어들조차 스스럼없이 사용하고 있으며 또한 중국의 시각을 마치 한국의 시각인양 사용하는 것은 되짚어 생각해봐야할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오랑캐의 탄생』은 알려지지 않았던 것들을 알려주는 동시에 기이할 정도로 놀라운 '착각'의 세계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한국에서 흉노라는 단어를 떠올리면서 중국의 시각 그대로를 빌려 오랑캐 어쩌고 하는 동안, 반대편 땅의 누군가들도 고구려나 조선 같은 단어를 떠올리면서 중국의 시각 그대로를 빌려 오랑캐 어쩌고 하고 있을지 모른다.
이 책은 내륙아시아의 유목민들을 중심으로 서술되어졌지만 상대를 다루는 중국의 입장을 기술한 부분들을 살펴보면 낯설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중국이 아닌 모든 것은 중국에게 오랑캐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기도 하다. 『오랑캐의 탄생』은 그것을 알려준다. 중국이 있기에 오랑캐가 있었다는 사실을, 중국에 의해 주위의 것은 재구성되고 재구성되어 원형은 온데간데없이 조작된 모습만이 남겨진 오랑캐가 존재하고 있음을 말이다. 더불어 북방 유목민들만 그런 취급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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