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의 개념][유학의 역사][신유학의 형성][신유학의 관점][신유학의 영향][신유학의 이학적 교육관]유학의 개념, 유학의 역사, 신유학의 형성, 신유학의 관점, 신유학의 영향, 신유학의 이학적 교육관 분석
본 자료는 5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해당 자료는 5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5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유학의 개념][유학의 역사][신유학의 형성][신유학의 관점][신유학의 영향][신유학의 이학적 교육관]유학의 개념, 유학의 역사, 신유학의 형성, 신유학의 관점, 신유학의 영향, 신유학의 이학적 교육관 분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개요

Ⅱ. 유학의 개념

Ⅲ. 유학의 역사

Ⅳ. 신유학의 형성

Ⅴ. 신유학의 관점
1. 신유학적 지식인의 문화 개념의 특징과 문화상대주의
2. 현대 신유학적 지식인의 유학적 전통의 재해석과 서구 문화 수용 방법

Ⅵ. 신유학의 영향
1. 이기론의 수용과 마음공부의 강조
2. 소태산 성리와의 상이점

Ⅶ. 신유학의 이학적 교육관

참고문헌

본문내용

은 자연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질서로서 “검증될” 대상이라면, 당위적 법칙은 인간의 행위나 제도에 내재된 것으로서 그 자체가 가치의 주장으로서 “정당화를 요하는” 대상이다. 주희의 경우에 둘은 하나로서 이가 된다고 보는 셈이다. 즉, 사실적 법칙과 당위적 법칙은 일치한다. 더 정확히 말해서 사실적 법칙 그대로가 당위적 법칙이며, 자연적 질서에 도덕적 질서의 원리를 담고 있다. 칸트도 당위적 법칙이 보편성을 지니면서 존재한다고 하였지만, 경험적으로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선험적으로 인식된다고 하였을 분이다. 그에 의하면, 당위적 법칙이 사실적 법칙과 마찬가지로 보편성을 지닐 수 있다고 하였으나, 사실과 당위의 일치를 말하지는 않았다.
사실적 법칙과 당위적 법칙의 일치는 사물에 부여된 성(性)의 본질에서 연유한 것이다. 논어의 위정편(爲政篇)에 대한 집주(集註)에서 주희는 천명(天命) 곧 천도(天道)가 유행하여 사물에 부여된 것이 소당연지고(所當然之故)라고 하였다.(집주, 4) 그리고 중용(中庸)에서는 하늘이 명한 것을 성(性)이라 하고 성을 따르는 것을 도(道)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그 부여된 것은 바로 성이다. 따라서 소이연은 성으로 인한 것이고 소당연도 성에서 나온 것이다. 하늘과 땅의 이가 명(命)이라면, 사람과 사물의 이가 성(性)이다. 이가 하늘에 있으면 명이라고 하고 사람에게 있으면 성이라고 한다. 명을 두고 말하면 그것의 근본원리는 원(元), 형(亨), 이(利), 정(貞)이다. 원은 큰 것, 형은 형통한 것, 이는 마땅한 것, 정은 바르고 곧은 것이다. 이에 대응하는 성을 두고 말하면, 원에 대응하는 인(仁), 형에 대응하는 예(禮), 이에 대응하는 의(義), 정에 대응하는 지(智)가 있다. 결국, 성은 하늘에서 온 것이며 궁극적으로 태극 혹은 무극에서 온 것이다. 그 성의 구조적 원리는 명의 구조적 원리에 일치하는 관계에 있다.
주희는 다시 성을 두 가지, 즉 “본연지성(本然之性)”과 “기질지성(氣質之性)”으로 나누어 생각하였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이 두 가지의 성을 소유한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개념적 혼란에 빠지게 된다. 왜냐하면, 본연지성은 형이상의 본체, 즉 인간이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이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라며, 기질지성은 그 이에 기가 결합하여 개체의 인간으로 된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 차이는 이가 기와 결합하기 이전의 보편적 성과 결합한 이후의 개별적 성 그것 만큼이다. 본연지성은 논리상으로 존재하는 것이라면, 기질지성은 사실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본연지성은 이 그 자체이므로 당연히 선한 것일 수밖에 없지만 기질지성은 자연히 선악의 구별이 있을 수 있다.
