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1123 - 32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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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성만찬의 기원은 주님께 있습니다.(23절)

2. 성만찬의 목적은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그분을 기념하고 주의 죽으심을 전하는데 있습니다.(24,25,26절)

3. 성만찬의 방법은 떡을 떼고 잔을 마시는 것입니다.(24,25절)

4. 성만찬을 대하는 자의 태도는 자신을 살피고 분변하는 것입니다.(27,28,29절)

5. 성만찬을 거룩하게 시행하지 않은 결과입니다.(30-32절)

Ⅲ. 결론

본문내용

기교회공동체에서 주로 행해지던 예배는 성찬중심이었다는 주장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란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성찬은 16세기 종교개혁이 일어나기까지 예배의 중심이었습니다. 카톨릭교회에서는 미사, 미사란 말은 "파송한다, 보낸다."란 뜻인 Mission이란 말에서 나와서 카톨릭 성찬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는데 이 미사는 전체가 성찬을 중심으로 행해지는 예배였습니다. 그러다가 16세기 중세교회가 부패하면서 미사를 미신적으로 이해하기 시작하고 동시에 말씀의 예배가 무시되고 있었기 때문에 종교개혁자들은 말씀의 예배와 성찬의 예배가 이렇게 균형을 이루도록 말씀의 예배를 강조했는데 이것이 그만 너무 강조되어서 현재 개신교회에는 성찬의 예배는 1년에 그저 한 4번 정도만 드리고 모든 예배는 말씀의 예배로 드리는 기형을 낳게 되었습니다. 지금 세계교회는 점점 성찬의 예배의 중요성을 다시 깨닫고 이를 회복하기 위한 운동을 펼치고 있고 이제 우리 교회도 앞으로는 말씀의 예배와 성찬의 예배를 같이 행해서 균형있는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개선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사실 존 칼빈도 "교회란 말씀이 선포되고 성찬이 제대로 행해지는 교회가 정확한 교회이다."라고 하면서 이 성찬을 상당히 중요시했습니다. 존 칼빈은 종교개혁때 매주일 말씀의 예배와 성찬의 예배를 드리는 것이 원칙이라고 가르쳤습니다. 1, 2세기의 초대교회는 토요일밤에 성찬의 예배를 먼저 드리고 그 다음에 주일날 모여서 말씀의 예배를 드렸고 이것이 서서히 합해져서 주일에 말씀의 예배를 먼저 드리고 곧 이어서 성찬의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발전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찬의 예배는 말씀의 예배와 반드시 겸해서 드려지는 것이 옳은 일입니다.
우리는 흔히 성찬은 주님의 살과 피를 받아 먹고 마신다라고 이해하는데 성찬이 그렇게 단순한 것은 아닙니다. 본격적인 설명을 드리기 전에 이런 예화로 성찬의 power 를 제시할 수 있겠습니다.
여러분 남아프리카의 인권운동가 Nelson Mandela와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Desmond Tutu 주교를 알고 계시는 분이 많을 것입니다. Nelson Mandela 는 남 아프리카의 인권분리정책에 항의하다가 잡혀서 25년간 감옥에 갇혔던 사람입니다. 그가 갇혀있던 동안 만델라의 아내도 가택연금을 당했습니다. 어느날 데스몬드 투투 주교가 이 만델라의 아내에게 성찬을 베풀러갔습니다. 경찰은 투투 주교로 하여금 집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겨우 성찬을 나누도록 허락받은 장소가 투투의 자동차안이었고 그 자동차를 경찰이 에워싼 체 떡을 떼고 잔을 나누었습니다. 몇 달이 지난 다음에 다시 투투 주교가 만델라 부인에게 성찬을 나누러 갔을 때는 이번에는 집은 철조망으로 바리케이트가 쳐졌고 자동차에서 성찬을 나누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떡을 떼어 주고 잔을 나누며 성찬을 행했습니다. 여기에서 성찬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그 자리는 설교를 할 수도 없고 성서를 읽을 수도 없는 자리이고 무슨 말로 위로해서 만델라 부인이 하나님께서 함께 하고 계신다는 신앙을 줄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투투주교가 만델라 부인과 경찰이 감시하고 있는 자동차안에서, 심지어 철조망을 사이에 둔 채로 나눈 그 성찬은 수만마디 말보다 더 강한 느낌으로 그리스도가 철통같이 갇혀 있는 자기의 몸과 영혼속에 들어와 임재하고 이 성찬을 통해 세계의 교회와 그리스도인과 연결되고 이 인종차별을 철폐하기 위핸 투쟁에 전 세계의 그리스도인이 연대하고 있다는 그 의미를 투투주교와 만델라 부인은 나눌 수 있었습니다.
성찬은 이처럼 철조망도 뚫고 나누는 하나님의 함께 하심에 대한 확인이고 증거이며 그 어떤 장벽도 막을 수 없는 하나님의 임재의 증거인 것입니다. 이 짧은 성찬식에서 우리는 이미 성찬의 신학적인 의미를 다 포함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찬을 받기 전에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죄지은 일이 없는가?를 살펴 본후에 그 죄들을 주님께 고백하고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 후에야 비로소 성찬에 참예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죄를 고벡하고 용서받지 않은 상태에서 성찬을 받으면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것이며(29절),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27절). 주님께서는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토록 무서운 죄를 당연히 살펴야 합니다. 십자가 앞에서조차 죄를 살피지 않는 자는 하나님께서는 그가 죄를 회개할 때까지 판단하시고 징계하시는 것입니다(29-30절). 온 교회와 성도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지체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한 형제요, 자매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마땅히 형제 자매를 돌보고 교제를 나누어야 합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성찬예식을 통해서 한 떡과 한 피를 나누면서 주안에서 하나로 강하게 결속되었음을 나타내어야 합니다. 하나됨과 사랑을 의미하는 성찬에 참여하면서 형제와 자매를 업신여기는 분열과 파당을 일삼고, 다른 성도들에게 상처와 고통을 주는 자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요일4:11).
준비되지 않은 마음과 행동으로 성찬에 임하였을 때 그 결과는 참으로 심각한 것입니다(27-32절). 생명의 단축과 육신의 질병으로 고생하는 징계라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준비된 마음과 자세로 성찬에 임하게 된다면 주님과 연합되며 신령한 은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더욱더 신앙이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찬식에 임할때 반성하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우리의 지나간 잘못과 허물과 죄악과 남을 미워하고 증오하고 용서하지 못한 마음이 있다면 주님께 용서를 받아야 하며 나를 위해 보혈을 흘려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예식에 참여해야 되며 주님을 위해 살겠다는 믿음으로 헌신하는 마음과 주님과 한 몸이 되어 주님을 위해 따르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성찬식에 참여하게 될 때 하나님의 놀랍고 축복된 은혜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하늘 영광을 버리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살을 찢고 피를 흘리셨으니 우리는 주님 앞에 온전히 헌신하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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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1.05.29
  • 저작시기2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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