그러면 기질상의 차이는 왜 생기는가? 그것은 기가 운행하고 변화하는 성질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혹문(大學或文)에서 이렇게 설명하였다. 즉, 이만 가지고 말하면 모든 사물은 하나의 원리이므로 실로 사람과 사물에 귀합과 천함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기를 두고 생각하면, 그 바르고(正) 트인(通) 사람은 치우치고(偏) 막힌(塞) 사물과 같을 수가 없다. 사람은 정교한 기를 타고 나지만 사물은 조야한 기를 타고 난다. 그러나 주희는 사삼이 비록 정기(正氣)와 통기(通氣)를 타고 나기는 하지만, 정기 속에 더러운 기를 가져 간사하거나 교활하거나 난폭할 수 있으며, 통기 속에 탁한 기가 섞여 어둡고 어리석을 수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렇게 기질지성의 차별가능성을 설명하면, “소이연(所以然)”이라는 말은 우리가 오늘날 흔히 말하는 자연상태 그대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우주에 본래의 도덕적 질서가 있다고 가정하고 그것에 따라서 인간은 성을 부여받았고, 그 성이 본연의 도덕적 질서를 따르지 못하게 하는 저항적 혹은 부족한 요인이 별도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소이연의 개념은 소당연(所當然)의 개념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 단지 도덕적 질서는 보편적 원리로서 존재한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성은 그 본연의 것으로 말하면, 순수한 이를 의미하고 그것은 인간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이다. 성은 순수한 이이지만 마음은 이와 기가 합쳐진 상태이다. 다만 이일뿐인 성보다 더 영묘한 것은 오히려 마음이다. 왜냐하면, 마음은 활동하기 때문이다. 마음은 성(性)을 거느리고 또한 정(情)을 거느린다. 마음 속에 있는 성은 하늘로부터 받은 도리 혹은 원리의 체제에 불과하나 정은 마음의 활도에서 지각과 사려를 가능하게 한다. “마음과 성과 정을 거느리는 것이니 고요하고 움직임이 없어도 인(仁), 의(義), 예(禮), 지(智)의 이(理)를 갖추고 있다. 맹자의 사단(四端)은 그 정의 움직임을 나타낸 것이다. 주희가 말하는 정은 마음의 움직임을 의미하며 오늘날 이지적(理智的, intelligent), 감정적(感情的, emotional), 의지적(意志的, volitional) 요소들을 모두 포괄하는 것이다.
주희에 있어서 교육의 목적은 인간이 각기 지니고 있는 기질의 성을 변화시켜 본연의 성으로 회복시키는 데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모두를 성인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것에 그 목표를 둔다. 이를 위하여 우선 중요한 것은 “입지(立志)”, 즉 뜻을 세우는 일이다. 물론 당시의 교육은 선비의 교육으로서 오늘의 평등교육과는 성격상 다른 것이다. 뜻을 세운다는 것은 선비로서 성인 혹은 군자가 되고자 하는 의지, 즉 “대학의 도”로서 나타내어진 바와 같이 몸을 닦고 집안을 다스리며 나라를 통치하고 천하는 화평하게 하는 사업에 종사하려는 뜻을 세운다는 것을 의미한다. 입지한 바를 이루려는 사람은 “도심(道心)으로써 인욕을 주재하도록 하는 것”이 자기 수양을 위한 과제의 전부이다.
참고문헌
김성기·최영진 외 10인 / 지금, 여기의 유학, 성균관대출판부, 2005
박병기·추병완 / 윤리학과 도덕교육, 서울 : 인간사랑, 1996
손영식 / 이성과 현실-송대 신유학에서 철학적 쟁점의 연구, 울산대학교출판부, 1999
윤남한 / 유학의 성격, 한국사, 1975
조길혜 외, 김동휘 역 / 중국유학사, 신원문화사, 1997
한국사상사연구회 / 조선유학의 개념들 도서출판 예문서원, 2002

키워드

  • 가격6,500
  • 페이지수17페이지
  • 등록일2011.04.16
  • 저작시기2021.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667323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